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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이치

by 루나

벚꽃이 피고 지고 한강에는 루이비통이 패션쇼를 열었다는 한국 소식, 가벼워진 사람들의 옷차림, 드라마에서 보이는 환절기 룩을 인터넷에서 보다 지난주 고작 땅에서 튤립이 솟아 나오기 시작한 내가 사는 캐나다의 봄은 거의 이십 년 전 캐나다에 처음 와 고속 스피드 인터넷을 한국에서 쓰다 들어와 전화 모뎀으로 세상에 연결된 그런 느린 느낌이다.

더딘 봄.

봄은 더디게 오고 겨울은 매몰차게 빠르게 오는 캐나다.


너와 내가 다르지만 봄이 오는 속도에 마음이 졸여지는 건 텃밭 때문이라 하고 싶다.





오 년 전, 감사하게도 살고 있는 이곳 캐나다의 작은 시골 마을에 집을 사게 되었고 집 앞 뒤로 약 오백 평 정도의 땅을 가꾸게 되었는데 너른 잔디밭 한편에 토마토, 고추, 한 그루씩 심던 것이 여름엔 굳이 슈퍼에서 야채를 사지 않아도 될 정도의 밭과 작물들을 키울 정도로 지난 몇 년 간 성장시키게 되었고, 또 몇 년을 하다 보니 부추와 마늘이 얼어 굳어 있던 땅을 야무지게 차고 올라오는, 하지만 튤립은 피지 않는 겨울과 봄 사이부터 올해는 무슨 작물을 텃밭에 키워야 할지를 고민하는 반 농부가 되었다.


잔디밖에 없던 이사 들어온 첫 해의 뒷 마당
다음 해에 몇 가지 작물들을 심기 시작
그 다음 해에는 텃밭 사이즈를 늘려 한국 호박, 참외, 배추, 깻잎, 고추등등을 심어 기르기 시작
동네 다람쥐와 토끼들로부터 작물 보호를 위해 보호막 설치
작년 봄
패션쇼 볼 시간에 밭이나 가시쥬 엄니
캐나다에선 사기 힘든 깻잎. 이젠 우리 동네 깻잎은 제가 책임집니다!
꽃도 심고 조경도 합니다. 바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면서, 한 여름 매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작물이 나올 때 쏟아지는 일거리에 불평하면서도 아직은 비워진 텃밭과 살고 있지도 않은 내 나라에서 쏟아져 나오는 스마트 폰 속의 봄 이야기들에 마음이 조급한 건 한국 사람이라 그렇나. (뜻하지 않은 조국 탓 ㅋ)


하지만 삶을 살아오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텃밭을 가꾸면서, 삶은 더 나에게 인내를 가르치려 한다.


작은 씨를 틔워 새싹을 한 잎, 두 잎 내다 그것이 꽤 굵은 줄기가 되고 그 줄기 어딘가에서 잎을 키우고 꽃을 길러내고 꽃이 진 곳에서 열매를 내는 자연의 신선하게 올 굳은, 그리고 인내가 필요한 '성장의 과정'이란 한 사람이 태어나 자라나는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으니 아이를 보다, 밥을 하다, 지친 대로 일을 가서 돈을 벌다, 사십이란 나이, 잃어버린 건가 싶은 꿈의 꼬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꿈을 꾸다가도 현실은 밭을 가는 사십의 애 셋 엄마. 캐낸 감자로 저녁을 먹고 토마토로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고 깻잎을 몇 백장 따 겨우내 먹을 찬을 담그다가 나는 종종 과거로, 혹은 내가 아직 가 보지 못한 어느 세계로, 혹은 내가 살고 있지 않은 한국이란 곳을 동경하다 '인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And I think that I'm on the right track.


Right track of learning life, and the patience you need to learn in order to learn a life.


루이비통 얘기하다 생각이 났는데 멧 갈라 를 지난 수십년간 진행 담당해 온 보그의 에디터 안나 윈투어는 마스터 클래스라는 온라인 클래스를 통해 멧 갈라 패션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It wasn’t quick path, it wasn’t easy path. But I think it was a path of learning and understanding and I think it’s vital to always remember, sometimes to achieve important heights, you need patiences.”

-그건 빠른 길도 쉬운 길도 아니었죠. 하지만 제가 생각해보니 그건 많이 배워야하고 이해해야만 하는 길이었어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점은 인생에 어떤 중요한 순간에 다다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인내, 인내하는게 증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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