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라고 할 때는 왜 안 나오니
조기 진통으로 입원해서 제발 배 속에 오래 있다가 나오기를 바랐던 때가 엊그제다. 그때는 뭐 하나만 잘못해도 진통이 와버리는 줄 알았다. 깜짝 놀라거나, 찬 음식을 먹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또 진통이 와버리면 어쩌나 노심초사였다. 조기 진통이 왔던 날도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그랬구나 자책을 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자연분만하고 싶어"
아내가 말했다. 회복이 빠르기도 하고 모유 수유도 더 쉽다고 하니, 할 수 있는데 안 할 이유는 없다며.
"그런데 어떻게 출산을 할지는 아기 마음이래"
맞다. 결국 아기가 결정하는 거다.
그런데 이제 아기가 나와야 할 때가 되었는데 전혀 소식이 없다. 이미 40주에 유도분만 일정은 잡아놓은 상황. 진통 오는 거 그게 뭐 어려운가 싶었는데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쫑알이 꺼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진통이 오는 것은 옥시토신 호르몬의 작용이며 진통이 오게 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 혹은 염증 반응이 있어야 시작된다고 하는 등 단편적인 얘기들은 찾았으나, 진통이 오는 정확한 원리는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다. 과학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수밖에.
1. 운동
의사 선생님도 "운동하고 있죠?"라고 물어볼 정도로 진통 오는데 가장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다만 출산할 체력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은 명확하지만 진통을 촉진하는 효과가 증명되지는 않았다고 하기도 하는데,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가장 유력한 진통 유발법인 것 같다.
"계단 오르기가 제일 좋다더라"
"많이 걸어야 한다"
"짐볼을 해야 한다"
"출산을 위한 운동이 따로 있다"
우선 매일 하던 산책을 두 배로 늘렸다. 오전 한 번 산책하고 저녁에도 한 번 더 한다. 아내는 요즘 컨디션이 좋아졌는지 더 많은 거리를 빨리 걷는다. 살짝 뛰어보기도 했는데, 무릎이 아프다고 한다. 아무래도 몸무게가 늘어나서 무릎에 부담이 되는 계단 오르기나 달리기는 패스하기로 했다. 제왕절개하는 게 낫지, 진통 불러오겠다고 무릎을 박살내면 안 되는 일이다.
짐볼과 진통 오는 운동도 하루 한 번씩 꾸준히 해야 한다. 출산 성지 영상으로 여겨지는 샤인 킴의 막달운동 영상과 짐볼 영상을 기본으로 하되, 짐볼 운동을 더 하고 싶을 때는 '나와라이' 음원을 틀어놓고 짐볼을 탔다. 이 영상에는 무엇이든 꼭 나왔으면 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모여 있다. 영험한 사이버 공간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2. 음식
두 번의 조기진통 입원이 아이스크림 먹은 날이었기 때문에 아이스크림만 먹으면 바로 진통이 올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제일 처음 시도한 것이 아이스크림. 조기진통 왔던 날과 동일한 패턴으로 산책 후 베라에 방문해 할인이 되는 싱글 레귤러를 주문해 둘이 나눠 먹는다. 너무 적은가 싶어서 근처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그동안 참아왔던 쿠앤크, 돼지바, 메로나도 챙겨 온다.
그 외에도 자연진통에 도움이 된다는 식품들을 총동원했다. 파인애플, 달맞이 종자유, 보쌈, 매운 음식까지. 달맞이 종자유는 아침저녁으로 한 숟가락. 보쌈도 직접 삶아서 먹어보고. 오랜만에 매운 떡볶이도 시켜 먹었다.
3. 그 외 이런저런 방법들
진통이 임박했을 때 하라는 호흡법과 힘주기 방법 영상에는 출산이 임박하지 않은 산모는 하지 말라는 경고가 붙어있다. 반대로 진통을 불러오려면 따라 하면 되지 않을까? 출산 연습 겸 따라 해봤다. 특히 태림법은 임신, 출산 커뮤니티에서 후기가 좋은 힘주기 법이니 숙지해야 한다. 힘 주기 타이밍에 세상이 노랗게 보일 때 태림법 영상이 떠오르면 분만 성공이라 한다.
진통 잘 오는 지압법도 있었는데, 체했을 때 누르는 부분과 똑같아서 뭔가 막혀서 잘 안 나오는 게 있으면 다 여기를 누르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모든 민간요법이 의심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니 이것도 따라 해본다.
39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5일간 이렇게 수많은 민간요법들을 실천하면서 진통을 불러오기 위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무 일 없이 39주가 끝나고 진통은 오지 않았다. 중간에 몇 번 가진통이 오기는 했으나 이전에도 비슷한 일은 있었으니, 특별히 효과가 있었던 같지는 않다. 좀 더 미리 진통 유발 운동법을 시작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막상 40주가 되고 나니 그런 생각보다도 뿌듯함이 크다.
마침내 40주..!
지난 12월 임신 소식을 듣고 먼 훗날의 일이라고만 여겨졌다. 8월 24일 분만 예정일. 결국 40주까지 오고야 말았으니 바라던 자연분만이 아니라 유도분만 혹은 제왕절개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사소하다. 쫑알이가 건강하게 잘 커줬고, 아내가 지금까지 쫑알이를 잘 키워주었고. 40주를 채웠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잘했다. 벌써 잘 자란 쫑알이가 아내 뱃속에 있는데 어떻게 낳든 무슨 상관인가 이런 쓸데없는 욕심 버려두고 그저 남은 시간 잘 보내기로 했다. 아내와 둘 만의 산책길. 앞으로 단 둘이 산책할 수 있는 날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선선한 저녁 바람과 풀벌레소리. 이대로 충분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러닝을 다녀오는 길에 아내에게 문자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