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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Apr 29. 2024

부동산에 웃고 부동산에 우는  범생입니다.

어릴 적엔 두 칸라도 좋으니 이사 다니지 않고, 내 집 아니 부모님 집에서 사는 게 로망이자 꿈이었다.


하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가서 처음부터  집을 갖는다는 건 대지주의 집안이 아니면 사기꾼. 둘 둥 하나였다. 


대문을 나서면 보이는 들녘 모두가 내 땅이라던  이모댁은 70년대였지만 다섯 아들을 모두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


거기에다 당시 유행이던 방 세 칸에 대청과 부엌, 작은  앞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을 한 채씩 사줬다.


오빠들은 그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취업을 하고 결혼할 때까지 눌러살았다.






그런가 하면 막내 이모부는 바닷가 어촌에서 서울로 올라와 단칸방에서 6명의 가족이 북적거리며 살았다.


하치만 일 년도 안 돼 집을 사고 , 차를 사고, 운전기사에 도우미까지 불렀다.


땅값이 비싸다는 강남 신ㅇ동에 대형 단독으로 이사를 가가면서, 마당 한편에 있는 70여 평 반 지하상가를 세까지 주면서 호화롭게 살았다.


비결은 어음깡을 하면서 돈을 가마니로 쓸어 모은다고 들었다.

이모네는 서울에 온 지 2년 만에 상류층이 되었다.


큰 언니는 돈이 없어 중학교만 졸업했지만 바로 두 살 아래 동생은 숙ㅇ여대를 보냈으니 짧은 시간에 얼마나 떼 돈을 벌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때는  아버지는 이모부처럼 어음깡도 못 하고,  단칸방에서 벗어나지 못 하나 원망 하면서 이종사촌들을 엄청 부러워했다.


가끔씩 엄마는 큰언니의 옷이나 가방을 얻어와서 내게 내밀곤 했는데, 그 속엔 합성피혁이 아닌 진짜 가죽가방도 있었다.


 어음깡을 하던 이모부가 빵에 다녀오면서 비로소 그 일이 불법인 줄 알았지만,.. 이모부대신 이모가 그 일을 물려받아 일 년에 한 채씩 집을 사들이는 이모댁이 그래도 부럽기만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부동산부터 사들였고, 그 자본은 부모님에게 의지하거나 아님 사기를 치지 않으면 70.80 년대에도 집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건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자라면서 나도 돈이 생기면 집이든 땅이든 무조건 부동산부터 사야겠다고 굳은 마음먹었던 것도 그때였다.






60여 년을 사는 동안 소형, 대형아파트, 단독주택 등을 거쳐 나대지에 상가까지 사고팔고를 되풀이해 봤지만 파는 건 살 때보다 100배는 더 어렵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부동산은 융자가 있고, 돈은 돌고 도는 거라지만 그건 거짓인 것 같다.


지금은 8년째 7층 상가건물에서 겨우 방 두 칸. 그나마 한 칸은 주방 겸 옷방으로 지내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냉방이 안 돼 겨울엔 전기장판과 난로에 의지해 버티고 있다.


방한칸에서 하루를 옮겨 다니며 살아도 한 달을 넘길 수 있다고 자위하지만, 난 그 건물의 지기에 눌려 압사할 것 같은 고통으로 밤잠을 설치며 살고 있다.


매입을 희망하는 이는 돈이 없거나 대출이 안 돼 팽 당하고, 돈 있는 이는 핫한 지역에서 더 좋은 물건을 사려고 하니 양극화만 되풀이 되고 있다.


어른들은 그러셨다.

주인에 비해 사는 집이 너무 크면 집에 눌려 지내니 안 좋다고.


난 어른들 말씀도 안 들었고, 내 처지에 맞지 않는 덩치의 건물을 사면서 영끌을 했고, 이후 밤이면 밤마다 후회를 한다.

만 8년, 햇수로 9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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