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혈병 진단 후 항암 치료 중입니다. 제 눈으로 바라본 삶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담아가고 있습니다.
51. <드리리다>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내 손을 내어 드리리다
누군가의 발이 필요하다면
투박한 내 발을 내어 드리리다
누군가의 건강이 필요하다면
아직 젊게 뛰는 내 심장도 내어 드리리다
드리면 드릴수록 기쁨이 배가되는
이 마음도 함께 드리리다.
몸이 아프면 알게 된다. 내 주변에 손이 되고 발이 되고 심장이 되어 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무한정 반복해서 퍼 주는 이들이 있다. 그저 감사하며 받을 뿐이지만, 그 마음 그 정성에 감동받게 된다. 여러 번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드리다'라는 행위에 기쁨의 향기가 배어 있다는 사실을.
오늘도 향기에 취한다
52. 머리에 비듬이 유난히 많다. 모자를 항상 쓰고 다니기 때문일까? 털어도 털어도 멈춤이 없다. 결국엔 머리를 다시 감았다. 그러면 마음의 위안도 되지만 일시적으로 비듬에서 해방될 수 있기에. 나만 그런가 싶어 아내에게 물었다. "나만 왜 비듬이 많이 생길까?" 아내의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비듬 샴푸 써봐!" 아 맞다. 항암 치료하며 병원에서부터 사용했던 민감성 샴푸만을 사용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없거나 적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머리카락이 자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내 안에 감추고 싶은 것이 많다. 밖으로 드러내어 자존심에 손상을 주고 싶지 않은 것들. 비듬도 내 것이 아닌 듯, 내 안의 약함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감추면 감출수록 나는 꽁꽁 숨는다. 그러면 내 안의 그림자가 주인공처럼 불쑥 튀어나온다. 그림자를 이용해서 숨는 일은 의외로 쉽다. 다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림자가 나의 주인이 되고 만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림자에 감사하며 산다. 그게 용기 없는 자들의 삶이다.
53. 책상 위에 호두 친구 세 알이 있다. 이들은 내버려 두면 조용히 자신의 자리만 지킬 뿐이다. 옛날 못난이 삼 형제 인형들처럼. 이들에게 생명의 불씨를 주는 역할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글을 쓰거나 강의를 들을 때면 왼손에 붙들고 스킨십을 한다. 이들의 소리는 참 맑다. 가식도 허례 의식도 짜증 섞인 목소리도 없다. 다만, 단단한 육체에서 뿜어내는 수다가 다소 시끄러울 뿐. 제자리로 돌려보낼 때 항상 확인을 한다. 윤기가 나며 더 반들반들해진 놈들 속에서 소외받은 이가 없는지. 어디에서나 편 가르기가 있다. 호두 세 알 친구들은 그런 세상에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인도 영화 세 얼간이가 생각난다. 그들도 호두처럼 참 맑았는데...
54. 매일 짧은 단상을 남긴다. 이것도 습관이다. 노란색 메모지 위에 검은 글씨. 잠깐 긁적였지만 흔적이 이쁘다. 무얼 쓸까 고민하지만, 쓰다 보면 미끄러지듯 무언가를 남기게 된다. 나 조차도 모르는 내 안 깊숙한 우물에 갇힌 생각이 글로 표현되고 있으니 신기하다. 말로 풀지 못하는 말을 글로 짓게 만든다. '입이 못하면 펜이라도 들어라'며 독촉하는 빚쟁이 같다.
추억을 남기는 것에는 기록만 한 것이 없다. 사진 한 장이 의미하는 바도 크지만 생생한 그 느낌을 그대로 전해주는 힘은 기록의 힘이다. 추억을 담고 싶은 것일까? 이렇게 매일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잊힌 과거의 향수를 붙들고 싶지만 시간은 그마저도 허락해주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일 뿐. 잊어라. 그래야 새 이야기가 태어난다. '추억은 남기는 게 아니라 먹는 거야. 먹고 소화시켜야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고 사는 거야.' 펜이 속삭인다.
짧은 생각이 삶의 지렛대가 된다.
55. 세월의 시간만큼이나 삶의 무게가 무겁다.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내려놓으려는 마음이 나를 붙들지만 죽음의 경계에서 산소마스크로 한 호흡 한 호흡 연명하며 붙들듯, 삶의 짐도 붙들고 있다. 이 짐은 배척하고 버려야 할 짐이 아니라, 평생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 친구다. 버리면 짐은 가벼워지겠지만 생명의 호흡은 그것으로 끝이다. 살아갈 이유가 그 짐 속에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