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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May 02. 2024

초록, 짜낭사리처럼

컬러 테라피



약간은 바다에 질린 상태로 우붓 정글에 도착했다. 파란색 대양이 아닌 초록색의 깊고 고요한 대지의 바다에 발을 들인 것이다.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목표로 몇 주간 지내는 동안 아침은 으레 일찍 찾아왔다. 새벽 5시 정도부터 기상하여 외출 준비를 서두르곤 했다. 이른 시간부터 외출을 준비하다가 보면 전날 섭취한 나트륨으로 한껏 부은 눈으로 하품을 하는데, 벌써 바깥에는 향불이 피어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향불이 아침 안개와 비릿하게 섞여 공중으로 휘발되었다. 우리가 묵은 리조트에서도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아침 일찍부터 초록색이 도는 코코넛 나뭇잎으로 엮은 낭사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작고 신성한 바구니를 보고 있으면 담배 몇 개비가 같이 올려져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혹은 석상의 입에 담배를 물려놓은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노담(NO 담배)’ 광고가 한창일 텐데 생각하며 고국으로부터 얼마나 다른 문화를 가진 곳에 착륙해 있는지를 알게 됐다.






발리 사람들은 매일 아침 신에게 정성스럽게 만든 짜낭사리(Canang sari)를 바친다. 코코넛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손바닥 크기의 꽃 바구니에 쌀, 꽃, 과일, 사탕, 지폐, 동전, 담배 한두 개비 따위를 놓는다. 이 짜낭사리를 밟거나 차면 불운이 온다는데, 도로 정돈을 해놓으면 불운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때의 삶은 흐트러진 짜낭사리, 액정이 바스라진 스마트폰 같다. 흐트러진 삶도 짜낭사리처럼 정성을 담아서 정돈하면 그런 날만은 불행이 발길을 돌려주면 좋겠다. 행여 불행이 온다고 해도 오늘,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 그 어떤 날에도 자신의 삶을 짜낭사리처럼 가다듬는다면.







주로 흰색의 전통 복장을 갖추고 행진을 하거나 가족끼리 모여서 기도를 하며, 손바닥 크기의 짜낭사리를 문밖에 내놓는 일이 발리 사람들에게 ‘하루의 시작’이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 끼니를 챙기는 일이나 본업보다 기도를 올리는 일이 1순위이다. 부정한 기운을 없애는 의식이라고 했다. 아침마다 목도하는 그들의 아침 문화가 새벽안개처럼 몸에 차갑게 스몄다.





어느 때의 삶은 흐트러진 짜낭사리, 액정이 바스라진 스마트폰 같다. 흐트러진 삶도 짜낭사리처럼 정성을 담아서 정돈하면 그런 날만은 불행이 발길을 돌려주면 좋겠다. 행여 불행이 온다고 해도 오늘,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 그 어떤 날에도 자신의 삶을 짜낭사리처럼 가다듬는다면.



독립출판물 <모든 색이 치유였어2> 출간!




호림은?

J컬러소통연구소 대표로 색채심리상담사 1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여행이 가진 색깔들로 테라피합니다. <모든 여행이 치유였어1>, <모든 색이 치유였어2>를 썼습니다. 15년간 베테랑 기자로 일을 하면서 300명에 달하는 CEO들을 전문적으로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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