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써서 몸국인가?
"이건 정말 제주에서 아니면 못먹어요. 하는 음식 추천해주세요." 하면 내가 추천해주는 음식이 딱 2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몸국이다. (나머지 하나는 갈칫국이다.) 물론 서울에도 몸국을 파는 곳이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집 근처에 몸국집을 찾는건 쉽지 않을뿐더러 굳이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뚫고 서울에 있는 몸국을 먹으러 가기에는 제주에서 먹는 만큼의 기분을 내기도 어렵기에. 제주에 오면 꼭 몸국을 드셔보라 추천하곤한다.
나는 제주에 여행을와서 몸국을 소개 받기 전까지 세상에 몸국이라는 음식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살았다. 몸국? 그 생소한 이름에 내가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게 맞나..싶었다. 제주에 가려면 여권을 챙기라는 농담이 그냥 나오는말은 아닌가보다. 제주에 살면서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은 몇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가끔 이렇게 이름부터 생소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을 만나면 새삼 내가 육지사람인게 더 크게 느껴진다. 몸국을 육지말로 풀어보자면 모자반국이다. 돼지등뼈를 우려낸 국물에 해조류인 모자반과 순대, 메밀가루를 함께 넣어 푹 끓여낸 제주도식 보양식이다. 몸국이라 하니 처음에는 몸을써서 만드는 음식이라 몸국인가 싶어 진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가 보다 하고 나혼자 어림짐작했었다. 머리속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가마솥에 커다란 주걱으로 온몸을 써가며 음식을 휘젓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말그대로 몸을 엄청나게 써야 만들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림셈이다.
몸국은 주로 혼례때나 산모가 있을때 먹는다. 혼례때 먹는 몸국은 돼지 한마리를 잡으면서 순대도 만들고 수육도 해먹고 남은 뼈를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푸욱 삶아서 몸을 넣고 끓여 먹었던 국인것을 생각하면 내 상상이 정말 어느정도 일치하는 면이 있지 않은가? 말장난이긴 하지만 몸(모자반)을 써서 만든 음식이니 몸을 써서 만든 음식이 맞다. 만들때 뼈에 붙은 살을 하나하나 발라서 만드니 내 몸을 써서 만든 음식이라해도 맞는 셈이다. 몸을 써서 만든 음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몸국은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음식이다.
나의 첫 몸국은 '김희선 몸국'이었다. 용담동에 있는 꽤 유명한 집이다. 제주 여행때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제주 한량 오빠가 몸국을 모르는 나를 데리고 초심자는 여기지! 하며 데려간 곳이었다. 원래부터 해장국이며 뚝배기에 담긴 요리라면 뭐든 좋아하던 나로써는 무릎을 탁! 칠 맛이었다. 새로운 뚝배기 요리를 만난 기쁨에 다음번에 몸국을 먹으러 꼭 다시 여행을 와야겠다 다짐했었다.
그후 일에 치여 다시 제주에서의 추억을 잊어갈때 즈음 남편을 만나 결혼해 제주에 이주하게 되면서 몸국을 다시 만났다. 어머님께서 손수 끓여주신 몸국은 ‘김희선몸국’에서 먹었던 몸국과는 많이 달랐다. 좀 더 진득한 국물에 순대가 들어간 진짜 제주식 몸국이었다. 제주도도 집집마다 몸국을 만드는 방법은 약간씩 다르지만 정석대로 한다면 몸(모자반), 돼지등뼈(감자탕에 쓰이는 바로 그 고기), 순대(터뜨려 넣는다.), 메밀가루 이 네가지는 꼭 들어간다. 시어머님이 만드시는 몸국에도 이 네가지 재료가 모두 들어가긴 한다. 하지만 집집마다 다른점들이 순대를 넣지만 내장은 안넣는집, 순대에 선지까지 풀어서 넣는집, 육개장 스타일로 조금 매콤하게 만드는 집 등등 아주 약간씩 다르다.
제주에 오면 이 맛있는 몸국을 자주 먹을 수 있을줄 알았다. 제주사람과 결혼해서 더더 자주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몸국을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간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는 몸국을 먹고싶다는 소리가 절로 꿀꺽 삼켜진다. 어머님이 해주신 찐 제주식 몸국을 만들려면 먼저 감자탕에 쓰이는 돼지뼈를 푹 한번 삶은 다음 고기만 따로 발라내야 한다. 여기서 고기의 뼈를 일일이 발라내서 그 속살만 사용한다는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국물이 식을 때 까지 두면 기름만 굳어서 둥둥 뜨는데 그 기름을 걸러낸다. 이렇게 기름을 식히는데만 해도 반나절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이렇게 굳은 기름을 걷어내면 좀 더 깔끔한 국물을 맛볼 수 있다. 그후 발라낸 고기와 각종 채소와 양념을 넣어 푹 끓이는데 이때 몸과 함께 꼭! 빠져서는 안되는 재료가 하나 있다. 바로 순대다. 진짜 제주식 몸국에는 순대가 꼭 들어간다. 그냥 순대가 아닌 터진 순대를 넣으면 좀더 진하고 걸쭉한 국물이 완성된다. 그래서 순대를 못먹는 분이나 돼지고기 특유의 고기비릿내를 싫어하시는 분들이라면 몸국이 입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화룡점정 메밀가루. 몸국 특유의 고소하면서도 걸쭉함은 이 메밀가루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싶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서 최상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보양식이다. 나도 아이를 낳고 이 몸국을 원없이 먹었다. 출산 후 시어머니께서 먹고 싶은 음식 이시냐? 하고 물으실때 드디어 몸국이요! 하고 속시원히 말할 수 있었다. 그만큼 정성이 필요한 음식인걸 알았기에 평소에는 먹고싶어도 '몸국해주세요' 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아는맛이 더 무섭다고 내 기준에서 제주 음식의 최고봉은 몸국이다. 돼지등뼈에서 발라낸 야들야들한 고기 씹는맛에 입안에서 톡톡 씹히는 몸 특유의 식감이 재미있다. 메밀가루 덕에 혀에서 목구멍까지 부드럽게 프리패스로 들어가는 국물의 목넘김은 얼마나 좋은지, 정성들여 기름까지 걷어내 걸쭉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고소한 국물맛은 정말 일품이다. 음식은 정성이라는 엄마 말이 하나 틀린게 없다.
제주를 여행하며 이곳저곳 동네마다 약간은 허름에 보이는데 뭔가 내공이 느껴지는 집이 있다면 박차고 들어가 몸국을 먹어봐도 좋다. 그럼 진짜 제주식에 가까운 몸국을 먹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주를 여행하며 지역마다 다른 집의 몸국을 먹어보면 내가 왜 집집마다 몸국이 다르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을것이다. 운이 좋다면 나처럼 솜씨 좋은 어머니의 진짜 제주 가정식 몸국을 먹을 수 있을지도.
Tip. 몸국 초심자는 ‘김희선 몸국’ 운이 좋다면 잔치에 초대받으면 진짜 제주식 몸국을 먹어볼 수 있을 것이다. 아! 평소 고기 비릿내를 싫어하고 순대를 안먹는 분에게는 추천드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