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편지#06] 파리에서 아침을 어때요?

파리의 마미바바와 오슬로 노하

by 김노하 Norway


안녕하세요. 노하 님


오늘은 비가 내리네요. 톡으로 이야기 나눌 때 말씀드렸듯이 요즘 비가 자주 내립니다. 커피를 만들고 빵을 구우며 오늘따라 빗소리가 유난히 저를 향해 인사를 하네요. 관심받으려고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처럼…


예전에는 노래 한 곡 때문에 비 오는 수요일을 좋아했습니다. 덕분에 빨간 장미를 많이 받기도 했어요. 사실은 빨간 장미보다 다른 색깔의 장미를 좋아했지만 노래 때문에 그리고 비 오는 수요일을 좋아해서 다들 빨간 장미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것 같아요.


또 다른 추억은 재수 시절… 지각을 자주 해서 창가 앞자리는 내 자리라고 뻔뻔스럽게 그리고 정중히(?) 요구를 하곤 했어요. 비가 내리니까 내가 앉아야 한다면서 억지를 부리기도 했지요. 그 자리 앉으려고 새벽부터 서둘러 왔을 아이의 노력은 생각도 못하고… 지금 생각하면 귀여우면서도 억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혼자 심각했습니다. 그 자리는 내 것이라고만 생각했어요. 럭키였죠. 대부분 아이들이 나의 억지를 귀엽게 봐줘서 양보를 많이 해줬습니다. 새삼 그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마음으로 전해봅니다.


노하 님은 비에 관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그러고 보니 저번 편지는 비 온 뒤를 얘기했네요. 하긴 여기 유럽은 유독 가을비가 많이 내리잖아요. 하나씩 꺼내다 보면 올해 가을과 겨울 날씨가 싫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해가 빨리 져서, 날이 짧아져서...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계절 자체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기억에서 사라졌던 추억들이 하나씩 필름처럼 돌아가네요. 한꺼번에 얘기하면 재미없으니 하나씩 하나씩 꺼내보려고요.


편지를 쓰느라 빵과 커피가 식어가요. 잠시만요.


....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전 뜨거운 커피도 좋아하지만 금방 토스트 한 뜨끈뜨끈한 빵에 냉장고에서 금방 나온 딱딱한 버터를 바르자마자 먹는 그 순간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아니 사랑합니다. “이게 행복이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눈을 감아봐요.


노하 님, 접시에 방금 토스트기에서 나온 겉이 바삭한 뜨거운 빵과 냉장고에서 금방 나와서 딱딱한 unsalted butter를 올려 바르고, 최대한 빨리 입안으로 넣어 보세요. 바싹한 빵과 크리미한 버터의 조화 그리고 커피 한 모금… 상상이 되시나요. 이 순간 몽글몽글 뭉게구름이 내 머릿속을 채워 마음이 푹신해지면서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짓게 돼요. 어느 날 함께 아침을 하면서 이 순간을 즐기고 싶네요.


“파리에서 아침을” 어때요?


- 파리에서 마미바바로부터


Ps. 전 유난히 스토리텔링을 좋아해요. 다음에 제가 먹는 빵 이야기 그리고 버터 이야기…를 그러니까 히스토리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하이! 마미바바 님


보내주신 편지 잘 읽었어요. ‘비 오는 날의 수요일’이란 노래가 아득해서 어떤 노래였나 하고 찾아봤어요. 노래 제목이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었네요. 바바 님의 리즈 시절을 상상해 봤어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그녀에게 안겨 주고파.’라는 가사의 주인공으로 지내셨던 그 시절을 말이죠. 귀여우면서 억지스럽게 구셨던 시절의 이야기도 참 재미있어요.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지 않을까요? 웃음이 절로 지어지는 풋풋한 시절이요.


편지를 쓰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앨범을 꺼내서 들춰 보네요. 사실 저와 남편은 서로를 알게 된 지 20년이 지났어요. 인생의 절반 넘는 시간을 알고 지냈지요. 저의 억지스러웠던 젊은 시절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부모님도 모르고, 저도 잘 모르는 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지요. 섭섭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정답고 알뜰하게 어울리는 사이이지요. 말 그대로 애틋한 사이랍니다.


사실 따뜻한 빵과 차가운 버터같은 사이이기도 해요. 감탄이 나오게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서로의 온도가 너무 다른 그런 사이. 서로 다른 점이 많아서 이제 겨우 맞춰간다 싶으면 또 변해 있는 서로를 발견하게 돼요. 그럼 또 서로의 온도 차이를 확인하고요. 또 맞춰 가는 일을 반복하며 지내고 있어요.


바바 님이 말씀하신 빵과 버터, 커피는 맛으로는 정말 최고의 조합이에요! 빵은 무조건 따뜻해야 하고요. 저는 거기에 버터를 슥슥 바르고 제가 좋아하는 브리 치즈도 얹어요. 빵을 한 입 먹은 다음, 커피를 마시면 세상이 행복하죠. 특히나 오늘은 비가 내리는 가을 아침이었어요. 내리는 비를 보며 여유롭게 즐긴 일요일 아침은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아침이었어요.


저에게 비와 관련된 추억이 있는지 물으셨지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저는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해요. 특히 저는 비 내리는 날, 기찻길이 보이는 바닷가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걸 좋아했어요. 사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거리에 그런 카페가 있었거든요. 창가에 앉으면 지척에 기찻길이 있고, 멀리엔 바닷가가 보이는 곳이었어요. 그곳을 좋아했지만 자주 가지는 못했답니다. 해야 하는 일들에 치여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못했던 아쉬움이 아직도 있어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비가 올 때마다 바닷가 카페를 가기 위해서라도 과외 알바 따위는 안 하면서 살 거예요.


편지를 쓰는 동안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재생해 두었거든요. ‘비와 수요일 그리고 빨간 장미’의 연결 고리가 조금 낯설어요. 왜 빨간색일까요? 비 오는 날과 빨간색은 어울리지 않아요. 흠. 지금의 저라면 ‘비와 수요일 밤, 와인 한 잔’ 이렇게 연결 고리를 만들어 보고 싶네요. 40대 아줌마는 별 수 없나 봐요.


언젠가 파리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그리고 밤에 다시 만나 예전에 말씀하셨던 내추럴 와인도 마셔요. 다음 편지도 너무 기다려져요.


하데 브라. Ha det bar.


- 오슬로 가을밤에 노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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