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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에 밟혀야 아기가 태어난다: 40주차 (2)

쫑알이와 첫 만남

by 퇴근은없다

아빠가 병원에 도착해서 할 수 있는 건 기다림 뿐이었다. 분만실이 준비되는 동안 병원 복도에서 아내를 기다 리고, 분만실에 들어가서도 아내의 진통 주기가 빨리지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 말고 다른 걸 할라치면 어리숙한 이등병이 된 것 마냥 간호사들은 자꾸만 날 혼낸다.


"아빠는 커튼 밖으로 나가 계세요"

"거기 만지시면 안 돼요!"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부를게요"

"이쪽은 보시면 안 돼요! 고개 돌리세요"


아무래도 아빠라는 존재는 출산에 방해만 되는 것 같다. 걸리적거리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눈치 보고 있는 게 잘하는 거란다. 나는 계속해서 혼나기만 하는 반면. 아내에게는 칭찬이 이어졌다.


"이렇게 잘 참고 오시는 분들 없는데. 아픈 거 잘 참으시네요~ "

"너무 진행 잘 되고 있어요! 이렇게만 하세요"


아내는 미리 보고 갔던 호흡법을 잘 실천했고, 그래서인지 자궁 경부가 순조롭게 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힘 세 번 주고 출산 성공했다는 얘기가 남 얘기가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닌가 기대까지 될 정도였으니 얼마나 헛된 희망에 부풀어 있었을까. 아내도 아직까지는 '할 만 함' 상태였던 것 같다. 자궁 경부가 8센티 정도 열리면 힘 주기 시작한다는데, 간호사님들은 얼마나 열렸는지 아직 얘기는 안 해주셨다. 어련히 알아서 잘해주시겠지 싶어서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대변 마려운 느낌"이 들면 알라 달라고만 하셔서. 프라이버시를 위해 대변을 잘 처리할 수 있게 도와주시려나보다 했다.


언제 힘주기 시작하나 기다리다가 아내가 '대변 마려운 느낌'이 든다며 간호사님을 호출했다. 그런데 웬걸. 대변 마려운데 왜 간호사 세분이나 들어오시고 뭔가 분주히 준비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힘주기가 시작되었다. 대변이 마려운 느낌이 출산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인 것을 왜 안 알려주셨는지..!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엉겁결에 본격적인 출산이 시작되어 버렸다. 이때가 벌써 새벽 2시쯤이었다.


출산을 만만하게 본 것은 아니었으나 바로 옆에서 직관하는 출산은 상상 이상이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온 힘을 짜내느라 새빨개진 아내의 얼굴'과 '온몸으로 아내의 배를 누르는 간호사님'. 그리고 '누르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던 아내의 배' 뿐이다. 아내의 배는 탄성이 전혀 없이 마치 찰흙처럼 원래 형태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후에 아내에게 물어보니 트럭이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라 했다.


아내는 출산에 재능이 없었다. "더 힘주셔야 해요!"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순산을 낙관하던 나는 금세 태도를 바꿨다. 내가 알고 있는 아내는 이 정도의 고통을 견뎌낼 수 없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더 힘줘야 한다는 말에 '네..'라는 짧은 대답도 힘들어하던 모습에 알았다. 아내는 이대로 출산에 성공할 수 없었다. 자연분만은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이등병 주제에 어디서 함부로 의견을 내겠는가. 차마 자연 분만 그만하자고 말은 못 하고 눈치만 볼 뿐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왜 이렇게 '마음의 준비'라는 단계를 건너뛰는 걸까. "이제 배 속에 아기 생기니 알고 계세요" "이제 아기 나오니 준비하세요" 한 마디만 해주면 좋을 텐데. 사건은 항상 그 한마디를 없이 뒤통수치듯 일어나고야 만다. 아내가 트럭에 밟히기를 수십 번. 점점 트럭은 격하게 아내 배를 밝고 지나가는데, 다들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어느 순간 의사 선생님이 웬 아기를 들고 있었다.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내의 배에서 저 아기가 나왔다고? 분명 못할 것 같았는데. 어디서 데려온 아기라기엔 너무 아내를 닮았는데 말이다. 어떻게 낳았느냐고 물으면 아내도 나도 모르겠다고 한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정말로 아내가 아기를 낳은 건가.


아직도 탄생의 비밀이 풀리지 않은 우리 쫑알이는 8월 26일 새벽 3시 46분, 몸무게 3.16kg, 신장 50cm로 손가락 발가락 다 달린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았는지 나는 얼떨떨해서 쫑알이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뱃속에서 내 목소리를 들어왔으니 내가 인사해 주면 안심했을 텐데. 한참은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잔뜩 굳어버린 목소리로 "괜찮아" 하고 말해주었다. 좀 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두면 좋았을 걸.


못난 아빠 덕에 우리 첫 만남은 조금 어색했다. 아무리 내가 낯을 가린다지만, 내 자식에게도 그럴 줄은 몰랐는데 시간이 필요했나보다. 나보다 먼저 출산을 경험한 친구는 아기 태어났을때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을 보였다던데 아쉽게도 나에게는 출산의 순간이 그정도는 아니었던것 같다. 이미 배 안에 있을때부터 살아있다고 느껴서 그랬을까? 얼굴도 확인하고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지만, 나 안 닮은 얼굴을 봐서 그런지 남의 애 보는 듯 데면데면했다. 나만 메마른 사람인가. 분명 중요한 순간임에도 이때 얘기를 하고 다니는 아빠들을 잘 만나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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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아기도 건강하고 산모도 건강하니 9개월에 걸친 임신과 출산 잘 겪어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끝은 새로운 시작일지니, 육아라는 더 긴 여정이 이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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