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매 소개 편
25년 9월 19일 아침 06시 11분
6시 알람이 울리고 서야 일어났다. 작심삼일이라 했던가. 벌써 느슨해지는 정신과 육체.
핑계를 대자면 어제 오랜만에(1년 넘게)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왔고, 30분 정도, 집에 와서 30분 정도 동네 한 바퀴를 여러 번 했고, 마지막으로 S와 배드민턴을 30분가량 했더니, 체력이 방전이 되었나 일어나기 힘들었다. 이런 종이체력 같으니. 체력부터 키워야 하는 거 아는지.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고들 했는데, 요즘 들어 확실히 느낀다. 체력이 예전만치 않다. 놀려고 해도 체력이 안 돼서 이제 올나이트 이런 건 꿈도 못 꾸겠다.
어제는 어릴 적 나의 B랄 친구들을 소개했었다. 그러고 나서 어릴 추억에 잠시나마 더 잠겨 있었다. 다음으로 누굴 소개해야 하나 고민하다, ‘ 아 그래, 가족을 소개해야겠구나. 특히 어릴 적 나에게 누나 E는 대단한 존재였다. 오늘은 E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참고로 나와 E는 2살 터울이다. 누나라는 존칭은 빼고 E라고 하겠다. 요즘은 누나라는 호칭보다 누구 엄마 아니면 여사라고도 부른다(나이가 많아서 그런 건 아니고 괜히 여사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서)
초등학교(다시 말하지만 우리 때는 국민학교) 입학하고 주변 형 누나들이 지나가면서 그랬다. E동생이야?, 니가 E동생이가? 누나들에게 서는 상냥한 물음이, 형들에게 선 장난기 가득한 물음이 나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땐 왜 그런지 몰랐다. 내가 E의 동생인 게 뭐 어떻다는 것인가? 나는 나일뿐인데. 그런데 왜 그렇게 내가 E의 동생인지 물었는지는 그리 오래가지 않고도 알게 되었다. 나의 E는 왈가닥이었다. 그래서 남자애들의 기피대상이자, 장난을 같이 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학우였던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86년, 이때 우리나라에서는 86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이 86이라는 숫자에 집중해야 된다. 그때 학교에서 널리 통용되는 별명이 있었는데, 전교생이 다 알만한 수준이라 보면 되겠다.(참고로 우리 학교는 학년당 5 반씩 있었다. 전교생이 천이백 명은 넘는, 그때는 작은 아니 보통 정도의 학교였던 것 같다.)
86 아시아게임 이건 공식적인 아시아게임 이름이다. 학교에서는 이걸 패러디한 별명이 널리 불리어지고 있었으니, 그건 바로 ‘ 86 아시아 깡패’ 그렇다, 저 별명의 주인공은 바로 E다. 얼마나 남자애들과 치고받고 다녔는지, 형들이 지어준 별명임이 틀림없었다. 첫 입학 할 때는 너 E동생이야? 가, 86년에는 너 86 아시아 깡패 동생이야 로 바뀔 정도였다. 우리의 E는 대단했다. 그랬던 E가 지금은 조용하고 조신조신 한 거 보면 참으로 놀랐다. 매형은 모를 것이다. E의 과거를. E의 모든 행적을 알고 있는 나로서도 E의 변한 모습을 보면 정말로 신기하다. 저래 왈가닥이었는데, 지금은 여리여리 하고 조강지처? 같은 스타일은 아니지만, 조용한, 그리고 빠르지 않은 보통의 아줌마가 되어 있다는 게. 가끔 조카들을 보면 E의 유전자들이 보이긴 하는데, 매형은 그때마다 고개를 갸웃할 거다. 누굴 닮아 애들이 저래 별나지? (매형도 엄청 조용한 스타일) 매형 모르시죠, 그거 E 닮아서 그래요? 혹시 E의 어릴 적 모습이 담긴 앨범을 보지 못했나요? 아직도 E의 과거를 모르시나요? 아님 아시는데 그냥 묻고 넘어가신 건가요? E가 왕년에 부산의 한 섬에서 그것도 한 섬의 한 동네 학교에서 이름 좀 날리던 아니 별명 좀 날리던 깡패였어요. 지금을 손을 씻고 조용한 엄마이자 아내가 된 거 같은데,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이렇게 변할 줄이야? 무슨 계기로 이렇게 변했는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담에 만나면 한번 진중하게 물어봐야 할까 봐요. 여기까지 간략하게 E를 소개하겠다. 다른 건 다 잊어도 좋다. 86 아시아의 깡패만 기억하시라, 그런 E 밑에서 같이 생활하며 자란 나의 노고도 기억해 주시라.
다음은 동생 S. 동생은 뭐 E와 달랐다. 왈가닥도 아니고 뭐 하나 특출 나게 도드라지는 건 없었다. 그냥 평범한, 누구에게나 다 있을 듯한 그런 동생(나중에 S도 변해서. 다른 에피소드에서 이야기해 주겠다). 그런데 S도 하나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나에게 절대 오빠라고 하지 않았다. 서양식 예절을 배운 건지 항상 나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만 부른 게 아니고 성까지 다 붙여서 야~XXX 이런 식으로, 짜식 건방지게 오라버니 이름을 맨날 불러. 하도 듣다 보니 나야 익숙해졌는데 가끔 오시는 친지 어르신들이 들으시고는 꼭 한소리씩 하고 가셨다. 오빠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 오빠라고 불러야지, 이름을 그렇게 부르면 되냐. 이런 여러 친지 어르신들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계속 이름을 불렀던 거 같다. 이제는 이름 부를 일도 잘 없고, 누구네, 아니면 뭐 특별하게 불려지는 호칭이 없는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난 아직도 오빠라는 호칭을 대단히 갈망하고 불러 주기를 원한다. 누가 나에게 오빠 이러면 정말 기분이 너무 좋다(참고로 우리 집 M도 나에게 오빠라 하지 않았다. 연애할 때 초기부터, 지금도 오빠라고 하지 않는다) 왜 누가 나의 오빠라는 호칭을 허락하지 않는 것인가 홍길동도 아니고 말이다. 호부호형을 허락하겠다는데 왜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것인가? 오빠라는 단어를 쓰기에 내가 너무 노안인가? 그래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당연 오빠인 것을 성별이 다른 누나도 아니고, 아 증말 쓰다 보니 더 갈망하게 되네, 누구의 노래처럼 ‘오빠라고 불러 다오’를 백퍼 공감하는 일인이다. 글을 쓰다 보니 떠오르는데 S는 독한 구석이 있었다. 살이 조금 통통하게 올랐었다. 이걸 빼겠다고 매일 빠짐없이 운동을 했는데(비가 오나 천둥이치나 진짜 했다) 진짜 살을 빼더니 식성까지 바꿔서 고기도 웬만하면 잘 안 먹는다. 어찌 그렇게 되지 할 정도로 정말 대단한 S다. 어릴 적 사촌형이 지어준 별명은 ‘대(돼) 순이’였는데 여기에 충격을 받았나, 어느 날부터 운동을 하더니 지금 계속 그 체중을 유지하는 거 같다. 독한 것 그리 할 거면 공부도 좀 그리 하지(엄마 아빠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내가 대신 여기서 해 본다.) 살 빼는 게 공부보다 더 어렵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정말 리스펙이다. S는 독한 걸로 마무리해야겠다. 꾸준하게 야 XXX으로 불렀고, 살도 악착같이 뺀 독한 S라고. 이래서 우리 姓을 가진 여자분들 하고는 결혼하면 잘 산다?라고 들 내 윗선배님들이 말을 하던데. 저런 독기가 있어서 그런가? 여하튼 둘 다 독한 건 맞는 듯.
어린 시절 정확히 87년 연말까지 내 주변의 인물들에 이야기했다. 친구 D와 J, 그리고 E와 S. 88년도 5월을 기점으로 부산을 떠나 군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특히 동네 형 동생들과는 잊을 수 없는 여러 추억들을 만들었다.
그 동네 형들과 동생들 이야기는 내일 하겠다. 벌써 설렌다. 제일 먼저 떠 오르는 TT형, 그리고 골목대장격인 JJ형등. 스포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