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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Mar 14. 2017

그녀

그녀는 횟감으로
찌개를 끓였다
그 날것을 어떻게 먹어
생의 어떤 풍경들은 비리다
오래도록 끓여낸 생선은
더 이상 횟감이 아니었다
석양을 가둔 창문들이 바람에
몸을 떨고
그녀는 먼저 떠난 남편을 생각한다
그는 물고기를 잡으려다
그물에 발이 빠졌다
그물에 갇힌 물고기떼는
그를 물 속으로 빨아들였다
그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 갔고
그녀는 그가 헤엄을 친다고 생각했다
잠깐 숨을 참는 놀이를 즐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뭍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생의 어떤 순간들은 비리다
 
죽음이 삶을 숨겨버린 순간
그녀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녀의 새로운 남편은 회를 좋아한다
날것의 한기가 스미면
그녀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켠다.
푸른 불꽃이
날것의 생을
익힌다
 
오래도록
그녀는 풍경을 끌어 안고 있었다
무릎이 시리도록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림자를 뜯어 먹으며
밤이 올 때까지
풍경 속에 갇혀
앉아 있었다
 
다만 기다리는 일 외에
받아들이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듯이.
 
오래도록
그녀는
찌개를 끓인다
생의 비린 맛이
사라질 때까지
 
잠시
고요히
숨을 참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미쳐버린 사람을 알고 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사랑 때문에 사람이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믿기 싫은 현실로부터 도망 친 사람의 삶. 그것은 블라인드로 바깥으로 향하는 창을 닫아버린 세계에 자신을 가둔 것은 아닐까. 그런 내면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일은 아닐까.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사별로 겪게 되는 감정적 고통이 출산의 고통보다 강하다고 하는데 나는 감히 그 고통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시를 쓸 때 써도 되는 것일까 고민했다. 하지만 쓰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었다. 이 시가 그녀에게 닿을 수 없다고 해도. 그래도 위로하고 싶었다. 이것은 또한 나만의 위로의 방식이기도 하기에. 나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어 슬프고, 또한 매우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위로하고 싶었다.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다만.



이미지 출처 라인데코 핸드폰 배경화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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