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생략된 일기
9.19.
약간의 불편함쯤은 아무것도 아니다(예전 집에 대해).
9.22. <작은 음악회>
덕수궁 바이올린 연주부터(이런 연주를 공짜로 듣다니..)
기타로 연주하는 스페니쉬 곡들. 연주에서 사람이 묻어 나온다. 긴장되는 이유가 연습을 아주 안 해서라고 실토하는데, 그만큼 완벽과는 거리가 먼 연주지만 듣고 있자니 소리가 탁하거나 쨍한 것 없이 그 자체로 깔끔, 분명해 계속 듣고 싶은 마음이 든다. 끝까지 이어가려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선곡한 3곡+1곡이 다 통일된 스페니쉬 계열의 혹은 남미풍의 연주였다는 점. 내일은 스페니쉬 기타 연주를 들으며 출근을 해야겠다.
9.24.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것도 있는 법.
여행자들의 눈빛이 좋다
정-말 한국인처럼 생겼는데, 눈빛만 봐도 저들은 여행자라는 걸 알게 한다. 약간은 어리둥절하고 호기심 어린 그 눈빛, 동그랗고 순진무구해 보이는 눈동자. 나도 여행자일 땐 저런 모습이겠지 하고 반가운 마음이 든다.
9.27.
어디서 운동을 했는지 비를 맞았는지 머리칼에 습기 가득한 남자 중고딩들이(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구분이 전혀 안 간다.) 한 무더기 버스에 탔는데 버스에 퍼지는 냄새가 너무 좋다. 뭐지..? 익숙한 듯 고급진 향, 백화점 1층 화장품&향수 코너에서 나야 하는 냄새 같은데, 이런 부조화가 마음을 끈다. 버스에 탄 15분 내내 킁킁거리며 이 냄새 뭐지, 어떤 냄새였지, 왜 나는 거지 라고 생각하며 갔다.
9.28.
나는 항상 시간이 부족한 사람일 것이며 그것이 나의 영원한 결핍이다.
<동물적 가족>
동물적이다라는 말은 좋은 어감으로 쓰이는 걸 별로 본 적이 없는데, 동물을 입양하고 같이 살고 보니 동물적이다라는 말은 좋게 쓰여야 하는 말 같다. 동물적 가족. 동물적 감각. 동물적 판단. 사람의 언어로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고 표정만으로, 제스처만으로 동물이랑 교감하는 사람들. 서로 찬찬히 받아들여지는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