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나올 예정이니
"이제 정말 곧 만날 수 있겠네."
"그러게. 벌써 만삭이라니."
그런데 왜 마음이 이렇게 복잡할까. 설레는 마음 한편으로는 "정말 지금 나와도 괜찮은 건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누구를 닮았는지 어서 보고 싶은 마음과, 좀 더 뱃속에서 충분히 자란 다음에 만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선배 부모들이 말하는 "요즘 애들은 다 일찍 나온다"
이제 37주라는 소식을 전하면 회사 선배들의 축하가 쏟아진다. 그런데 대화의 흐름이 묘했다.
"축하해! 이제 언제 나와도 되겠네. 요즘 애들 다 일찍 나와."
"우리 첫째는 38주에, 둘째는 36주에 나왔는데 멀쩡해. 오히려 좋았어."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편이 편해지긴 했다. 경험자들의 조언이기도 하고, 실제로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22주 때 조기진통으로 아내가 3주간 입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한다. 그때는 하루라도 더 뱃속에 있어주길 간절히 바랐는데, 이제는 빨리 나와도 괜찮다는 게 이상했다.
조심스러운 진실을 마주하다
주수를 더 채울수록 아기의 뇌와 폐 발달이 계속 진행된다. 37주와 40주 사이의 3주는 아기에게 결코 작은 시간이 아니다. 특히 뇌 발달의 경우 임신 후기 몇 주가 매우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물론 37주 전에 출산한 많은 아기들이 건강하게 자란다. 의학적 이유로 일찍 출산해야 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 산모나 아기의 건강을 위해 조기 출산이 최선인 상황들 말이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만삭이니까 괜찮다"는 생각만으로 서두를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괜찮았다"는 경험담이 "괜찮다"는 보편적 진실은 아니니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참 조심스럽다. 37주 전에 아기를 낳은 부모들 중에는 그 결정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마음 한편에 죄책감을 가진 분들이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도 일찍 낳았는데 괜찮았다"며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누군가를 위로하려던 말이 다른 누군가의 성급한 선택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쫑알이는 아직 나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다행히 우리 쫑알이는 아직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22주 때는 금방이라도 세상에 나올 것처럼 진통이 왔는데, 막상 만삭이 되니 배속이 편한가 보다. 나는 매일 아내의 몸을 관찰한다. 혹시 출산의 신호는 없는지.
"여보, 배가 좀 내려온 것 같지 않아?"
"글쎄, 잘 모르겠는데?"
거울 앞에서 옆모습을 확인해 보지만 여전히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아기가 골반 쪽으로 내려오면 배 모양이 아래로 처진다고 하는데, 아직은 그런 변화가 없다. 가진통은 어떨까? 가끔 아내가 "어? 배가 갑자기 단단해졌다"라고 하지만, 규칙적이지 않고 금세 사라진다. 진짜 진통과 달리 움직이면 완화된다고 하니, 아직은 가짜 신호인 것 같다.
출산이 임박하면 나타난다는 10가지 신호들을 매일 체크하고 있다.
배가 내려옴: 아직 높은 곳에 그대로
가진통: 가끔 있지만 불규칙적
골반·허리 통증: 평소보다 조금 더 아픈 정도
배변 습관 변화: 특별한 변화 없음
이슬: 아직 없음
체중 변화: 여전히 조금씩 증가 중
에너지 변화: 오히려 집안일을 더 하고 싶어 함
소화불량 완화: 아직 속 쓰림 있음
질 분비물 변화: 평소와 비슷
다리 부종: 저녁이면 여전히 퉁퉁
체크리스트를 보면 아직 대부분의 신호가 나타나지 않았다. 쫑알이는 여전히 자기만의 시간표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쫑알아, 네가 정하는 대로 하자
혹시 쫑알이 MBTI가 나를 닮아서 P라면, 기분 따라 갑자기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성격 말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J 해줬으면 좋겠다. 40주까지 기다려서 예정일에 딱 나와주면 안 될까?
"쫑알아, 너무 성급하게 나오지 말고 좀 더 있다가 나와. 아빠가 마음의 준비를 더 해야겠어."
배에 대고 이런 말을 하면 아내가 웃는다.
"벌써부터 아빠 말 안 듣는 거 아니야? 애는 자기 나올 때를 알고 있다고 하던데."
그래, 맞다. 아기가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되면 자연스럽게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산모의 몸도 출산을 위한 호르몬을 분비하면서 스스로 준비한다. 물론 세상일이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응급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의학적 판단에 따라 빨리 만나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조심하고, 쫑알이가 충분히 준비된 다음에 만나고 싶다.
아무 징조 없이 갑자기 시작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고 미리 예고하고 계획대로 진행되면 얼마나 좋을까.
"여보, 내일부터 진통 시작할 예정이니까 병원 갈 준비 해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언제 나올지 쫑알이한테 전적으로 맡기기로 했다. 선배들의 조언도, 인터넷의 정보도 참고는 하되, 최종 결정은 쫑알이가 하는 것이다. 2~3주 더 기다리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그 대신 우리는 언제든 만날 수 있도록 준비를 단단히 해두기로 했다. 출산 가방도 챙겨두고, 병원까지 가는 경로도 여러 개 확인해 두고, 밤중에 갑자기 출발해야 할 상황도 시뮬레이션해 봤다. 쫑알아, 네가 준비되면 그때 만나자. 아빠는 40주까지 기다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 다만 40주 되어서도 안 나오고 며칠 더 버티면서 속 썩이지는 말아 줘. 우리 계획대로 건강하게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