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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Apr 14. 2024

짬짜면도 있는데, 왜 커피는 반반이 없지?

노하 작가 - 결정장애자의 우유부단한 커피.


나는 결정장애자다. 뭐든 하려면 결정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생각이 많다. 선택을 해도 걱정이 많다.


20대, 연애를 할 때였다. 우리는 캠퍼스 커플이라 점심을 같이 먹을 일이 많았다. 공강 시간이 겹쳐서 캠퍼스 밖으로 나가 밥을 먹을 때면 항상 뭘 먹을지 정하는 게 힘들었다.


“뭐 먹을래?”

“글쎄,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넌 뭐 먹고 싶은데?”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일단 상대에게 먼저 묻는 것이 습관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정문 앞에는 식당을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서둘러 결정하지 않으면 주문이 밀려서 오후 수업에 지각할지도 모른다.


결단력 있는 남자 친구는 나를 잘 알았다. 그는 나에게 두세 가지를 먼저 제안했고, 나는 그중에 선택했다. 그가 한 번 거른 선택지를 주면 난 마음이 편했다. 일단 이 사람이 고른 선택지 중에서 내가 고르는 거니까 마음도 덜 불편했다.  


밥을 다 먹고 후식타임. 솔직히 아메리카노보다는 자판기 커피가 더 익숙했고 입맛에 더 맞았다. 가격도 최소 10배는 더 쌌다. 그래도 우리는 데이트 분위기를 낸다고 카페에 들어가 줄을 섰다. 20대. 돈도 없고 아메리카노 맛도 잘 모르던 때였다. 어떤 카페는 밥값만큼 커피값을 내야했다. 그래서 커피를 주문하는 건 더 신중해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결정장애자다.


라테, 카푸치노, 카페모카, 아메리카노. 메뉴판엔 다양한 커피가 선택을 기다린다. 어렵다. 그러나 나의 커피 취향까지 남자 친구가 결정해 줄 수는 없는게 아닌가?!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따뜻한 라테도 먹고 싶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먹고 싶은데.'


'짬짜면도 있는데, 왜 커피는 반반이 없지?'


뭐라도 하나 “나는 무조건 이거! 나는 이게 좋아!”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우유부단한 나는 나만의 선택하는 법이 있다. 일단 남자친구가 고르는 걸 보고, 한 모금 얻어마실 생각으로 나는 차순위 먹고 싶은 걸 고르는 거다.


“나, 한 입만!”


일요일 아침, 40대가 된 난 여전하다. 나는 남편이 고를 커피가 뭔지 먼저 알고 싶다. 남편이 말해주면 나는 차순위로 먹고 싶었던 커피를 고른다. 오늘 아침엔 남편이 라테를 만들었기에 일단 나눠 마셨다. 그리고 아메리카노를 한 잔 더 내려서 마셨다. 다행히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둘이라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우리 집은, 나와 남편은 반반커피를 마신다.


소망이 하나 있다면, 나도 확실하고 날카로운 커피 취향을 가지고 싶다.

‘내일은 뭐 입을까?’

고민이 귀찮아 청바지에 검정티만 입는 그들처럼.


‘내일은 또 어떤 커피를 마실까?’라는 선택지 앞에서 열 번에 여덟 번 정도는 고민하지 않는 나를 만나고 싶다.

지난 20년간 즐기진 않았지만 꾸준히 마셔온 탓에 이제는 달달 커피보다 라테가 좋다. 라테보다는 아메리카노의 쓴 맛이 좋다. 하지만 원두를 고를 땐 여전히 어렵다. 다행히 내가 신맛보다는 고소한 맛을 좋아한다는 정도까지는 왔다. 그나마 정말 많은 발전이 아닌가?

p.s. 꼭, 커피 취향이 있어야 하냐고? 결정장애자에게는 정해진 까다로운 취향 하나를 가지는 건 꽤 의미가 크다. 이것만큼은 나도 선택을 잘한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니까 말이다. 난 다양한 취향 중 하나, 커피를 선택했을 뿐이다.


작가 소개가 계속됩니다.



[뉴아티 글쓰기 북클럽 소속 작가]


노하

노르웨이와 한국,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 자신을 소중히 다루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어떤 일을 새롭게 기획하고, 함께 도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엄마이자 글을 쓰는 작가로 살면서 평범한 분들을 작가로 만들어 드리는 <작가 크리에이터>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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