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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7시간전

광장

 설영이의 돌을 어떻게 보낼까를 아내와 같이 고민했다. 그럴듯한 잔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우리는 다른 부부들과 달리 200일 즈음에 한 번만 스튜디오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돌 사진은 찍어주고 싶었다. 그러다 찾은 돌상에서 사진을 찍는 시기가 돌 즈음이 아닌, 300일에서 330일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삭 사진도 만삭이 되기 전에 찍는 게 예쁘기 때문에 그때 찍는 게 좋다더니 돌 사진도 돌이 되기 전에 찍어야 좋은 거냐, 하는 생각을 하며 이유를 보니, 그 시기가 지나면 아이에게 주체성이 생겨서 모자를 잘 쓰지 않고 벗거나 하는 등의 문제가 생겨 사진을 찍는 난도가 많이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설영이는 오늘로 334일이 되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요즘 우리 딸은 주체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돌이 되기 전에 아이가 이렇게 자기 뜻을 관철하는지 몰랐는데, 본인이 가고 싶은 곳에는 꼭 가야 하고, 본인이 잡고 싶은 물건은 잡아야 하며, 아직 걷지도 못하면서 무언가를 잡고 일어나 꼭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장난감을 밟고 의자 위로 올라가거나, 하이체어(아이가 밥을 먹는 높은 의자)에 앉기 싫어해 위에 올라가 서 있는다거나, 테이블이나 서랍장 위에 있는 물건을 잡아 내리고, 빨래통에 있는 빨래를 꺼내기도 한다. 밥을 먹을 때 꼭 본인이 숟가락을 잡고 먹으려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하면 이내 울음소리를 낸다. (우는 게 아니라 울음소리를 낸다.) 전반적으로 고집이 세졌다.  그리고 돌 사진 찍는 시기에 적혀 있는 것처럼 모자를 씌우면 당연히 모자를 벗는다. 이렇듯 사람은 한 살이 되기 전에 이미 본인의 뜻이 분명해지고 하고자 하는 것들이 생긴다. 시간이 지나며 육아가 어려워진다는 개념은 이러하다. 아이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내가 위험하다고 보는 것을 겪어보기 전까지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안전하게 돌보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설영이도 이미 몇 번 넘어지고 부딪혔다. 그런데도 설영이는 다음에도 다시 일어서 어딘가를 잡고 일어나는 행동을 반복한다.

 2016년 국정 농단 사건이 벌어졌을 때 광화문에 몇 번 나갔다. 이번 계엄령 사건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꼭 여의도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설영이가 있어서 참여하기 쉽지 않았고, 아내와 합의해 이번 주에는 내가, 다음 주에는 아내가 나가고 남은 사람이 설영이를 돌보기로 했다. 어제는 중요한 날이었다. 일주일 미뤄진 표결은 그사이 나라의 여러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고 빠른 해결이 필요했다. 시간대로 상황이 다르고 여당의 (주로 윤석열과 한동훈의) 입장이 달라졌다. 토요일에 국회 앞 시위에 나간다고 하자 말리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아이가 있는데 어디를 가냐는 말이었다. 그 말들에는 '아이가 있으니 나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참여한 시위는 2016년과는 또 달랐다. 03학번인 나는 학교에 다니며 흔히 말하는 노래패와 문선 같은 민중가요를 접한 끝자락 세대였다. 나는 시위를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시위에 직접 참여했던 90년대 학번들이 학교 주위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민중가요만의 결이 분명히 있었다. 몇 개의 노래들은 듣기에도 꽤 불편했고, 선배들의 모습도 그렇게 친숙하거나 친밀하지 않았다. 몇 명의 선배들은 아예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대부분의 선배와 나는 가깝게 지내지 않았지만, 나는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모두 다른 소수자와 민중들을 지키기 위한 가치관을 지닌 다원화된 세상에서 사람들을 집단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묶어주는 건 분노와 '민중가요'로 통용되는 일치된 감각이었다.

 오랫동안 시위는 비슷했다. 그리고 그 시위가 가지고 있는 '시위를 보는 피로함'도 함께 성장했다. 2016년의 시위는 분명한 축제였지만 분노에 기반한 축제였다. 2024년 12월 14일의 시위의 주된 구성원의 10대~30대의 여성이었다. 그들은 전과 달랐다. 그들은 아이돌 응원봉을 비롯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빛을 낼 수 있는 도구와 각자가 만든 팻말을 챙겨 기존의 시위와 연결점이 없는 독립적인 시위를 만들었다. 광장의 풍경은 분명한 축제였다. 그들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모두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광장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었다. 최인훈의 광장과 달리 오늘 여의도의 광장에는 밀실이 없었다. 밀실로 가득 차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중립국으로 채 가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로 떠나버린 명준과 같은 사람은 이제 없다. 광장 자체가 커다란 중립국이었다. 환영받지 못한 채 쓸쓸하게 죽어가는 중립국이 아닌, 모두가 모두를 환영하고 춤을 추며 가치를 이야기하는 진정으로 중립된 광장이었다. 그동안의 광장은 광장인 척, 밀실로 가득해 스피커만이 있고 듣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의 광장에는 이미 서로가 다른 존재임이 기반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밀실로 들어가 스피커가 되지 않는다. 광장에서는 축제를 벌인다. 축제를 벌이는 이 순간을 모두가 기억한다. 그렇게 민중가요는 변형되어 과거와 다른 개별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가진 채 서로의 가치를 대변한다. 이 자리, 이 순간에 있는 모든 이가 나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닌, 그 자리에 속한 타자의 가치를 인정하고 대변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안전한 삶을 위해 안전한 지역을 지키고 안전을 위한 방법을 구전했다. 부모는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을 사용해 아이를 지킨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부모는 익히 익숙한, 튀어나오지 않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자신의 삶과 경험이 증명한 방법을 통해 익숙한 세계에 익숙하게 살도록 한다. 그렇게 편안한 삶을 만들고자 한다. 이는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만의 학습을 통해 안전한 삶을 만드는 법을 깨우친다. 자유로운 사상 속에서 아이는 내가 피해야 되는 것을 배우기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먼저 깨닫는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고민한다. 민중가요가 위험을 피하고자 소집단의 밀실로 스스로 들어갔다면, 오늘의 가요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광장으로 스스로 나가 음악을 틀고 춤을 춘다. 그렇게 다 같이 춤을 추며 위험을 벗어나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고 경험한다.

 위험에 대한 감각은 겪어야 생긴다. 일어서서 부딪히고 넘어지고, 아파서 엉엉 울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기준을 정하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때문에 안전한 삶을 위해서는 위험을 겪어야만 한다. 위험을 알아야 현실을 지킬 수 있다. 우리나라에 속한 모든 사람이 공통된 위험에 대한 감각을 알고, 그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안전을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때, 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게 될 때, 그리고 우리의 광장이 한 명의 주체성을 통해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시 만난 세계가 열린다. 시대가 사람을 만드는 세상에서는 아이를 가진 아빠와 엄마가 광장을 나가는 게 위험한 일이다. 역사가 그를 증명했다. 그러나 사람이 시대를 만드는 세상이 도래한 지금, 광장으로 나가는 것은 축제의 온기를 집으로 가져와 집에 작은 축제를 열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우리 집에도 아빠와 엄마, 설영이가 함께 축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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