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초등학교 친구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공부는 중상위권 수준이다. 그의 집도, 우리 집도 고만고만한 평범한 집의 자식들이다. 문제는 J의 엄마가 자뻑기질이 있었다. 어느 날 J의 엄마는 J에게 나와 놀지 말라고 말했다.
J와 내가 놀기에는 수준이 안 맞다고 생각했나 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집안이 수백억 원대 자산가도 아니고 아들이 전국 수석을 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게 훌륭한 집안이라면 자존심이라도 덜 상할 텐데 이건 기분만 더러웠다.
훗날 J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했고 졸업 후 창업을 해서 한 동안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듯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나면서 회사가 기울기 시작했다. 변하는 세상에 대처하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40대 초반에 이직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어느 날 J를 찾아가 저녁식사를 했다. 나는 친구가 보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나 J는 폼을 잡고 훈계를 했다.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거냐는 둥, 그 월급으로 4인 가족이 먹고살겠냐는 둥.
나는 상처를 받았다. 자존심도 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초등학교 때부터 가까이 지냈던 J가 그럴 수는 없는 거였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도 망상에 빠져 있었다. 예를 들면 돈은 충분히 벌 수 있었으나 벌지 않은 것이었고, 결혼을 충분히 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만약 사실이라도 돈 없는 사람이 돈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 말은 돈을 벌고 나서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나마 들어준다.
얼마 전 J의 소식을 들었다. 25년간 운영하던 회사를 정리하고 취직을 했다고 한다. 주말도 없이 밤낮으로 일한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월급을 받는지는 모르겠으나 부럽지 않다.
사업체 운영한다는 것은 영혼(英魂)을 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혼(魂)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시간의 문제이지 필망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술만으로는 사업을 할 수 없다. 기술은 매일 발전하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혼(魂)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25년간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나름의 혼(魂)을 쏟았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여전히 쉽지 않다. 그의 필망은 엄마에게 물려받은 자뻑 DNA도 한몫했다. 역량은 하루아침에 키워지지 않는다. 플레이보이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물리점수 잘 받았다고 물리학박사되는 것 아니다.
갑자기 돈을 벌겠다고 돈이 벌리는 것이 아니고, 갑자기 결혼하고 싶다고 결혼이 되는 것이 아니다. J의 엄마는 아들이 대단한 인물이라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J엄마는 아마도 J가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결혼을 해서 아들 딸 낳고, 집도 사고 차도 사고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J는 지금 이중에 아무것도 없다.
J는 여전히 나의 초등학교 친구다.
나는 J가 잘 되길 바란다.
천천히 쉬지 말고
20년 전부터 매일 아침에 한 번씩 되뇌는 내 삶의 모토(Motto)이다. 화려한 불꽃으로 순식간에 타오르다 재가 되고 싶지 않다. 천천히 타다가 숯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