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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Feb 14. 2024

임대인도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누가 뭐래도 투자는 부동산이었고, 임대인이 되면 성공하는 줄 알았다.

주식이나 코인, 채권은 무형이라 투자라는 체감도 없었고 곤두박질을 칠 때는 원금을 까먹기 십상이었다.


나도 지인의 권유에 따라 처음엔 천만 원 그다음엔 삼천만 원... 금액이 늘어난 건 제법 이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식으로 한 달 봉급을 벌었을 때 톡 털어 터키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전 간덩어리가 부어 퇴직금의 일부를 뚝 떼어 모엘리베이터에 묻어 두고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보니 하아! 반토막이 되어 있었다.

오너일가가 장외로 소유지분을 팔아버렸고 거기에 유상증자까지 해 버린 것이다.

 

도시는 포화되어 아파트는 고층으로 고층으로 올라가고, 신축보다는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이 뜰 거고, 그에 따라 엘리베이터 회사는 많지 않으니 분명 대박은 아니더라도 중박일 거라는 내 예상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이다.


7년을 갖고 있다 결국 원금의 60%까먹고 털어냈다. 그 후엔 주식, 코인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다시 부동산으로 눈을 돌렸고 수입도 얻을 수 있는 다가구 주택을 지었었다. 


한 달 수입을 숫자적으로 따지면 그럴 듯 해 보였지만, 입주일에 따라 들쑥날쑥 푼돈으로 들어오니 푼돈으로 없어졌다.


입주민들은 별의별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갑자기 전화라도 오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하긴 좋은 일보다 신경 쓸 일이 대부분이었다.


늦은 시간인데 옆집이 떠들어요.

현관문을 열어놓고 무슨 요리를 하는지 냄새가 진동해요.

누가 개를 기르는지 개 짖는 소리가 나요.

밤늦게 쿵쾅거리고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자꾸만 공동현관문을 열어놓고 다니는 이가 있어요.

복도에서 담배냄새가 나요.

주차선을 안 지키는 차가 있어요. 등등


자칫 민감하고 중간에 끼어들기도 어려운 일들이지만 중심이 없으면 입주민끼리 싸움이 날까 봐 총대를 매야하는 건 임대인이다.


우선 ccㅡtv 6대를 돌려 주차장부터 동선을 따라 호실을 확인하고, 최대한 읍소하면서 전화를 해야 하고, 계약을 어기면서 반려동물을 데리고 있는 게 확인되면 계약해지를 불사해야 했다.

때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계약서를 들이미는 수밖에 없고, 때로는 소송도 불사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18세대를 아울러야 하니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난 계약서와 특약은 최대한 디테일하게 쓴다.


ㅡ  교포나 외국인은 x (음식문화가 달라 주방이나 벽에 기름기가 들러붙어 도배는 물론 특수청소업체를 불러야 해서)


ㅡ 반려동물 x (나도 반려견을 키우지만 바닥과 벽지에 냄새가 찌들 뿐만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짖으니 이웃에 피해)


ㅡ 신혼부부 아닌 가족단위 x (아기는 밤낮으로 울고, 초등학생은 안팎을 뛰어다니는 등 제가 안됨)


ㅡ 대학생 x (다는 아니지만 툭하면 친구들 데려와 술 마시고 토하는 진상 있음)


ㅡ 75세 이상의 독거노인 x (전화가 안되면 무슨 사고가 있나? 싶어 가슴이 철렁하고 가족과의 연락이 안 되는 경우라도 있음 머리가 아파짐)


ㅡ 업소의 기숙사용 x (수시로 대상이 바뀌니 관리가 안되고, 월세는 업소사장이 낸다 해도 전기. 가스 등이 연체되어 곤란하게 함)


ㅡ 청소업체 청소를 한 후 입주시키고, 퇴실 시도 청소업체 청소비를 실비로 받음


ㅡ 계약은  월세는 최소 1년 이상이어야 하고, 전세는 2년.(몇 개월 단기는 부동산소개비로 거덜남)


ㅡ 동성 아닌 이성커플?(중간에 싸우고 나간 후 툭하면 찾아와 싸움)


ㅡ 고성방가, 주변인에게 피해 주는 행위 등으로 주변민원 3회 시 들어오면 계약해지 하되 보증금은 후임자가 들어올 때 돌려준다는 특약은 웬만하면 써야 함



부동산중개업소도 처음엔 까탈스럽다고 지만 문서화되어야 뒤탈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협조해 준다.


여건이 맞지 않으면 빈방으로 둔다 해도 방을 내지 않겠다는 게 내 지론이다.

진상 임대인을 만나는 것도 괴롭지만 진상 임차인을 만나는 건 더 괴롭다.


주변에 원룸이 자꾸만 생기고, 시간이 갈수록 진상 임차인이 늘어만 가는 것 같다. 거기에 대응하는 나도 진상이 되는 것 같다.


다른 일을 시작하느라 타 지역으로 오기 전엔 입주 당일은 임차인에게 밥을 한 끼 사 주고, 지역 생활쓰레기봉투 1장을 건네주는 인정이 있었는데.


그때 만난 분들은 인연이 되어 타지로 발령 났다가 본사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우리 집으로 연락 와서 다시 입주를 한다.

기일이 맞지 않으면 다른 사람 퇴실 일에 맞춰  임시 다른 곳에서 살다 들어오겠다고 예약해 놓는 분들도 있어 고맙기만 하다.


요즘은 부동산을 통해서 얼굴도 모르게 오는 분들은 인간적인 정이 사그라든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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