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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Apr 20. 2024

마지막 종착역, 디카페인 커피

아침햇살 작가님의 커피 인생사

마지막 종착역, 디카페인 커피     


요즈음 나는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다. 원래부터 편두통이 있는 편이었으나 최근 들어 증상이 잦고 강도도 심해져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디카페인 커피이다. 끊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커피에 미련이 남은 것이다.     


처음 커피를 접한 건 고등학교 때 학교 자판기에 있는 밀크커피! 공부를 위해 잠을 쫓겠다는 핑계로 부모님 몰래 학교에서 마셨던 그 달콤한 커피의 맛을 잊을 수 없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잠을 쫓기 위해 가끔 마셨던 것 같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신 건 역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발령받고 2~3년은 거의 매일 밤 9시까지 직장에 남아 있었다. 출근하는 5일 중 평균 4일 정도는 야근을 했으니 나에게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닌 약이었다. 12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하늘이 주신 음료였다.


20여 년 전이니 지금처럼 원두커피가 아닌 믹스커피로 매일을 버텼다. 하루에 7~8개의 믹스커피를 마신 것 같다. 뭐 그리 열심히 일을 했나 싶을 정도로 직장에 오래 남아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고 다음 날을 준비하곤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내가 마시는 커피도 변해갔다. 하는 일이 익숙해지며 여유가 생겼는지 핸드드립을 즐기게 되었다. 커피바에 앉아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를 보며 커피를 즐기기도 한다. 직장에서도 바리스타 같은 존재가 꼭 한 두 명씩 등장하여 여유를 가지며 커피를 마신다. 커피가 나에게 휴식을 주는 음료가 된 것이다. 그런 30대 초를 보냈다.


30대 후반에 나에게 찾아온 육아의 경험은 나를 캡슐 커피로 인도했다. 핸드드립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믹스커피로 돌아가지도 못한 나는 캡슐커피 머신을 들여놓게 된다. 육아에 피폐해진 나를 구해줄 한줄기 빛처럼 나타난 네스프레소는 우리 집 부엌 한쪽을 차지했다. 이렇게 커피는 나의 인생 한 면을 채워주었다.     


현재 내 옆에는 디카페인 커피가 있다. 40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것도 중반에 가까워졌다. 조금만 무리하면 몸에 이상이 올 수도 있는 나이인 것이다. 건강을 생각하는,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커피를 버릴 수가 없다.

입시를 위한 10, 취준으로 치열했던 20, 조금은 여유 있던 30대 초와 육아에 나를 던진 30대 후반 그 어느 시기에도 커피가 없었던 적이 없다. 그렇기에 커피에 미련이 가득하다. 앞으로의 내 모습에도 커피가 빠질 수가 없다. 어떤 상황의 어떤 커피이더라도 내 옆에는 항상 커피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앙꼬 없는 단팥빵처럼 카페인 없는 디카페인 커피더라도 말이다.



작가 소개가 계속됩니다.

아침햇살 작가님께서 직접 찍으신 사진입니다.



아침 햇살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기웃 거리지만 도전정신이 부족하여 선뜻 행동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 덕에 직장생활 19년 차에 육아 휴직 중입니다. 아이를 위한 휴직 기간이지만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기 위해 부족한 글솜씨를 모아 모아 글을 씁니다.

[출처] 작가소개 (뉴아티 북클럽 & 뉴북스 작가스터디 - 매거진 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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