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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직 Apr 16. 2023

커리어는 문제 해결의 역사다

얼마 전에 쓴 커리어에 대한 글에서 커리어의 도착점이 보이지 않을때 할 수 있는 것은 눈 앞에 보이는 다음 스텝을 잘 밟는 것이라고 했는데요. “어떻게 다음 스텝을 잘 밟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주위에서 많이 받아 그에 대한 생각도 정리해 보았습니다.




커리어는 우리말로 경력이라고 하는데요. 경험의 ‘경’과 역사의 ‘력’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커리어는 우리말로 ‘경험의 역사’에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말하는 것일까요?


제가 어릴 때는 ‘포켓몬스터’ 게임이 유행이었어요. 얼마전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지우가 20년이 넘는 연재 끝에 포켓몬 챔피언이 되었다는 소식으로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주인공 지우가 되어 12개의 지역을 탐험하며 포켓몬을 잡고 키워 포켓몬 마스터가 되기 위한 여정을 그린 게임입니다.



12개의 지역을 탐험 하려면 각 지역의 ‘체육관 관장’에게 도전하여 뱃지를 모아야 합니다. 체육관 관장은 각 스테이지의 ‘보스’같은 것이고, 각 지역의 관장을 이기면 다음 지역으로 넘어 갈 수 있어요. 모든 지역의 체육관 뱃지를 모으면 도전할 수 있는 ‘끝판왕 보스’가 있고, 이 끝판왕을 클리어하면 포켓몬 마스터가 되며 게임이 끝납니다.


그런데 각 지역의 체육관 관장을 이기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키우고 있는 포켓몬 레벨도 올려야 하고, 결투 상성이 유리한 포켓몬의 조합도 공부해야 하거든요. 호기롭게 결투를 신청했다가 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관장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많고, 결투를 하면서 관장의 전투 패턴과 약점을 알게 되거든요.


힘들지만 각 지역의 관장이라는 문제를 풀다보면 어느새 모든 뱃지를 모으고 끝판왕에 도전할 수 있어요. 관장들과 겨루다보면 포켓몬에 대한 이해와 대결에서 이길 수 있는 노하우가 쌓입니다. 각 지역을 탐험하며 희귀하고 강한 포켓몬을 모으고, 또 꾸준히 레벨을 올리면 충분히 끝판왕도 이길 수 있어요. 조금씩 어려워지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이 게임의 매력이겠죠?


하지만 게임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피하면 게임을 끝내지 못합니다. 첫 번째 체육관 관장을 넘지 못할 거에요. 남은 11개의 지역에 만나보지 못한 귀엽고 희귀한 포켓몬들과 포캣몬 마스터라는 엄청난 여정을 뒤로 한채요. 첫 번째 지역에는 맨날 보는 피존, 버터플, 모다피와 같은 포켓몬들 밖에 없거든요.




저는 경력이란 ‘문제 해결을 해 본’ 경험의 역사라고 생각해요. 높은 가치의 커리어에는 남들은 풀지 못한 난이도 높은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꼭 들어가 있습니다. 결국 회사는 지원자의 문제 해결 경험을 사는 것(buying)이라 믿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경험의 역사에서 ‘숫자’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긴 역사’나 ‘많은 경험’에 집중하면 단조로운 커리어가 된다고 생각해요. ‘10년 동안 마케팅을 한’, ‘다양한 회사에 다녀 본’,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해 본’과 같은 수식어가 커리어에서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런 수식어가 너무 많기도 하구요.


이는 마치 ‘나는 포켓몬 게임을 10년이나 했어’, ‘나는 포켓몬을 100마리나 잡아봤어’라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10년 동안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포켓몬 마스터가 되어보지 못했다면 10년의 의미에 경쟁력이 없고, 100마리의 포켓몬을 잡는 동안 ‘전설의 포켓몬’을 구경조차 못해봤다면 숫자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10년을 일하고, 100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더라도 직접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없다면 그 숫자의 의미는 퇴색됩니다.


게임에서 문제를 풀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듯 커리어라는 경험의 역사에서도 문제 해결 경험이 중요합니다. 이 간단한 원리가 커리어에서는 쉽게 잊혀져요. 많은 사람들이 이력서에 채워 넣을 숫자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게임을 10년 했다고, 포켓몬을 100마리 잡았다고 다음 레벨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커리어에서도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포켓몬스터 게임에서도 '관장'이라는 문제를 풀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 가는 것처럼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합니다. 커리어는 문제 해결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고, ‘얼마나 어려운 문제를 풀어보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얼마나 오래 그 일을 했는지보다 문제 해결 경험에 집요하게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라는 막연한 질문보다 ‘어떤 일이 나에게 특별한 문제 해결 경험을 줄까?’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이전 글에서 커리어의 도착점이 보이지 않을 때 눈 앞에 보이는 다음 스텝을 잘 밟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저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스텝들 중에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것이 잘 밟는 다음 스텝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문제를 풀고 나면 조금 더 어려운 다음 스텝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한 스텝 씩 밟다 보면 끝이 보이지 않던 커리어에도 도착점이 보이지 않을까요? 지우가 12개 지역의 체육관 관장이라는 문제를 풀다보면 포켓몬 마스터가 되어 있는 것 처럼요.


문제 해결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면요? 괜찮아요. 체육관 관장들이 항상 도전에 열려있듯 기회는 많기 때문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도전에 실패했다고 첫 번째 마을에만 머물러 있으면 앞으로 기다리고 있을 먼진 포켓몬들을 만날 수 없어요. 첫 번째 마을에서 10년 동안 100마리의 포켓몬을 잡더라도요.


문제를 풀지 못했다고 민망해 하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어요. 한번에 체육관 관장을 이기는 사람은 없거든요. 지우도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포켓몬 마스터가 되었어요. 그저 도전 할 때마다 잘 기억하면 됩니다. 이번에 풀어야 하는 관장의 공격 패턴과 약점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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