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린애 같은 말일 수 있는데, 그 자리에서 돋보이고 싶고, 예쁨받고, 관심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나에게로 쏠릴 줄 알았던 관심이 타인에게로 솔릴 때 우리는 자칫 소외감을 느낀다. 아무도 나를 소외시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이 더 주목받았을 뿐인데도, 무언가를 잃은 것 같고 헛헛하기까지 하다. 그런 감정을 느끼고 돋보이고 싶었고, 예쁨받고, 관심받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준 내담자의 용기와 직면이 나는 사실 더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 또한 돌이켜보면, 누군가의 관심을 갈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갈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관심의 한 가운데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 것을 즐기다가 중심이 되지 못하면 묘한 소외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또 그러다가도 어떤 때는 누가 나를 주목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적도 있었다. 지하철에서 누가 나를 쳐다보기라도 하면 눈을 흘기기도 했다. 얼마 전 나의 이런 어린 날의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한 모습을 가진 내담자를 만났다. 그녀는 누군가가 자기를 관심있게 쳐다보면 자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불안하고 급기야 그 불안함으로 인해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다.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알려고 가까이 들어오거나 질문을 하면 그게 부담스러워 다른 이야기로 서둘러 주제를 전환하면서 회피하다가도 모임의 중심에 있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타인이 주도한 모임에서는 자기가 주인공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여 늘 본인이 모임을 주도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과 연결되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관심의 무게가 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심리는 단순히 모순적인 감정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타인이 나를 인식하고, 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관심은 우리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주며, 자존감을 강화한다. 그러나 동시에, 타인의 관심은 그 자체로 또 다른 형태의 부담이 될 수 있다. 관심을 받고 싶지만, 누군가가 나를 자세히 관찰하고 알고 싶어하는 순간은 나의 완벽하지 못함이 드러날 수도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관심을 갈망하면서도, 그 관심 속에서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관심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지만, 동시에 그 가치가 시험대에 오를까 두려운 것이다.
관심은 한편으로 우리의 존재를 확증해 주는 듯하지만, 동시에 그 존재를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관심을 기쁘게 느끼면서도 부담스럽게도 느끼는데 이는 관심 속에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암묵적 요구를 느껴서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드러내고 싶어 하는 자아와 숨기고 싶은 그림자가 공존한다. 타인의 관심은 우리가 숨기고 싶어 하는 그림자를 드러낼 위험을 동반한다. 이 때문에 관심은 매혹적이면서 두렵다. 우리는 관심을 통해 빛을 받지만, 그 빛은 우리가 감추고 싶어 했던 어둠까지도 비추니까.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을 때 우울해지는 것은 이것이 타인과 단절되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본능적인 생존 불안을 자극하며, 존재론적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할 때, 외부로부터 그 가치를 확인받으려 한다. 관심은 현대인의 삶에서 이러한 가치를 확인하는 가장 즉각적이고 강력한 방식이다. 심리학자 에릭 번(Eric Berne)의 ‘자기 대화 이론’도 이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인간은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자신을 해석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관심을 보일 때 “나는 중요한 사람이야”라는 긍정적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가 실수하면 어쩌지?”라는 불안한 대화를 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경우, 관심은 기대와 평가의 압박으로 변질되어 부담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기 대화는 어릴 때 형성된 자기 개념에서 비롯된다. 부모나 중요한 타인에게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했거나 금세 관심이 거두어졌을 때의 좌절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관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기 쉽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곧 좌절의 경험이 임박했음을 예고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자아를 활성화한다. 관심을 받을 때, 우리 안의 ‘사회적 자아’는 드러난다. 동시에 드러나지 않은 ‘내면적 자아’는 관심에 부응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이 두 자아의 충돌이 클 때 관계에서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나를 평가하는 것’으로 느낄 때 부담감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타인의 관심을 평가의 시선으로 보는 대신, 그것을 단순한 연결의 신호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가 타인의 관심을 받을 때 느끼는 부담은 종종 내가 나에게 주는 관심의 부족에서 온다. 타인의 관심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거울이 불편한 이유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충분히 연습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기도 한다. 셀프 컴패션(Self-Compassion)의 창시자인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는 자기 자신에게 자비롭고 호기심 어린 태도를 가지는 것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더 큰 유연성을 만들어 낸다고 강조한다. 타인의 관심에 앞서, ‘나는 나에게 어떤 관심을 주고 있는가?’를 묻는 연습이 필요하다. 지금에 와서 부모나 타인과의 과거 경험을 바꿀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관계와 나 자신과의 관계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는 일기 쓰기, 자기 대화, 또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관심에 대해 재정의를 시도해보는 것도 혼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관심을 받을 때 그것이 곧 인정이나 사랑의 표현이라고 믿는다. 타인의 시선이 때로 우리를 객체로 고정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고정된 시선을 피하는 방법은, 관심을 타인의 욕구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타인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들 자신의 호기심, 욕구, 또는 즐거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관심의 무게를 나에서 타인으로 옮기며, 그것이 반드시 나의 가치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무엇보다 우리의 내면에는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와 관심의 무게를 두려워하는 성인이 공존한다. 이 두 자아가 싸우지 않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때 그제야 외로움은 줄고, 관계는 더 따뜻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