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샤의 운전
70대 어르신들을 늘 누군가의 배려가 필요해 보였다. 노약자 칸에 앉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고 자리가 없으면 손잡이를 간신히 잡고 몸을 구부렸다. 사람으로 꽉꽉 차있더라도 어르신들은 늘 눈에 띄었고 의자에 먼저 앉았더라고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다. 약한 어르신. 늘 약한 모습만 떠올렸는데 까미노를 걷던 71세 나타샤를 만났다. 75세가 된 나타샤는 버스에서 사람들이 자리를 내어주려 할 때면 'I'm not old' 말하며 서서 갔다. 나이는 마음이구나 싶어 졌다.
나나이모에서 이동이 필요할 때면 나타샤는 늘 운전을 했다. 운전면허증을 소지했지만 장롱면허인 외국 여행자는 그저 조수석에 탔다. 긴 운전이 있는 날이면, 걱정이 되어 나타샤의 컨디션을 살펴볼라치면 '걱정 마. 나는 건강해!'라고 웃으며 근육을 뽐내는 뽀빠이 포즈를 취했다. 월요일 아침. 나타샤가 세운 여행 계획 중 가장 탑 리스트에서 올라와있는 토피노에 가는 날이었다. 구글 지도에 따르면 편도 4시간, 왕복 8시간이 걸렸다. 내가 살고 있는 수원에서 경주 간의 거리 정도 일까? 세문도 경주쯤 갈 때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운전을 했다. 너무 고되지 않게 휴게소에 들러 충분히 쉬어도 도착하면 힘들어했는데, 나타샤의 긴 운전이 걱정되었다. 가지 말자 하기에는 이미 오래전 호스텔을 예약해두었고, 나타샤는 만나는 모두에게 토피노를 간다고 말했다. 심지어 자주 가는 마트 점원에게도 말했다. 취소하기에는 먼 길을 온 셈이었다.
토피노를 떠나는 당일이 되었다. 4시간 운전만으로도 고단한데, 아침부터 비는 내리고 중간에 도로 공사로 일부 도로의 운행이 잠시 멈춰질지 모른다 했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나는 너무나도 걱정이 되는데 나타샤는 괜찮다고 한다. 차에 올라타 나는 나타샤에게 이전에 토피노에 갔을 때 누가 운전했냐고 물었다. 늘 빅토가 했었고 아들 JP가 오면 그가 한다고 했다. 토피노를 운전하고 가는 건 생애 처음이라 했다.
나타샤가 세운Jeon's trip은 모험이었다.
일반도로에서 고속도로로 구간으로 옮겨 타는데 비는 점점 거세졌다.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나타샤가 후-하! 숨을 쉬면서 기어를 바꾸고 속도를 높였다. 나는 안전벨트를 꼭 잡았고 나타샤는 we're tuff라고 말하며 운전을 했다. (나타샤,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 터프해요!) 말 그대로 터프한 운전은 갑작스럽게 차의 속도를 높이기도 했고 핸들을 꺾으면서 차가 흔들리기도 했다. 나는 더욱 안전벨트를 꼭 잡고 기도를 했다. 트럭이 지나갈 때면 두려웠지만 그녀는 작게 No promblem! 을 말하며 전방을 더욱 집중했다. 중간에 화장실을 들리기 위해, 허기진 배를 위해 달래기 위해 잠시 멈춘 것을 제외하고 드디어 4시간 운전이 끝났다. 토피노임을 알리는 조형물을 보고 나타샤는 기뻐하며 We made it을 외쳤고 나도 정말 기뻤다. 정말 정말로 도착했다.
돌아갈 때도 4시간이 걸렸다. 올 때와는 다르게 도로공사로 인해 1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나타샤는 도로 상황을 살펴본 후 트렁크를 열고 피크닉을 준비했다. 트렁크에 걸터앉아 피크닉 가방에서 샌드위치와 과일, 삶은 달걀, 주스를 꺼내고 디저트로 초콜릿을 나눠먹었다. 다 먹은 후에는 주변을 살펴보기도 하고 각자의 여행일기를 기록했다. 도로공사의 해제를 알리는 신호가 들리자 나타샤는 기뻐하며 운전을 시작했고, 도로공사안내를 하는 사람들에게 경적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는 내게 도로에서 사고로 죽었던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에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나타샤가 더 좋아졌다.
터프한 나타샤의 운전은 종종 이어졌다.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빅토리아에 가는 날 왕복 5시간을 운전했다. 나는 We're tuff 문장이 맘에 든다고 했고 나타샤는 우리의 모토라고 말하며 운전을 했다. 나타샤의 터프한 운전은 밴쿠버 아일랜드 여행 내내 나를 안전히 이동시켜줬다. 덕분에 나는 한국에서 그 날의 일들을 글로 쓰고 있다.
위 이야기들은 매일매일 쓴 9월 23일 여행일기를 바탕으로 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