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태어나 50년 넘게 살면서 세 번 째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때 형과 함께 갔고 두 번째는 딸이 어렸을 때 나들이를 다녀왔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는 혼자 다녀왔다. 남산 타워는 50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세기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강산이 다섯 번 바뀐다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경기도 장흥에 있는 한정식집에 자주 갔다. 내 인생 최애의 한정식집이 있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음식점이었는데 2년가량 운영 하다. 폐업을 했다. 경영상 어려움도 있었고 주인의 건강이 좋지 못해서 폐업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마음에 드는 식당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유명하다는 핫플레이스는 맛은 좋은데 사람이 북적댄다. 겉만 뻔지르하고 음식맛은 좋지 못한 곳도 많다. 이처럼 완벽하게 내 맘에 딱 맞는 것이 나타나는 것은 참 어려운 것이다. 나타나도 금방 사라져 버리는가 보다. 연애도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싶다.
남산 타워 도착 시간이 오전 8시였는데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일찌감치 관광을 하고 있었다. 간혹 미국인이나 유럽인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남산 둘레길엔 열심히 뜀박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깅 열풍이 실감났다. 오늘은 북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N타워 앞에 눈이 쌓여있었다. 4월 중순인데 눈과 우박이 내린 것이다. 남산에는 N타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둘레길도 있고 조용한 숲길도 있다. 조용한 숲 속의 벤치로 자리를 옮겨 믹스커피 한 잔을 마셨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믹스커피를 잘 먹지 않는다. 몸에 좋지 않은 싸구려 커피라고 생각하는 가 보다. 고급커피가 아닌 것은 맞다.
내가 믹스커피를 먹는 이유는 편리성 때문이다. 맛도 아니고 폼도 아니다. 믹스커피는 믹스커피의 역할이 있다. 믹스커피가 주는 정서적 누아르(Noir)가 있다. 폼 잡는다고 좋은 커피잔에 마시면 안 된다. 필히 종이컵으로 먹어야 한다.
믹스커피의 화룡점정은 커피를 넣고 난 다음 커피 포장지 껍데기로 저어줘야 한다. 기다란 스틱형이라 젓기에도 용이하다. 포장재질이 알루미늄 포일(foil)과 플라스틱 필름을 여러 겹으로 붙여 만든 복합재질이라 건강에 좋지 않겠지만, 건강 생각했다면 믹스커피를 먹지 말아야 한다.
생각하기 싫을 때는 뛰고, 생각하고 싶을 때는 걸어라. 뜀박질은 뜀박질의 매력이 있고 걷는 것은 걷는 매력이 있다. 천천히 남산 둘레길을 걷는데 벚꽃이 진 구간도 있었지만 아직 만개한 구간도 있다. 빨리 피면 빨리 진다. 계속 피어 있을 수는 없다. 인간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대중교통을 감사하게 이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가능하면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 차가 무조건 편리할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가장 좋은 것은 기사 딸린 차가 있으면 좋은데 이번 생은 힘들 것 같다. 벚꽃 트레킹 때문에 기사를 대기 시키는 것도 마음이 편할 것 같지는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