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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시간

by 루나


분명히 엊그제 셋째를 낳은 것 같은데 그녀가 벌써 만 두 살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내년엔 고등학교씩이나 들어갈 첫째도 분명히 엊그제 낳은 것 같은데 이젠 나보다 몸무게가 더 나가고 영어로 대화할 땐 종종 내 문법이나 단어를 고치기씩이나 한다.


9월, 캐나다, 미국 지역의 1학기가 시작되고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코로나로 인해 닫혔다, 열었다를 반복하던 학교에 마스크 없이 등교를 시작했고 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침 다섯 시 반부터 일어나 있던 두 살, 막내딸이 카시트에서 잠이 들어 아이를 안아다 제 침대에 눕히는 길에 아이를 안고 한참을 같이 누워 있었다.


사랑.

따듯함. 행복. 온기. 가능성.


주말 동안 밀린 설거지에 빨래도 집어넣어야 하고 막내딸의 두 살 생일잔치를 집에서 열기 위해 음식 준비, 집 청소, 마당 청소도 해야 하는데 아이를 안고 침묵 속에 누워 있는 고요한 시간이 너무 소중해 기어이 시간을 내주었다.


잠든 딸아이의 단정하고 가지런하고 예쁘고 작은 손 발이 귀여워 한참을 들여다보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우리 아이들 만한 시절,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천천히 들여다보시며 "우리 민지는 손이랑 손톱이 길고 참 이쁘다. 피아니스트 같은 거 하면 참 예쁠 손이야." 하시던 기억이 난다.



캐나다에 처음 왔던 2006년도에는 나도 이십 대 초반, 남편의 여동생인 P가 지금 우리 큰 아들만 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결혼을 했고, 간호사가 되었고, 최근에는 아이를 하나 더 낳아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시 여동생이지만 어떻게 보면 내 자식 같기도 하고, 이만큼 시간을 같이 보내보니 이제는 친구 같기도 한 그녀가 친정엄마인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아이들을 봐주는 게 너무 없어서 서러운데 친청, 시댁 부모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세 아이들을 키우는지 대단하다며 내 어깨를 한껏 치켜올려 세워준다.


"But if you expect nothing, it doesn't really bother you that you don't get help. It is, what it is."

-누구에게도 어떤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솔직히 그렇게 힘든 것도 아냐. 그게 사실인걸.


하지만 그녀는 말했다. "I want me, my time, quiet time, time that I spent for myself. But it's so hard to have that without help."

-하지만 난 날 원해, 내 시간, 조용히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 그런데 누군가의 도움 없인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



맥북이 있으면 뭐하나, 앉아서 한 시간 제대로 글 쓸 수 있는 시간, 제대로 배우고 싶은 비디오 에디팅 기술도 따로 시간을 내어 볼 수 있는 시간이 없는데.

아이 셋, 남편, 아이들 학원, 팔백 평(네, 사실입니다, 캐나다거든요)의 집 관리를 위해 조경, 잔디, 수영장 관리를 모두 손수 하고 없는 시간 쪼개어 운동까지 다니다 보면 배터리가 갑자기 꺼진 기계처럼 밤 열 시쯤이 되면 병든 닭처럼 스스로 꺼지는 몸뚱이인데 언제 글을 쓰고, 언제 유튜브 비디오를 만들어 내 꿈, 내 시간을 살 수 있나.


남편은 내가 "난 일 잘하는 도비야, "라고 말하면 이렇게 넓고 좋은 집에 일 안 하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럭셔리한 생활이 어딨냐며 넌 세상에 모든 시간을 다 가지고 있지 않냐며, 자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가야 하지만 내 예쁜 새끼를 집에서 하루 종일 돌보는 게 얼마나 사랑스러운 일이냐며 이해심 조금 부족한 말을 한다.




아이들이 어디에 뭘 하고 있는지, 안전한지, 밥은 먹었는지, 잘 자라고 있는지, 그들의 생활환경이 풍족하고 즐거운 곳인지를 늘 걱정하고 고민하는 엄마라는 직업의 삶은 실제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실체는 이렇다 얘기해주는 사람이 하나 없는데, 결국엔 그래도 보람찬 일이다, 하지만 굴곡도 많은 일이다.


나의 일이지만 나를 위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가 결국엔 순응하고 묵묵히 견뎌내는 것이 엄마의 삶이겠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여자의 삶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있는 지금은 나의 시간인만큼 아이들의 시간이기도 하니 인내하자, 희생하자,라고 남편의 여동생에게 부처 같은 말(나도 스스로 억울하다 생각하면서도, 으른 인척)을 해주다 결국 내 딸은 뭐가 될까, 어떤 꿈을 꾸게 될까,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 아이도 부인과 엄마가 되면서 자신의 꿈, 이상에 대해서 적절히 희생하며 적절히 포기하며 적절히 완충해 가는 삶을 살게 될까? 그럼 이 아이는 그 순간과 그 시간에 대해 나처럼 느끼게 될까?


생각에 생각.





아이와 함께 좀 더 누워있는다면 좋겠지만 일어나 노트북을 켰고 이렇게 글을 쓴다.


싱크 가득 밀린 설거지가 나를 노려보고 서랍장에 넣어야 할 빨래는 다섯 명의 일주일치분, 텃밭에 수확하지 않은 작물들과 잡초들이 살려달라 아우성을 치고 낮잠에서 일어난 만 두 살 아이는 커피 한잔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기운을 내 뽐을 테지만,

그래도 나를 잃지 않겠다고, 나도 잃지 않겠다고, 나만 아는, 내가 아는, 나의 제법 적절한 발란스를 지켜가며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산다. 정답도 오답도 아닌 나의 삶.


희생이 가치 있는 삶.

혼란 속에 중심이 있는 삶.


엄마의 삶.

그리고 그 안에 녹여내는 아이들의 시간.

내가 넓힌 세계를 책임지고 감당하는 시간.

그런 인내로 나도 모르게 깊고 커지는 시간.



지금은 그것이 후회 없는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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