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도 아니면서... 대충대충 한다
후배에게 보드판을 그려서 커팅하는 일을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큰 아크릴판을 이용하여 구조화된 20여 개의 블록 초안을 그리고, 이를 줄 맞추어 커팅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그려준 초안을 활용하여, 치수에 맞추어 좀 더 크게 그린 후에 커팅을 하는 작업을 하루 일과로 부탁드렸습니다.
외근을 마치고 돌아온 저에게, 퇴근한 후배의 결과물이 탁자 위에 놓여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빠른 퇴근을 하고 싶었는지,
후배는 눈대중으로 선을 긋고, 블록마다 울퉁불퉁한 굴곡이 남게 커팅을 해 놓았습니다.
어쩌면 미술 전공자가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날 결과물을 가지고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했던 제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충분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날 꼬박 밤을 새워서 다시 아크릴판에 선을 그리고, 자르면서 후배가 예뻐 보이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팀장, 리더급들은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문서에 맞춤법이 틀리고, 줄 간격 등이 맞지 않으면, 내용은 보이지 않고 그것만 보입니다..."
군대를 다녀오기 전 90년대 초반, 한 대학을 잠깐 다닌 적이 있습니다. 결국 졸업을 못하고 도중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들어 간 대학 캠퍼스에 대해 적당하게 환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가장 놀랐던 점은 교실이 정말 더러웠다는 것입니다. 청소를 담당하시는 분들이 바닥을 청소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쓰레기통도 모두 비워져 있고 바닥도 닦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대학 캠퍼스의 책상은 물론 벽에 엄청난 낙서가 쓰여 있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군요.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만.
마치 유명 관광지에 가면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관광지의 낙서와는 다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전공서적의 일부분이나, 목차, 핵심 용어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대부분 시험을 앞두고 커닝 페이퍼를 책상이나 벽에 적어 두었던 것인데, 색이 바래지면 위에 또 작성해서 자신이 적어 놓은 것을 어렵지 않게 숨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강의장에서 시험을 보다 보면, 적어 놓지 않았던 자신이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다른 선택을 하고, 군 제대 후, 다소 늦은 26살에 다른 대학에 신입생으로 입학했습니다.
불과 몇 년 뒤였지만, 시대가 바뀌었는지, 아니면 학교의 성향 차이인지 몰라도,
강의장의 책상과 벽에 커닝 페이퍼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상한 이유지만, 좀 더 열심히 하고 이곳은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일부 과목은 무감독 시험을 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때 시험지 나누어주던 조교의 멘트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누가 안 본다고 X 팔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과를 창출하는 과정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차이가 결과를 만들고,
그런 차이를 만드는 것은 타고 난 재능이 아니라,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자존감(自尊感)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