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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Mar 01. 2024

벌써 3월입니다.

겨우내 홋카이도의 겨울을 느끼고 싶어 삿포로를 찾은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여행객들은 삿포로의 어떤 면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돌아가시려나요?

누구나 겨울의 삿포로를 사랑하지만 여행자와 거주자가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삿포로에 살다 보니 겨울을 나는 게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눈이 오는 날은 모자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보고 걷습니다. 눈보라가 눈으로 들이쳐 얼굴을 들 수가 없지요.

날이 추운 날은 길이 얼어서 반질반질할 정도로 빙판이라 넘어지지 않으려면 발끝만 보면서 펭귄처럼 뒤뚱뒤뚱 아장아장 걸어야만 합니다.

하루이틀 날이 푹해지면 눈이 녹아 온 거리가 거대한 슬러시 덩어리로 질퍽입니다. 그동안 쌓이며 얼어온 눈들이 살풋 녹아 종아리까지 푹푹 빠집니다.

자동차들이 슬러시에 빠져 바퀴가 헛돌며 꼼짝을 못 하면 앞에 가던 차, 뒤에 오던 차 누구나 할 것 없이 차 안에서 삽이며 빗자루 등등을 들고 나와 진창에 빠진 차바퀴 주위의 녹은 슬러시를 치웁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순간 조폭들 싸움 났나 싶은 분위기지요.

눈이 오면 눈 치우기 바쁘고, 미끄러지지 않게 발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걷느라 주변을 둘러볼 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발끝만 걷다가 잠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 순간 낯선 풍경이 펼쳐집니다.

늘 보던 풍경, 늘 다니던 길인데 분명히 새롭습니다.

다른 계절처럼 천천히 흘러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스펙터클 하게 변하기 때문일까요.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다가 어머! 하며 감탄을 터뜨리는 날이 적지 않습니다. (감탄 뒤 바로 아이고 밖에 어떻게 나가냐… 하는 탄식이 따라오기도 합니다만)

홋카이도는 3월에도 눈이 내린다지만 그래도 곧 봄이 오겠지요.

공원에서 만난 딱따구리


3월이 되니 지난겨울이 모두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난 다음 겨울엔 여기에 없을 텐데 조금만 더 천천히 눈을 즐길걸 싶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겨울, 눈에 마음에 꼭꼭 담아두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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