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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고양이가 떨어졌다.

by 루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는 열망.


전부는 아니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오은영 선생님이 출연하신 프로그램의 클립들을 자주 본다. 자주 보니 더 뜨고 떠 있으니 또 보고.


엄마 없이 자란 여자 아이가 엄마가 되었고 정신 차리고 보니 아이들이 셋이나 있는데 내가 겪어온 엄마라는 부재를 내 아이들에겐 되물림하지 않겠다, 그것보다 내 아이들에겐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혹은 희미하게 그려보기만 했던 삶을 내 아이들에겐 주겠다 라는 마음은 늘 주의하고 있진 않지만 열망이라 하기엔 틀림이 없으니, 그것을 또 갈망하는 내 마음을 돌아보면 나의 유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의 행동들이 문제라고 가정하고 시작한 쇼는 이내 이 문제가 단순한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부모가 유년기에 겪은 상처, 부재, 폭력, 부당들을 치유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 자신의 아이들에게 부정적으로 투영하는 부모가 되어있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오은영 선생님이 그런 문제점을 대화와 과거의 이해로 문제점으로 집어내고 가족 모두가 그것을 '인지'하고 '이해'하면서 자식의 문제뿐만 아니라 부모의 노력과 부모 자신만의 치유 과정이 보여질때, 그래서 모두가 어떤 깊은 깨달음에 도달했을 때 부모든 자식이든 화해와 발전에 대한 열망에 깨닫고 항상 운다.


그럴 때 나오는 울음은 짜다.

(속에 있는 것이 감당할 수 없어 뿜어져 나올 때, 그것이 감정이든 땀이든 속 안에 앓고 있던 것을 자연스레 내뿜어 나올 때 나오는 그것은 소금인가?)


갑분 울음짜.


참,


그럼 짠 음식들은 어떤 깨달음의 결과일까?




하늘에서 고양이가 떨어졌다.


이제 만 두살 반이 된 셋째아이, 딸을 임신하면서 몹쓸 알러지와 만성 비염이 최고조에 달했고 사람보다 큰 개, 털 많은 고양이까지 집 안에 같이 살면서 기관지가 다 약해져 약까지 먹게 되자 큰 개는 뒷 마당 창고를 개조해 개집을 만들어 바깎 살림을 시켰고 고양이는 차고 안 남편의 작은 방으로 거주지를 옮겨야만 했다.

만 열 살의 둘째 아들이 지금 우리 셋째 딸만한 나이에 얻은 고양이 '스모키'와 정이 깊었고 코비드가 시작되고 캐나다 전역에 완전 격리기간이 펼쳐져 모든 것이 문을 닫았을 때 마침 갑자기 아프게 된 스모키는 손쉽게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었을 적, 게다가 당시 셋째 아이를 출산을 해 정신도 없었을 적 스모키는 갑자기 세상을 달리했고 이후부터 심지어 최근까지 고양이의 고자도 말 못할 정도로 아이는 상심이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모키 이야기가 우연치 않게 나올 때 마다 아이는 눈가가 바로 빨개지며 울어 버리는 상태가 되었다.


아이의 상심.


나에게는 캐나다에 살며 벌써 네 다섯번째 고양이지만 둘째 아이에겐 생전 처음 자신의 고양이라고 생각한 동물이라 더 특별했겠지. 스모키가 세상을 달리하고 바로 다른 고양이를 구할려면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이를 출산하고도 여전히 스테로이드가 들어간 스프레이를 사용해야 하는 현실에 쉽게 수락하지도 못하니 아이는 종종

"엄마, 난 엄마가 코가, 비염이, 알러지 문제가 꼭 나아졌음 좋겠어, 되도록이면 빨리."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사실 고양이가 갖고 싶어 하는 말인줄 알면서도 격한 공감 없이 "그래, 응응."하고 지나치기가 대수였다.



지금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집은 만 평 정도의 땅 안에 있는데 뒷마당에는 이웃집과 맞닿아 있는 부분에 큰 삼나무들이 있고 그 나무들은 철새들과 심지어 여름엔 박쥐, 겨울엔 캐나다 구스들도 방문해 새 소리가 아침 저녁이면 크게 나는 것이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국립공원에 있는 기분이라고들 하셨다.


4월 말, 캐나다가 마침내 겨울을 벗어나는 가 싶으면 남편은 만평의 잔디를 깎기 시작해야 하는데 어제가 바로 그 해의 첫 잔디 커팅이 있는 날이라 종일 분주하다 오후 늦게 일을 마친 뒤 (전원의 삶이란) 뒷 마당 의자에 앉아 있는데 남편이 그런다.


"어? 이건 고양이 새가 짖는 소리야, 들려?"

동물을 좋아하는 캐나다인 남편이 소리가 들리는 삼나무 쪽을 가리켜 남편, 나, 딸이 자리를 옮겨 소리의 근원을 추적했고 기다리기 싫어하는 내가 (한국사람) 먼저 발걸음을 옮겨 큰 삼나무 밑으로 가 올려다 보니 햇빝이 비치는데 노란 것이 걸려 있다.


그리고 분명히 운다. "야옹."


고양이가 걸쳐 있던 둿마당 삼나무



남편키 183. 남편의 키 세 배쯤 높이에 삼나무 가지 위에 오렌지 색깔의 한 사오개월쯤 되어 보이는 아주 아이도 어른도 아닌 고양이가 내려오지도 더 올라가지도 못하고 울고 있다. 저기서 얼마나 울고 있었던 거지. 어르고 달래 이쪽으로 저쪽으로 와 봐 했지만 우리를 보고 더욱 심하게 울기 시작하는 고양이를 보곤 남편이 사다리를 가지고 나왔고 사다리만으로도 닿지 못해 두 손으로 나무를 (타잔도 아니고) 타기 시작해 고양이를 구해냈다.


지금 하는 건축, 공사일이 아니면 분명 동물병원에서 동물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는 남편의 특징은 어디서 도움이 필요한 동물을 잘 찾는 일인데 그래서 찾아내 키우고 기른 동물이 셀 수 없다. (특히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오고 나선 남편이 자리도 많으니 맘대로 하겠다고 그래 그럼 그러렴 했더니 동물원 열 정도로 동물들이 늘어나 우리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였다. 동물원이라고.ㅋ)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모든 동물들이 다 무서웠다. 그래서 개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는 남편을 감당하기 조금 부담스럽고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같이 지내다보니 개 고양이 편을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고양이란 동물과 잘 맞는 타입의 사람이란 생각이 들게 되었고 캐나다에 산 십 오년이 넘는 시간 동안 늘 고양이가 있어왔던 것 같다.



나무 밑으로 내려와 구조해 낸 고양이를 보니 오렌지 색깔의 짧은 털 여자 고양이, 한 서넉달쯤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가 남편의 품에서 크르렁 크르렁 하고 있다. 그러자 이 광경을 지켜 본 둘째 아들이 말했다.


"Oh my god, Mom! God really sent me another cat! I prayed for it for so long!"

오마이 갓! 하느님이 마침내 나에게 고양이를 보내 주셨어!! 내가 얼마나 기도했다구!!


뭘 또 고양이 하나 구조한 거 가지고 신이 뭐 기도를 들어주고 말고야… 하면서도 아이의 천진난만한 리액션이 기특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신에게 고양이를 보내 달라고 기도했는데 고양이가 진짜 하늘에서 떨어졌으니 (우리집 나무로) 이걸 어디 가져다 줄 수도, 남의 고양이다 아이를 설득할 수도 없는 일, 며칠 내내 동네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혹시 잃었느냐고 물었지만 그런 사람도 없었고 고양이를 찾는 페이스북 포스트도 보지 못했고 자식 놈 셋 다 귀여운 아기 고양이 매력에 흠뿍 빠져 누가 와서 달라고 한다 해도 줄 수도 없을 만큼 아이들이 집착하는 걸 보니 나도 내 비염이든 알러지든 상관없이 고양이를 그저 받아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고 치타와 생긴게 비슷해 치타라고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하지만 집 안에서 키우기엔 내 비염과 알러지가 심해 불가능하다고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고 바깎 고양이로 키우자고 집 안과 연결된 차고로 옮겨 놓으니 아이는 이러다 또 갑자기 죽을까봐 겁이 난다 했고, 그렇게 또 한 번 찾아온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그간 집 주위와 이웃집들까지 싹싹 돌며 쥐, 토끼, 다람쥐를 신들린 사람처럼 사냥해 자신이 조금 먹고 몸통을 남겨 차고에 갖다 놓거나 심장, 머리통등을 잘라 트로피처럼 남편과 내 신발 근처에 올려다 놓기 시작하는 고양이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거라며 남편은 보기도 끔찍한 죽은 무언가를 꾸역꾸역 갖다 버리면서도 행복해 하고, 아이들은 염원하던 고양이가 생겨 행복하고, 바깎에서 키워야 한다는 미안한 마음 저리가라 싶을 만큼 야무지게 무서운 고양이를 보며 나는 이거 진짜 신이 보낸 물건인가? 싶은 것이다.


나를 생각해 고양이를 집에 안들여놓다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 있었나? 신이 옛다, 니 놈이 하도 멍청해 어떻게 못하는 걸 내가 도우마 하고 하늘에서 던져 주셨나?


나를 놓고

아이가 무엇보다 행복해 하는 그 모습 하나에

모든 숙제는 해결된다.


하늘에서 떨어진 고양이 한 마리에 나도 모르게 좋은 엄마가 되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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