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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디귿 Apr 10. 2021

소정리

모모의 초단편소설

<이미지 출처 - 개인 소장>


    아무 연고지도 없는 이곳으로 온 지도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이 곳에 오기까지 큰 결심이 있었고 부모님은 왜 살기 좋은 서울을 두고 시골로 내려가냐고 핀잔을 주었다. 통보하듯 서울을 떠난다는 딸이 못 미더웠는지,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갈 내가 걱정되어하는 말이라는 걸 아는데도 응원해 주지 않는 부모님께 못 내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곤 아침 일찍 여행 가듯 서울을 떠나왔다.

    

    충북 옥천군 소정리. 이름부터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 곳은 인후 씨의 고향이기도 했다. 벚꽃이 만개했을 때를 맞춰 인후 씨는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처음 와 본 지방의 낯선 소도시가 나를 사로 잡기 충분했다. 터널 같은 벚꽃 나무 아래를 걷다보면 흩날리는 꽃잎들이 마치 천국으로 바래다주는 기분이 들었다.

    "인후 씨, 이렇게 좋은 곳에서 자랐어?"   

    "좋다니 다행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와서 잘 못 느꼈는데. 오랜만에 와서 보니 좋긴 좋네."

    "우리나라에 이렇게 소박하고 예쁜 곳이 있다니 영화 속에서도 못 본 것 같아."

   "어렸을 때 촬영한다고 종종 오기도 했어.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어느 영화 속 배경으로 나오긴 했을 거야."

    "그래? 그럼, 그렇지. 이렇게 좋은 곳을. 나만 여태 모르고 살았네."

대청호를 낀 주변의 풍경들은 마치 수채화를 그려 놓은 것처럼 예뻤다. 인후 씨가 소개하는 곳곳마다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니 내 안에 있던 못된 마음들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결혼하면 여기서 살자."

    "뭐 먹고 살려고? 여긴 먹고 살만한 거리가 없어."

    "그럼 서울 가서 이런 시골에서 먹고 살만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고 내려오자. 인후 씨 처음 만났을 때 반한 것처럼 나 지금 여기에 푹 빠진 것 같아."

인후 씨는 말없이 기분 좋은 미소를 건넸다.


    인후 씨를 처음 만난 건 어느 철학 모임에서였다.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등록을 한 곳에 인후 씨가 있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되었고 인후 씨는 그 모임에 리더였다. 그만큼 지식도 많았고 자신의 세계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모임에서 인후 씨는 말이 많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대부분 침묵에 가까울 정도로 과묵한 사람이었다. 나는 왠지 그런 인후 씨가 진중한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런 그에게 손편지로 고백을 했고 며칠 뒤 손편지로 대답을 받았다. 우린 전보가 없던 그 옛날 사람처럼 편지를 주고받았다. 인후 씨를 생각하면서 예쁜 편지지를 고르고 예쁜 꽃잎이나 낙엽을 보면 잘 말려두었다가 코팅을 해서 주었다. 이런 우리가 특이해 보였는지 모임 사람들은 우리를 할배,할매라 불렀다.  


    대청호 주변을 드라이브하고 인후 씨 부모님을 처음 뵈었다. 인자하게 웃어주시는 모습을 보니 인후 씨의 다정한 웃음이 부모님의 웃음과 닮아 있었다. 맛있는 시골밥상으로 근사한 저녁을 대접받고 차 한잔을 내어 주었다. 따뜻한 목련차 한 모금에 긴장된 마음이 녹아내렸다.

    "올 봄에 난 목련으로 만든 거라 맛이 좋을 거예요. 차도 안 다니는 산에 가서 딴 거라 깨끗한 거야."

은은한 향이 집 안의 공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어색할 줄 알았던 첫 만남이었지만 내 집보다 더 안락한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서 하루를 묶었다. 챙겨간 옷이 있었지만 어머니가 내어주신 옷을 입고 하루를 지냈다.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소리에 잠이 깼다. 머릿속까지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인후 씨를 깨워 산책하러 가자 말했다. 아직 아침으로는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지만 풍욕으로 목욕재계한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인후 씨, 진짜 거짓말 아니고 여기 살고 싶어. 자기가 아니라면 나 혼자라도 올까 봐. 인후 씨가 여기서 어떻게 자랐는지 알 것 같아. 여기 오면 좋을 것 같아. 인후 씨처럼 다정하고 따뜻하고. 위안을 준다고나 할까."

나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는지, 귀엽다는 말을 건네며 산책길에 가벼운 키스를 건넸다.


    서울의 생활은 여전히 각자의 일들로 바쁘게 흘렀지만 가끔 소정리를 잊지 못하고 몇 번은 아침 첫 무궁화 기차를 타고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소정리의 기억은 우리의 일상에 살아갈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 던 장마가 몹시 내리던 날, 인후 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믿을 수 없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게 온 세상이 멈춘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인후 씨의 죽음은 나의 일상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찢어진 일상을 꿰워도 맞춰지지 않았다. 그대로 나는 서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찾아 온 소정리의 봄은 여전히 천국의 계단에 서 있는 듯했다. 인후 씨가 그렇게 떠나고 계절이 바뀌어 가는 걸 온몸으로 느꼈던 이 곳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꽃이 피고 지고, 앙상한 마른 가지가 푸르른 나뭇잎으로 무성하게 자라는  보고 있으니 꿰어도 꿰어지지 않는 마음이 조금씩 채워지는 걸 느꼈다. 소정리의 모든 것들이 인후 씨의 따뜻한 품처럼 나를 보듬어 주었다. 우리의 사정을 아는 동네 사람들은 말은 아꼈지만 원래 나고 자란 이 곳 사람처럼 나를 대해 주었다. 소정리의 생활은 서울의 생활이 전혀 생각나지도 그립지도 않게 했다. 처음에는 내가 안쓰러워 온 몸으로 거부했던 인후 씨의 어머니와도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일 년 이 지난 후 소정리와도 멀지 않은 읍내 우체국에 취업해 근처에 집을 구했다. 중고차 한 대를 구입해 퇴근 후에는 대청호 드라이브도 즐기고 주말이면 그 집에서 묶었다. 주변으로 분위기 좋은 카페와 맛집도 많아 인후 씨 어머니와 데이트도 즐겼다.

    "윤희가 딸이라면 좋았을 텐데, 인후 생각도 안 나게."

    "딸 하면 되죠."

    "딸이지. 이제. 누가 뭐래도 내 딸이지. 내가 널 붙잡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아니에요. 어머니. 그런 생각 마세요."

    "앞길 창창한 너를 내가 막고 있는 게 아닌가... 자꾸 미안해져서... 남자 친구도 만들고 해야 할 텐데"

    "제가 좋아서 여기 온 거예요. 인후 씨가 아니라 그냥 이 동네가 좋아서. 인후 씨는 이제 없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서로 얼마나 애틋하고 안쓰러워하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 그럼 이모라 할까요? 이모가 더 편한 것 같아요. 원래 엄마한테 못하는 말 이모한테는 하곤 하잖아요. 이모면 좀 더 비밀도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고."

    "그래라. 엄마면 어떻고 이모면 어떻냐. 난 네 편인데."

어머니는 무심코 털어놓은 인후 씨 이야기에 내 마음이 뭉개진 걸 아는지 나의 마음을 살펴주었었다.

    "이모, 그럼 우리 다음 주 주말엔 쑥 뜯어서 쑥떡 해 먹을까?"

나는 이모라 부른 김에 말까지 놓기로 마음 먹었다. 이제 비밀을 조금씩 털어놓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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