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수안 Jul 29. 2021

사랑에게 고마워

내가 사랑을 믿지 않은 순간조차 내 주위엔 항상 사랑이 있었다.


종종 스스로를 별 조차 뜨지 않은 까만 밤, 등대 없는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진 쪽배에 비유하곤 했다.

미로 속에서 홀로 눈을 가린 채 두 손을 최대한 펼쳐 엉금엉금 걸어 나가야 하는,

혹은 외줄 위에 서서 한발 뛰기로 반대편까지 넘어가야 하는.

한마디로 답도 방향도 없는 삶이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다. 첫 판을 시작하면 SCV는 미네랄을 열심히 캔다.

그리고 그 SCV가 대여섯 마리 정도 모이면 한 마리는 첫 정찰을 나간다. 온통 어둠인 맵을 뚫고 나아간다.

적진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길이 어딘지도 모른다. 나아가야만 알 수 있다.

한 마리 SCV처럼 살았다.

몸이 아픈 와중에도 앞으로는 나아가야 하고, 미네랄과 가스도 캐야만 했다.

인생은 나아가고 미네랄과 가스를 캐는 동안에도 몸은 아팠다.

‘이렇게 일만 하다가 죽겠어’ 누군가의 앓는 소리는 당장 나에겐 눈앞의 현실이었다.


엄마가 마흔둘,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아빠는 1년 만에 재혼을 했다.

내 나이 열한 살, 다른 아이들은 산타가 없다는 걸 깨닫는 나이에, 나는 사랑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받지 못한 사춘기를 보냈다고 생각한 아이는 결국

끝이 무서워 시작조차 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 버렸다.

몸이 너무 아픈 탓이었을까, 마음까지 아프긴 싫었다. 주고받는 학습이 잘 안되어 있었다. 돌아올 기대를 하고서 줬다가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상처가 컸다. 그래서 그냥 주는 쪽을 택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료들과 점심 자리에서 ‘휴지 좀 건네주시겠어요’ 그 한 마디를 못했다. 어디서든 Giver 역할을 자청했다. 덕질이 그 근거라면 증명이 될까.

10년마다 무언가 사고가 터졌다.

자연스럽게 나의 시한부를 내가 결정했다. 나도 마흔두 살이 되면 죽겠구나.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장기적인 인생계획은 세울 수가 없게 됐다.

자연스럽게 결혼, 출산, 가정을 꾸리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괜히 가정을 만들었다가 내가 떠나버리면 남겨진 사람은 평생 아픔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걸 알기에.

그럼 아픔은 대물리기 싫었다.

사랑은 아예 시작조차 안 하는 것이 나아. 모든 마음은 나쁘게 끝났다. 몇 년 동안 꿈에 나와 그립게 만들던 그 사람과도 잘 될 리 없었다. 마음이 깊어지는 게 무서웠으니까. 항상 끝부터 생각하고 시작하는 관계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없으니까.

검사에서는 회피형이 나왔다. 결과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스물이 됐을 때도, 서른이 됐을 때도 온통 혼란이었다. 여기까지 올 줄 몰랐으니까. 이때까지 살아있을 줄 몰랐으니까.

그러면서도 수명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인지했다. 이제 몇 년 남았군. 카운트다운을 하며.

법정처럼 땅땅땅, 어느 순간 무슨 계기로 그렇게 정한 건 아니었다.

어느 틈에 당연히 그렇겠지, 하며 살고 있었다.

남들이 감명 깊게 봤다는 영화 라라 랜드 속 ‘널 영원히 사랑할 거야’ 대사를 들으며 코웃음을 쳤다.

세상에 사랑이 어딨어.

내가 사지 불구가 되더라도 영원히 사랑할 거라던 그는 내가 대기업 공채에서 광탈하자마자 나를 떠났다.

가족은 책임감으로 버텼다.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기대를 스스로 접어야 하는 마음은 늘 불 덩어리였다.


몸이 버틸만해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빌런들은 여기저기서 나타나 직접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병이 나의 체력을 앗아갔다면 빌런들은 나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첫 패닉을 맞고, 죽으면 죽었지 거기만은 절대 가지 않을 거라던 곳에 찾아갔다. 울며 불면서. 저 좀 살려주세요 선생님.

결과는 공황장애와 사회 공포, 그리고 중증의 우울증, 수면장애, 정신마저도 성한 곳이 없었다.

처음엔 내 얘길 꺼내는 것조차 힘들어 약만 받아먹었다. 병원 문턱을 몇 번 드나들자 상담이 가능해졌다. 말하기도 힘든 어느 날엔 메모장에 글을 적어갔다. 선생님은 내 글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저도 우울증을 앓았어요. 그런데 결국엔 사랑이 치유해주더라고요. 나의 말에 공감하며 첨언한 정신과 의사에게 조소로 되물었다.

아, 또 결국 사랑인가요?

선생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답했다. 사랑을 믿어보라고.

나는 네, 대답하면서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




나중에 변할 거면 지금 잘해주지도 마.

너무 깊은 관계는 싫어. 언젠가는 꼭 상처를 주니까.

우리 돌이킬 수 있을 때 돌이키자. 그냥 친한 오빠 동생 사이였을 때도 좋았잖아.

100일도 안된 남자 친구를 몇 번이나 밀어냈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다. 남자 친구는 아직도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고, 나 없던 이전의 삶이 상상이 가지 않는단다. 이상하다.









스물한 살, 혼자 병실을 지켜야 했고

스물아홉 살, 언니를 하루 종일 지키는 엄마를 보며 가족에게 사랑받기를 포기해버린 나는

서른한 살에 아픈 고양이를 주웠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생명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곧 죽을 고양이를 데려와 네 시간마다 분유를 태워 먹였고, 하루 열 번 안약을 넣어주었다.

너무 아파하는 날에는 피땀 눈물로 얻은 연차를 아낌없이 쓰며 2차 병원에 가 하루 종일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고양이가 아팠던 일주일, 집은 공기마저 무거웠다. 웃는 것도 죄 같았다.

동생에게 물었다.

혹시 내가 아픈 날에도 이렇게 집 분위기가 안 좋았었냐고, 나만 몰랐던 거냐고.

동생이 대답했다. 다들 걱정했지. 얼마나 아픈지 가늠도 안되는데, 계속 토하고 우니까.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한 집에 아픈 사람이 있음 온 사람이 힘들다. 그땐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아픈 건 난데 왜 당신들이 힘들어? 억울했다.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 티브이에서 나오는 말도 듣기 싫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어쩌라고. 나보고 어떡하라고.

내가 이렇게 아픈데 다들 상관도 없다는 듯 일상생활을 하는 게 서러웠고,

안쓰러운 시선을 받지 못해 서러웠고,

이런 몸뚱이를 가진 나를 공감해주니 않는 게 서러웠다.

그런데 그땐 그렇게 서럽고 무심하게만 보였던 일상을 살아가는 식구들이 사실은

그럼에도 살아내어야만 하기 때문에 가라앉은 분위기를 안고  침묵을 지켰다는 걸 몰랐다.

갑자기 새엄마가 보고 싶어 져 전화를 걸었다.

“엄마, 고양이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는데.. 나 아플 때도 집안 분위기가 이렇게 썰렁했어?”

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걱정했지. 어린애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그러는데,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는 게 제일 맘이 아팠어.”

이상하지, 고양이를 키우면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게.

엄마와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의 나이는 서른둘이었다. 서른둘. 지금 내 나이가 그렇다.

나한테 갑자기 열한 살 딸이 생긴다면 난 잘 키울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느끼기에 그저 ‘열심히’만 키우던 엄마의 노력은 그 자체로써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열과 성을 다 해 한 아이를 인간으로 키워낸다는 것. 그것도 남의 아이를. 몸도 아픈 아이를.

나는 자신이 없어 일찍이 포기한 육아, 고양이 키우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지만 엄마는 해냈다.

엄마 입장에선 언니 혼자 키우는 것도 충분히 벅찼을 텐데 남의 아이 둘까지 거둔 것이다. 온전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서. 

가정을 이루는 건 다른 사람과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우리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거였다. 엄마 아빠는.

눈물이 났다.

고양이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우리 셋을 어떻게 키웠어. 얼마나 힘든지 이제 알겠어.

키워줘서 너무 고맙고 사랑해.

엄마한테 처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몇 달 뒤 이사를 하느라 집에 있는 물건을 한바탕 뒤엎었다.

그중에 편지 박스도 있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받은 편지가 한 박스 쌓여있었다.

짐 정리하다 말고 한바탕 추억팔이가 시작됐다.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아이, 지금까지 절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그 친구들에게는 사진을 찍어 보내줬었다. 우리가 이런 때가 있었다고.

저마다 답장이 돌아왔다.

우리한테 이런 때가 있었구나. 보고 싶어. 사랑해. 아낌없이 표현하던 순수했던 시절이.

왜 나한테 사랑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나한테 마음 써준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중에서 이상스럽게 빳빳한 종이에 투박하게 접힌 쪽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001년. 엄마의 서른두 살, 그리고 꼬박 20년이 흘러 내가 된 그 서른두 살.




아직 어색한 사이에 크게 혼날 일이 있었나 보다. (보나 마나 내가 덤볐겠지)

학교에 다녀와보니 책상 위에 있던 엄마의 편지였다.

고3 시절, 토요일 자율 보충에는 급식이 제공되지 않아 그때만큼은 도시락을 싸와야 했다.

친구들은 도시락을 들고 등교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점심시간 벨만 울리면 항상 전화가 왔다.

1층으로 내려와~

그러면 엄마는 항상 운전석 창문을 열고 도시락만 건네준 채 쿨하게 핸들을 돌려 갈 길 갔다.

일 하러 가는 길에 들르는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덕에 나는 항상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 매번 부러워했다. 어떻게 너희 어머니는 매번 토요일마다 밥을 가져다주시냐고.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냥 일 가다가 잠깐 들르시는 거야.

왜 이제야 알았을까. 그것조차 사랑이었단 걸.

김치볶음밥 위에 갓 녹은 치즈가 쭉쭉 늘어나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감탄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아침에 싸오면 이미 밥이 다 식어서 볼 수 없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명치부터 찌르르한 전기가 흘렀다.

대학생 때도, 종로 캠퍼스에서 갑자기 두통이라도 생기면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머리가 아파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겠어.

수업을 듣는 도중 강의실에서 나와 로비 벤치에 누워있으면,

어디에 있다가도 엄마는 차를 끌고 나를 데리러 왔다.

인천에서 학교까지는 편도로 55km였다.

모닝콜을 못 듣고 9시 전공수업에 늦은 날도 그랬다.

엄마!! 엄마 나 늦었어!!!!

혼자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으면 비몽사몽 깬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날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8:55분 세이브. 전철+버스 환승을 하면 두 시간 반 거리를 50분 만에 주파했다. 덕분에 전공수업 지각을 면했다.


돌이켜보니 온통 사랑이었다.

내가 아픈 언니를 질투하고 있는 동안에도, 엄마는 항상 나에게 전화를 거는 입장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한 번도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었다.

나도 엄마가 필요할 때만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내가 독립하고도 2~3일에 한 번씩은 전화해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 아픈데 없는지 물었다.

언니가 분가해 가정을 꾸리자 언니와는 매일 통화했다.

나는 그것도 질투하기 바빴다. 눈먼 질투였다. 어리석었다. 내가 먼저 전화하면 그만인 것을.


지금도 먼저 자주 전화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종종 먼저 건다.

집에 별 일은 없는지, 강아지들은 잘 지내는지, 요새 새롭게 배운다는 취미는 잘 되고 있는지

그 마저도 내 고민 털어놓는 게 먼저긴 하지만.

예전엔 아예 내 고민을 들어줄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요샌 사소한 얘기도 하게 된다.


모든 게 다 당신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당신의 삶을 살아내고 자식들을 끌어주기 바빠 표현할 시간이 없었을 뿐, 모든 순간에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그 사랑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살 수 없었다는 것을.



때로는 시간을 다스려 손에 가지고파.
그대가 내가 될 수 있게 보내 날리고파.
난 그대 청춘에 그 봄의 노래 안기고파.
나 역시 어리던 당신의 볼을 만지고파.
그대 인생의 절반을 갈라 날 위해 살았고, 남은 인생의 전부를 또 나를 위해 살아도
하찮은 내가 줄 수 있는 거라곤,
한 평생 그대가 바라고 비는 성한 몸.
언제까지나 받고 받아 이제는 건네고 싶은데,
받은 건 모두 날 위해 쌓아 멋 내고 쉬는 게
그리도 어려워서 모두 거절할까?
아직도 일에 지쳐 사는 건 또 병 되고 싫은데.
그대 옷자락의 묵은 때보다 더
검은 내 죄로 그대 머리에는 눈이 내려.
가슴을 시리게 만들어 내 숨이 죄여.
오늘도 이별의 하루가 지나 꿈이 되면
그대를 찾아갈래요. 그대를 따라갈래요.
당신의 발자국에 맞춰 내가 살아갈래요
얼마 남지도 않은 우리 둘의 모래시계,
행복의 사막 그 안에서 우리 오래 쉬게.

every little piece of you
every little piece of you. love you
every little piece of you.
every little piece of you. 사랑해요


당신의 조각들, 에픽하이

        

이전 02화 덕질이 밥 먹여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