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 속의 균형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부대찌개를 맛있게 만드는데 실패한 적이 있다.
처음 부대찌개를 끓일 때 남는 야채를 이것저것 조금씩 넣었는데, 거기서 나온 채수 때문에 맛이 맑아지는 것이 문제였다. 부대찌개의 의도된 불량한 맛보다는 전골에 가까운 풍미였던 것이다.
두 번째 부대찌개를 끓였다.
이번에는 불량한 맛을 만드리라, 스팸과 소시지도 많이 넣고 다른 야채는 넣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양념장도 진하게 만들었고, 육수도 사골라면 가루를 배합해 맛이 없을 수 없게 만들었다. 스팸도 얇게 가득가득 썰어 넣어 짜고 기름진 맛이 충분히 우러나도록 했다.
다행히 맛있게 만들어졌다. 밖에서 먹는 부대찌개와 거의 맛이 비슷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했기에 조금 남은 찌개는 다음날 또 맛있게 먹으면 되겠지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날 찌개를 데워 밥을 먹으려는데 뭔가 맛과 느낌이 달랐다. 들어갔던 떡 때문일까 전분기가 가득해 죽과 같은 형태였고, 건더기는 스팸들만 즐비했다. 아 내가 너무 욕심을 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재료들의 밸런스가 무너져 있으니, 다시 팔팔 끓여도 이건 그냥 스팸죽일 뿐이었다.
가끔, 그냥 적당히 하면 되겠지 싶은 일들이 있다. 디테일이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은 일들, 별다른 비법이 없어 보이는 일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그 속에는 나름의 균형이 존재한다. 마치 부대찌개를 만들 때처럼, 재료들의 조화로운 배합이 없다면 맛의 균형이 무너지듯이 말이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그냥 대충 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삶의 다양한 요소들 간의 조화와 균형이 없다면 결국 우리의 인생도 맛을 잃고 말 것이다. 그냥 굴러가겠거니 하는 것들 속에는 생각보다 디테일이 숨어있다는 관점이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