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리 Jul 03. 2021

동물농장 2021(3/10)

<제3화>  너구리 문스톤 영감과 숯 곰빅아이언

지각한 너구리 문스톤 영감이 눈치를 보며 숯 곰 빅아이언의 근처로 소리 없이 다가가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족제비가 있었으니, 세미나 시작 직후 출석체크를 하던 조태기였다. 얼떨결에 눈이 마주친 문스톤 영감이 멋쩍은 웃음을 짓자, 조태기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괜찮다는 사인을 보낸 후, 옆에 와 있던 죰센긴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영감 아직 정신 못 차렸구만  


너구리는 비범한 청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상식을 소울훈련소에서 배우지 못한 조태기의 나지막한 험담이 문스톤 영감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문스톤 영감은 진지하지만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옵핸드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빅아이언에게 한 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이런 건 그냥 영상으로 보내줬으면 좋았을 거예요. 이런 비대면 시대에 굳이 자기 자랑 빼고는 남는 것도 없는 세미나란 걸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 이름도 참 거창하지. 지금 내 아이들이 저녁 같이 먹으려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에휴.....”   


숯 곰 빅아이언은 신입 프로그래머로 덩치는 컸지만 말이 느리고 어눌해서 헛간에서도 별로 친구가 없었다. 원래 이 돼지우리에서는 원가를 낮추기 위해 최저임금으로 신입과 훈련소 인딴들 만을 데리고 프로젝트를 돌리고 있었는데, 빅 아이언도 그렇게 뽑힌 신입원이었다.  


어차피 정부 과제를 통해 들어온 클라이언트라 다시 볼일이 없으니 프로젝트의 질은 낮아도 그럭저럭 굴러는 가고 있었고, 옵핸드는 남는 돈으로 져마니에서 건너온 새 마차 3대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눌한 빅아이언의 말투와 행동이 조태기와 옵핸드의 마음에 들었을 리 없었다. 이들은 신입 프로그래머가 처리하기에는 과도한 업무를 빅아이언에게 맡기고 비난을 일삼았다. 


빅 아이언은 그 큰 덩치로 한 마디 말도 없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집에도 가지 못하고 업무에 매달렸지만, 그것은 애초에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빅아이언을 퇴사시켜야 한다는 말이 운영회의에서 돌기 시작했을 때, 문스톤 영감이 나서 그를 감쌌다. 


한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신입이라서 모르는 게 많은 것이 당연한 거예요. 제가 한번 가르쳐 보겠습니다.


문스톤 영감은 그 뒤로 빅 아이언을 데리고 다니며, 밥도 먹이고 술도 사고 커피도 사면서 밤늦게 까지 그에게 일을 가르쳤다. 주말에도 필요할 때는 몇 시간 씩 통화를 하며 일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말이 없던 빅아이언도 문스톤 영감에게 만은 개인적인 일들을 털어놓는 듯했다. 


문스톤 영감도 빅아이언을 예뻐했다. 빅아이언이 좀 느려긴 해도 모든 것에 열심인 것이 좋았다. 그는 헛간 D동까지 통근 시간이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상황에서도 지각 한번 한적 없이 성실하게 출근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일했다. 그에게는 절박함이 있었다.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 30군데가 넘게 지원을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여기서 살아남아야 했다.  


6개월이 지나자 빅아이언은 여전히 말 수는 적었지만, 할 말은 하면서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숯 곰이 되어 있었다. 


퇴근 시간 종이 치면 가장 먼저 네무브와 함께 져마니제 마차를 타고 내 빼는 옵핸드가 이런 히스토리를 알리 없었다. 

 

옵핸드는 꼬레아산 마차를 경멸했다. 특히 '찐이었어' 같은 훈다이의 고급 마차를 싫어했는데, 꼬레아 주제에 비싼 차를 낸다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져마니의 베암베 마차를 흠모하며 그에 대한 노래를 지어 부를 정도였고, 특별한 일 없이 마차를 끌고 이리저리 배회하기를 좋아하였다. 

"자 보세요. 제가 길을 가니까 이렇게 마차 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습니까. 역시 마차는 져마니제입니다." 


옵핸드의 마차에 한 번이라도 타 본 동물들은 지하철 안내 방송 처럼 반복해서 이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너구리 문스톤 영감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본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비굴한 표정으로 옵핸드의 비위를 잘 맞췄고, 또 그래서 더 무시 당했다. 


기분이 좋아진 옵핸드가 물었다.


"문스톤 영감님, 이 농장으로 오시기 전에는 어디 계셨었죠? 제가 소문으로 듣기에는 그 명망 높은 그린 농장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거기 아주 고약한 놈 탓에 우리 동지들이 죽어 나가던 때가 있었죠?"


당황한 문스톤 영감이 대답을 얼버무렸고, 원래 질문을 해 놓고 대답은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 옵핸드가 그린 농장 사건에 대해 자기가 아는 모든 이야기를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Photo by Yannick Menard on Unsplash


이전 02화 동물농장 2021(2/10)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