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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의성 Oct 29. 2022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람은 열심히 달릴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3학년 3월, 첫 수능 모의고사를 봤다. ‘아차’ 싶었다. 나는 전혀 수능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모의고사를 보기 전까지 ‘내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현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뭔가 부딪혀보고 나서야 나는 내 상태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당시 내 상황은 심각했다. 그제야 부랴부랴 수능 준비를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좋지 않았다. 원치 않는 대학에 다니다, 다시 수능을 본 후에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첫 단추를 잘못 끼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내가 대학생활을 늦게 시작해서가 아니다. 삶의 토대가 되는 중, 고등학교 시절을 멍하니 보냈기 때문이다. 흔히 ‘사춘기’라고 불리는 시절은 삶의 꼭 필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가 중요한 것은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일종의 ‘정신적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울함과 짜증을 느끼고, 다양한 고민을 하면서 한 뼘 성장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과 생각들은 이후 삶을 살아가는 기본 토대가 된다. 


하지만 나에게 ‘사춘기’란 ‘텅 빈 무언가’이다. 당시 내가 처한 환경은 매우 복잡했고 때론 우울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도피’를 감행했다. 도피라는 거창한 단어를 썼지만, 사실은 ‘현실에서 도망쳤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나는 현실을 똑바로 보지 않고, 멍하니 그 시절을 보냈다. 의도적으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당시 복잡하고 때론 참혹했던 상황으로부터 나를 보호했지만, 결국 나는 한 뼘도 성장하지 못한 어린이로 남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현실적으로 늦어진 대학생활까지, 나는 잘못 끼운 첫 단추로 인해 내 삶이 어긋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람은 열심히 달릴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와 나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 사이의 심각한 차이를 절감했다. 내가 목표로 하는 삶은 살기 위한 그 어떤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잘못 끼운 첫 단추 때문에, 단추들을 다시 풀어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판이었다. 남들이 한 계단씩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다시 뒤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목표와 현실의 차이를 절감했을 때, 나의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죽어라 달리자’ 죽어라 달려야 걸어가는 다른 사람들과 보폭을 겨우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의 삶은 항상 ‘달리기’뿐이었다. 때론 힘들어서 걸어가고 싶었지만, 나는 쉴 수 없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쓰러질 것 같아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쉬지 않고 달리는’ 그러한 시기였다. 그것은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린 재해와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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