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아홉번째 이야기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복자의 부모님도 그중에 있었다. 고함을 치고, 소리를 지르고,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어느 틈에 우성도 보였다. 기분 나쁜 소란스러움이 골목 안을 채웠지만, 복자에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아이고, 복자야... 이게 무슨 일이냐. 작가 선생이 어쩌다가...”
얼어붙은 복자의 몸 위로 두툼한 점퍼를 덮으며 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딸의 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추위 때문인지,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그녀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우성이 복자의 앞에 다가와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다. 간신히 복자의 동그란 두 눈과 마주쳤지만, 여자의 눈엔 초점도 없었고 우성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 조그마한 몸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눈물이 담겨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복자는 쉴 새 없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자신의 눈물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눈물 줄기가 턱 아래 매달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길바닥 아래로 두두둑, 제이의 하얀 얼굴 위로 두두둑 떨어졌다.
우성이 뒤에서 복자를 껴안다시피 제이에게서 끌어 놓았다. 그녀는 종이인형처럼 끌려 나왔지만, 다시 두 무릎으로 기어가 피범벅이 된 손으로 제이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복자는 제이의 귓가에 연신 “괜찮아. 괜찮아. 넌 괜찮을 거야. 그지? 넌,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라고 속삭였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것은 어쩌면 그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제이는 괜찮을 거라고. 새하얀 입김이 차가워지는 그의 얼굴을 닿았다 사라졌다. 구급 요원들이 들 것에 제이를 옮길 때까지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검은색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속력을 향해 속도를 높인 차는 사람을 치고, 곧바로 벽을 들이박았다. 진하게 선팅된 앞 유리창과 함께 차의 앞부분이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에어백이 부풀어 오른 운전석은 텅 비어 있었다.
병원 냄새는 참 싫다. 어렴풋이 묻어나는 알코올 향과 뒤섞인 무겁고 서글픈 냄새. 그것은 사람의 몸을 지치게 하고 마음을 약하게 하는 주술 같은 힘을 필시 가지고 있을 거다.
수술실 불은 아직 켜진 상태고, 그 앞에 서성이는 고 팀장이 보인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단단한 성격인데도, 그녀의 얼굴이 어둡다. 제이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다섯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메일로 도착한 제이의 글을 20쪽 가량 읽고 있었을 때, 복자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흑흑흑...흑흑...
“뭐야? 김 대리? 김 복자!! 무슨 일이야? 엉?”
결국 고 팀장은 옆에 있는 우성과 간신히 통화를 한 뒤에야 병원으로 달려 올 수 있었다. 복자는 한 마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울다가 지금은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모으고 의자에 앉아 있다. 복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다 못해 핏기가 몽땅 빠져 버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김 대리.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 뭔 일 나겠어.”
복자 곁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우성이 고개를 들어 고 팀장과 눈을 맞추었다. 그도 같은 눈빛이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두 손을 깍지 낀 채로 작은 몸을 더 동그랗게 만들 뿐이었다.
“나 때문이에요. 나 때문에.”
희미하게 복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지 않아 그 얼굴을 확인할 순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건 사고야. 사고.”
고 팀장은 복자의 떨리는 어깨를 따뜻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러자 서서히 고개를 들어 눈물에 짓이겨진 두 눈이 앞을 보고 겨우 토해내듯 말했다.
“그 벌, 내가 받아야 하는 건데... 쟤 잘못되면... 나 못 살 것 같아요... 나 못 살아요. ”
우성의 눈 주변이 살짝 붉은 끼가 올라왔다. 불안했다. 눈앞에 보이고, 손 뻗으면 닿을 거리지만, 여자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 줄 수가 없었다. 그 눈물의 의미가 두려웠다. 그녀가 점점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수술실 불이 꺼지고, 문이 열렸다.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이었다. 수술을 끝내고 나온 의사의 얼굴이 파리하게 지쳐 보였다. 그 앞에 고 팀장이 제일 먼저 달려갔고, 우성과 복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자의 몸이 휘청거리자, 우성이 얼른 그녀를 뒤에서 안듯이 받쳐 주었다. 그러자 복자의 손이 천천히 그를 밀어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내장 파열이 심한 상태여서 ... 일단 수술 예후를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아.... 그러니까 살 수 있다는 거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의사의 설명을 들어야 하는 데 점점 그 소리가 작아진다. 하얗게 마른 입술이 달싹하게 움직이는 데 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장면이 뿌옇게 흐려졌다. 천장이 돌고, 벽이 앞으로 튀어 오르다가 멀어졌다.
“어..어어!!!”
“김 복자!!!”
“복자 씨!!!”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복자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하나의 줄이 탁 하고 끊어져버린 것처럼. 그녀를 마지막까지 지탱하고 있던 긴장이 삽시간에 풀려버린 것이다. 안도의 한숨이 그녀를 덮쳐 버렸다. 우성은 복자를 품에 안아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여자가 안타까워서. 그리고 이 여자가 원망스러워서.
커다란 창문을 뚫고 들어온 아침 햇살이 간밤의 소란을 덮어버린다. 흰색 머리칼과 뚜렷이 대비되는 까만색 뿔테 안경을 쓴 진희가 병실 가운데 서 있다. 그녀는 흰색 가운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앞에 앉아 있는 우성을 쳐다보고 있다. 불러도 그는 대답이 없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도, 어떤 인기척에도 반응하지 않고 있다. 이럴 땐 말없이 상대를 기다려줘야 한다는 걸 진희는 알고 있다.
침대 옆에 앉아 굳은 얼굴로 한 사람만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성. 그 얼굴에 묻어난 간절함이 오래된 세월 덕분에 덤덤해진 진희의 마음도 울렁이게 했다. 참지 못하고, 그녀가 다가가 우성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였다.
“어? 외숙모?”
굳었던 표정이 부드럽게 펴지며 단정한 이목구비가 예의 바른 미소를 짓는다. 습관처럼 박혀버린 미소였다.
사람들은 네가 얼마나 외로운지 모르지.
“좀 괜찮아? 보니까 밤 샌 것 같은데...”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선하게 웃는다.
“저야 뭐... 다친 것도 아닌데요. 뭐. 여러모로 신경써줘서 감사해요. 외숙모.”
“그 말은 다치지 않아서 좀 서운하다는 말로 들리는 데... 내가 잘못 해석한 건가?”
진희는 무거운 공기를 흩어내려고 애써 여유 있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조금이라도 우성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수술한 남자 환자는 어떤가요? 상태는 좀...”
“응. 안 그래도 지금 보러 가려고. 일단은 아직까지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워낙 큰 수술이었고, 위험했어.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죽지 않은 게 다행이지. 그래도 최고의 팀이 붙었고, 응급도 완벽했어.”
진희가 고개를 돌려 아직 눈을 감고 있는 복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아가씨구나. 민 우성 마음을 졸이게 하는 사람이.”
“아.....”
우성의 얼굴이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로 피어난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감정이란 게 숨길래야 숨길수가 없다는 걸 진희도 잘 알고 있다. 청춘의 시절이 그녀에게도 분명 있었으니깐.
그래서 더욱 말해 주어야 했다. 일방적으로 노력하는 감정이 얼마나 위험하고 암담한 것인지를. 진희가 한쪽 입술을 깨물며 우성의 이름을 낮게 부른다.
“ 우성아..”
그 목소리가 너무나 낮고 깊어서, 우성은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진희를 바라보기만 했다.
“있잖니... 이런 말 하면 네가 어떻게 생각할 진 모르겠다만. 저 아가씨랑 만나는 거... ”
“알아요. 외숙모. 어머니 말씀하시려는 거죠. 설득할겁니다. 설득할 수 있어요. 저. 할아버지도 도와주실 거고요. 그리고 만약에 끝까지 안 된대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아니, 아니. 그런 말이 아니야.”
진희는 고개를 작게 흔들며 주머니에서 뺀 손으로 안경을 벗고 눈가를 문지른다. 어떻게 이 말을 꺼내 놓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누군가는 말해야 했다. 더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여기서 멈춰야 한다.
“우성아... 내 말은... 저 아가씨를 위해서야. 넌, 너네 엄마를 몰라.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그게... 그러니까... 지금.. 이 일을.. 하”
우성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 쥔 채로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믿고 싶지 않겠지. 그런데 모든 일이 다 벌어지고 나서 가슴 치는 일은. 너는 안했으면 좋겠구나.”
진희의 붉게 변한 눈 위로 촉촉한 물기가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