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수안 Aug 15. 2021

죽으려던 순간에 켜진 브이라이브  알림

세븐틴 승관 헌정글

지금이다. 모아둔 수면제를 다 털어 먹고 자는 듯이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컵에 물을 받는데 마침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브이라이브 시작을 알리는 푸시였다.

최근 몇 번은 only voice 로만 찾아오던 승관이 간만에 비디오를 켠다며 인사를 했다.

지난주 비대면 팬미팅이 끝났고, 그날은 대면 팬사인회 대신 비대면 영상통화회가 있었던 날이었다.

팬데믹 이후로는 다수 모임이 어려워 모든 팬서비스는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벌써 2년째.

영통회에서 하도 많은 캐럿(세븐틴 팬클럽 명)들이 언제 브이앱켜냐고 성화를 했단다. 언제 할까 하다가 마침 오늘 스케줄이 있었으니, 헤메도 되어있는 김에 켰다고 했다. 오디오로만 찾아온 날은 노메이크업에 평소 모질이 심한 반곱슬이라 카메라를 못 켰다며 양해를 구하면서.

오랜만에 보는 라이브에 순간 기분이 나아졌다. 이것만 보고 죽어야지 했다.

메이크업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다크서클을 하고 초췌한 모습을 한 스타가 내 폰 안에 있다. 팬들 건강 걱정을 하면서.

요새 날도 더운데 스케쥴이 많다며 간간히 올려주는 글로 바쁘겠거니 짐작만 했는데, 이렇게 보니 이들이야 말로 제대로 먹고 자고 쉬고는 있는 건가 걱정이 앞섰다. 웃기지. 방금 죽으려던 사람이 누굴 걱정해.


승관은 브이앱을 켜면 최소 한 시간은 있어준다.

13인이나 되는 다수의 멤버 간 있었던 무대 뒤 에피소드를 풀어주기도 하고 다른 팀과의 친목썰, TMI 등을 풀며 궁금한 건 뭐든 물어보라며 댓글을 종용한다. 그 순간엔 어떤 말을 써도 다 읽어줄 것만 같다.

사실은 글로벌 팬들이 한데 모여 자기 나라 언어로 도배를 해대는 바람에 사람의 두 눈알만 가지고는 채팅창 속도를 따라잡긴커녕 제대로 된 한글 문장 하나 캐치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팬들은 끊임없이 스타에게 말을 걸고, 스타는 읽은 내용은 최대한 답해주려 한다. 내가 10대였을 때의 팬덤 문화와 너무 다른 시스템에 가끔은 어지럽다. 지금 내가 10대였으면 더 행복했을까. 행복한 덕질을 하며 철없게 살고 있을까.


제 흥을 못 이기는 승관의 브이앱 레퍼토리는 대개 이렇다.

소통으로 시작해 같이 노래를 듣는다. 처음에는 승관픽 추천곡으로 시작해 중반부터는 팬들의 신청곡을 틀어준다. 워낙 K-POP 고인물이라 부교수라는 별명까지 생긴 승관은 어떤 노래를 추천해도 이미 다 알고 있다. 앨범명부터 발매일까지. 그 당시의 자신을 회상하면서 그 음악을 듣던 공기까지 기억해내며 황홀해하는 그의 음악사랑은 보는 사람들도 괜히 신이 난다. 신기한 재주다.

그러다 흥얼흥얼 허밍, 콧노래, 휘파람, 어떻게든 음악을 같이 즐기다 필이라도 꽂힌 날에는 완창까지도 해낸다.

소통하려 킨 라이브인데 결국 노래까지 하네, 방송을 켠 지 1시간 남짓 되자 노래라도 부르려는 듯 머쓱하게 웃으며 MR을 찾는다.

말 그대로 무료로 듣는 방구석 콘서트, 혹은 훔쳐보는 코인 노래방 같은 셈.


못 불러도 이해해주기, 약속하고선 순식간에 몰입하는 그를 보며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꿈을 이루고도 달리는 사람, 팬들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사람, 그가 불러주는 위로의 노래.

가사, 호흡, 감정 하나하나가 내 모든 신경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결국 두 곡을 완창하고 방종을 했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는 원키로,

그리고 웬디의 Like water는 MR이 없다며 남자 키로 불렀다.

아쉬워 한 곡 더하려는 걸 팬들이 만류해 보냈다. (그만큼 피곤해 보였다.)

세븐틴이 발매한 수많은 곡을 들었지만 승관의 중저음은 처음 듣는 음색이라 깜짝 놀랐다. 메보 포지션인 데다가 항상 사비, 하이라이트 담당이라 높은 음역대만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 말자
너랑 있을게 이렇게

도망가자, 선우정아




네 아픔 나도 느껴져
푹 패인 상처들을 감싸고
안아줄게
널 다시 일어나게 해
I need you to hold me
정해져 있어 우린
서로 더 채워주고 토닥여
널 낫게 해
Always like water
넌 나를 비추네
Like you're water to me
네가 눈 뜰 때쯤엔
다 괜찮을 거야

Like water, 웬디







그날 밤은 승관이 날 살렸다. 

대중들은 그저 웃기고 센스 있는 아이돌 멤버 중 한 명으로 기억하고 있을 테지만

그의 가창엔 힘이 있다. 울림이 있다. 감정이 살아 숨 쉬고 마음 아픈 이들을 목소리 하나로 보듬어준다.

그의 음악을 좋아해 팬이 되었지만 새삼 오래오래, 살아있는 한은 아주 오래 듣고 싶어 졌다.

한동안은 너의 노래를 듣기 위해 살아야겠다.

이전 04화 운명을 믿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