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Dec 21. 2024

많은 것을 가졌다

2024년 12월 20일 금요일

요 며칠 감기 몸살 기운이 있어서 긴장을 했다. 내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 괜찮은데 업무에 지장이 갈까 봐 걱정이 되서다. 예전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몸살이 왔는데 요즘에는 가볍게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겨울이면 몸살을 달고 산다고 할 정도로 빈번하다.


주기적인 몸살 덕분에 건강의 소중함을 상기하게 된다.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가를.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운동자체에서 오는 효과도 있겠지만, 운동을 열심히 함으로써 몸에 나쁜 음식이나 술, 담배를 멀리하게 하는 예방효과가 크지 않을까 싶다. 주위를 살펴봐도 그렇다.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술, 담배 많이 하고 불량 음식들도 많이 먹는 것 같다.




오늘은 충무로에서 업무를 마치고 퇴근했다. 안국역을 지나서 집으로 와야 하는데 집회 때문에 교통체증이 엄청났다. 시위는 이제 헌법재판소 앞에서 진행 중이다. 비상계엄령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속속 드러나는데 발상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끔찍하고, 황당하고, 분노가 일어나기도 하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한다.


성향의 문제도 아니고 진영의 문제도 아니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것에 똘기를 부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반골과 또라이를 잘 구분해야 한다. 친일 또는 매국 같은 식민지 격동기에도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위인들이 있었기에 아직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부귀영화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과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은 차원이 다른 가치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또라이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차가 너무 막혀서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 북촌에 차를 세우고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샀다. 처음 와보는 길이다. 대한민국 서울 한 복판에 이렇게 조용하고 시골스러운 길이 있었다니 새로웠다. 차 안에서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편안마음으로 교통 체증이 풀릴 때까지 쉬기로 했다.


전쟁 같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평온한 집이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퇴근 후의 일상도 그렇게 녹녹지는 않다. 얼마 전부터 직장에 다닌 아내는 회사일에 적응하느라 극도의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상태이고 아이들은 엄마가 신경을 쓰지 못하는 틈을 타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분노의 게이지가 올라가고 샤우팅이 시작된다. 심한 경우는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가장으로서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아내와 사춘기 아이들과의 언쟁이 있을 경우다. 중재가 어렵다.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도 힘들고 설령 한쪽에서 잘못이 있다손 치더라도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잘못하면 순식간에 괜히 역적으로 몰리는 수가 있다.




한 겨울 고요한 북촌의 밤, 좁은 골목길

평온하고 정겹다. 북촌도 메인스트리트가 있고 아웃사이드가 있다. 대통령 탄핵 덕분에 이런 길을 와보기도 한다. 따듯한 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편의점에 나오는 연인이 보인다. 커피를 두 개 사서 손에 들고 사이좋게 나온다. 창덕궁 방향에서부터 쭉 걸어오는 것을 보니 차는 없는 것 같다. 차림새도 수수하다.


여인은 남성의 팔짱을 끼고 꽁냥꽁냥 이야기를 하며 시종일관 밝은 표정이다.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걸음걸이는 안정적이고 표정은 환하고 평온하다. 추측컨대 인사동 나들이를 하고 서촌에서 저녁을 먹고 창덕궁 뒷길로 산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만족과 쓸쓸함, 외로움과 고독감등 정체불명의 감정들 때문에 뭔가 말끔하지 않은 정신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확신이 필요한 남, 녀관계에서는 누군가 먼저 확신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관계는 안정이 된다.


내 삶에 확신이 없어서일까? 원래 인간의 삶에 확신이라는 것은 없지 않던가? 그렇다면 무엇에서 오는 혼동스러움일까? 갱년기 탓도 있겠지만 이런 찝찝하고 확고하지 않은 감정과 정신상태가 불만스럽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촌을 지나 북악스카이웨이 길로 집에 왔다. 17년 전, 돌도 채 되지 않은 딸을 안고 눈 오는 북악스카이웨이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아내도 화장도 하지 못한 채 부스스한 얼굴로 나와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지금보다 돈도 없었고, 집도 없었고, 차도 연식이 15년이 지난 아주 허름한 중고차를 타고 다녔다.


실제 운행 중에 도로 한 복판에서 차가 멈춘 적도 있었다. 마트에 가면 묶음포장되어 있는 과자만 샀고 편의점에 가면 1+1, 2+1 이외의 상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멤버십 할인이라는 것, 포인트 적립이라는 것은 일생에 해보지도 않았는데 그때는 열심히도 포인트를 모아 재꼈다.


그래도 그때는 쓸쓸하거나 외롭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젊었고, 나를 사랑해 주는 어머니도 계셨고,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형도 있어서였을까? 이제 의지할 사람은 없고 책임질 사람들만 있어서일까? 물론 아내가 있지만 부모와 형제는 다른 영역이다.




편의점 커피를 들고 북촌 길을 걷는 소박한 연인의 모습에서 또 깨달았다. 그들의 삶이 해피엔딩으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저런 마음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아들, 딸도 있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마누라도 있는 내가, 저들보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실제 내 감정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상대적으로 그 들보다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머리도 리셋하고 마인드로 리셋을 한 번해야 하나보다. 너무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있어서 포맷을 한 번 하고 다시 깔아야 하지 않나 싶다. 그녀의 글 귀가 다시 머릿속을 스친다.


"아는 것은 아담 이래의 비극이고 데카르트(Descartes) 이래의 불행 의식이다." 출처: 전혜린 에세이


대부분 몰라서 불행한 것보다 너무 알아서 불행한 경우가 더 크지 않나 싶다. 어느 정도 안 이후에는 그 만 아는 것도 행복을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기를 좀 더 많이 먹었다는 것 이외에 아무 쓸모없는 것들에 집착하는 것들을 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