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선배가 이런 질문했다.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이 뭐라고 생각하니?"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제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첫째를 낳은 일이고 두 번째로 잘 한일은 둘째를 낳은 거예요."
(내가 낳은 것은 아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도 같다. 아마 비슷한 대답을 하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 아이들도 그 감정과 경험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은 더 편해지고 있다. 손바닥에서 인터넷을 하고, 로봇이 청소를 하는 시대는 이미 오래되었고 이제 자동차 운전도 기계가 스스로 한다. 사람의 뇌수술도 로봇이 한다. 그러면 우리는 편해지는 만큼 더 행복해지는 것일까? 편한 삶=행복한 삶은 아니다.
편한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힘들었던 것이 편해졌을 뿐이지 행복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의 본질은 풍요롭고 편안한 것이 아니다. 기쁨과 감동도 있어야 한다. 물론 궁핍은 안된다. 궁핍하지만 행복하다는 말은 모순이다. 궁핍은 불행한 것이다.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인데 행복해 보이지 않고, 부족한데 행복한 사람이 있다. 그들은 행복해 보이는 척하는 게 아니다. 정말로 행복해한다.
20대 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다. 3개월간 입원을 하고 1년 이상 병원 치료를 했다. 퇴원하던 날은 꽃이 만발한 봄이었다. 병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봄의 소리들. 방안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라일락 향기가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3개월 만에 병실에서 나와 직립 보행하는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 발로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했다. 퇴원 후 한 동안 방에 누워있었다. 식구들은 모두 일을 하러 나갔고 나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삼시 세끼를 챙겨 먹어야 했다. 외롭고 쓸쓸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진짜 행복의 의미를 깨달았다. 멀쩡한 육체와 정신을 갖고도 조악한 허무주의에 빠져 허덕이고 있던 시기였는데 사고 이후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약간의 불행을 경험하고 나서야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인지부조화, 자기 합리화, 부조리에 빠져있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신께서 정신 차리라며 뜨거운 물 한 번 쏟아부어주시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나를 깨닫게 된 것이다.
잔병치례 하면서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건강을 지켜야지, 큰병이 터지면 이미 늦다. 그동안 내가 누려왔던 일상의 행복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특별히 힘든 것도 없는데 자기모순에 빠져 폼 잡고 힘든 척하는 것은 아닌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젊은 날의 나는 쓸데없는 방황 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다.
육아를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밥 안 먹는 아이들. 한두 끼 정도 단식을 시키고 기아를 체험하게 하면 태도가 달라진다. 많은 반찬에 밥 먹으라는 얘기를 수십 번을 해야 겨우 두어 스푼 먹고 수저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하는 말이 반찬이 없어서 밥을 못 먹겠다고 한다. 그런 버릇은 한 끼만 굶으면 금방 사라진다.
여행을 통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편하게 먹고 노는 것 만이 여행은 아니다. 휴양이나 유희만 여행이 아니다. 힘들고 고생한 시간도 여행의 한 부분이다. 여행지에서의 달콤한 시간들은 생각보다 짧다.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즐거웠던 시간은 짧고 준비하는 시간은 길고 힘들다.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의 시간을 즐겨야 진정한 고수다.
캠핑 가서 힘들게 텐트를 치는 것도, 힘들게 산을 올라가는 것도, 학창 시절의 극기 훈련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소파에 누워 과자를 먹으면서 좋아하는 OTT영화를 보는 것도 행복이다. 선택은 각자가 하면 된다. 어쩌면 인간은 참 미련한 동물이다. 삼시세끼 차려주는 밥 잘 먹고 잘 놀 때는 몰랐던 행복을 몸이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을 때 깨달으니 말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행복을 위해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절대적 행복은 없다. 상대적 행복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다 행복하지도 않고 다 불행하지도 않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니까 불행한 것이다. 남들보다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도 버리자. 남의 행복에 관여해서도 안되고 강요해서도 안된다. 내가 좋으면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