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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은 듣던 것과 달라: 26주

임산부님들 응원합니다

by 퇴근은없다

무언가를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던 세상과 실제의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다. 내가 알고 있던 어렴풋한 임신과 출산은 이렇다. 여자는 갑자기 찾아오는 헛구역질로 임신을 깨닫고, 모두의 축하를 받고서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시간이 흘러 배가 불러오고 거동이 힘들어질 때쯤. 갑자기 시작되는 진통에 급히 병원으로 간다. 그리고 출산의 고통과 함께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당신이 상상하는 임신과 출산 모습은 어떤가.


태어날 아기들의 인생만큼이나 임산과 출산의 과정도 제각각이다. 입덧이 뭔지도 모르고 맛있는 것 맘껏 먹는 이도 있고, 출산할 때까지도 입덧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평범하게 진통에 신음하는 산모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산모는 출산이 임박했는데도 이 일까지는 마무리를 해야겠다며 분만실에서 노트북을 꺼내든다. 조기진통으로 네 달 넘게 입원 생활을 하며 병실이 안방이 된 사람도 있고, 25주 차에 진통 억제제가 듣지 않아 대학병원으로 울며 전원 가는 산모도 있다. (부디 아기가 건강하기를) 산부인과 일반병실에서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사례만 해도 이렇다.


우리의 26주 차는 이렇다. 조기 진통으로 입원한 지 2주 만에 퇴원해서 아내와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직 수축이 완전히 잡힌 채로 퇴원한 것이 아니라서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역시나 회복은 집에서 해야 빨랐다. 집에 오니 배뭉침도 많이 줄어들었다. 아내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아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입원 기간에 당근해온 리클라이너 의자에 반쯤 누워서 만화책을 본다. 대신 내가 집안일로 바쁘지만 아내가 다시 입원 안 하고 집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감사한 하루다. 입원만 안 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스크린샷 2025-05-26 오전 7.28.27.png 조금 부럽기도 하다


두려운 것은 아내가 또다시 입원하는 것이기에. 좀 더 안정이 될 때까지 밖에 나가지도 않기로 했다. 조금만 배뭉침이 있어도 곧바로 누워서 풀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에 바깥은 위험하다. 밤 11시쯤 되면 배뭉침과 진통이 찾아오는 것 같아서 그전에 자버리기로 했다. 진통의 여지조차 주지 않기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하루에 10시간 넘게 자는 것 같다. 입원 기간에도 도움을 받았던 명상을 집에 와서도 꾸준히 하고 있다. '내면 소통 명상수업'이라는 책을 보면서 명상 일지도 꾸준히 적고 있는데. 진통이 왔을 때도 꽤나 도움이 되나 보다. 진통이 와도 진통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나.


주말에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나름 선배로써 조언을 해주고 싶었으나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임신 초기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적어 둔 글을 찾아보고는 우리의 6주 차는 감기로 힘들었던 것이 떠올라. 첫째로 엄마가 건강해야 한다고 한마디 해주었다. 그 외에는 달리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없었다. 내가 임신소식을 알렸을 때 형이 아직 초기니 조심해야 한다고 한마디 얘기해 주었었다. 그때는 당연히 조심하는 거지 왜, 뭘, 어떻게 조심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서 참 싱겁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알겠다. 우리가 다시 임신초기로 돌아간대도 뭘, 어떻게 잘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때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 같은데, 노력한다고 해서 더 좋았었는지 조차 모르겠으니까.


정답이 있는 쉬운 문제들만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는 게 그렇지가 않다. 전부 흐릿하고 어렴풋해서 속 시원한 방법이 없다. 그저 상황과 때에 맞게 알아서 잘해야지. 부디 세상의 모든 임산부들 너무 고생하지 말고 순산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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