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유럽,브라질에서 생긴 일
십여 년 전, 배낭여행 이라고는 일본 도쿄 1박 3일밖에 가본 적 없던 내가
두 번째 배낭여행지로 택한 곳은 인도였다.
인도를 선택한 것은 단지 비용 문제였는데 2003년 당시 누군가 200만 원 이면 충분히 다녀온다는 말을 했고 그 말에서 친구와 나, 우리의 여행지가 선택된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기로 하고 비행기를 끊고 가이드북을 사서 읽다 보니
내가 미쳤지 싶었다.
가이드북에 묘사된 인도는 무법천지였고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내가 왜 돈 들여 목숨 걸고 여길 갈까. 고민하다가...
저질러놓은 게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왕지사 비행기표도 끊었는데 이제 와서 무를 수 없으니까.
최대한 조심하기로 마음먹고 가이드북에서 눈여겨본 것은 빠하르간지에서 튼튼한 자물쇠를 사서 기차 안에서 가방을 꼭꼭 메어놓을 것과, 낙타 사파리는 꼭 동행을 구해 여럿이 함께 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여행 친구 H와 나는 델리에서 자이살메르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 빠하르간지(여행자 거리)를 뒤져 튼튼한 자물쇠를 구입했다. 쇠로 된 두툼한 자물쇠는 그냥 들기에도 무거웠고 웬만한 것으로는 끊어지지 않는 튼튼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자전거에 쓰는 자물쇠보다도 든든해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날 자이살메르행 기차에 타자마자 맨 윗 칸 간이침대 머리맡에 배낭을 꽁꽁 묶었다.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쳐다봤지만 우린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날 그 기차여행을 끝내기 전에 우리는 슬그머니 체인을 풀어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아무도 우리처럼 자물쇠를 묶어 둔 사람이 없었고,
아무도 우리가 경계해야 할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어처구니없는 게 그 배낭 안에 든 거라곤 티셔츠 두 장과 바지 한 벌, 그리고 남방셔츠 하나. 침낭, 화장품 정도였으니...
그걸 지키겠다고 자물쇠 묶어둔 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어디서나 조심은 해야 하고 나름 카메라와 여권 지갑 등이 담긴 가방은 소중하게 안고 잤으니 괜찮았던 것이겠지만 그저 자신들의 삶을 살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예비 도둑이라도 된 양 몰아붙인 듯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 그 후 40일간 인도 여행하면서 단 한 번도 그런 불쾌한 경험을 한 적 없었고 오히려 엄청나게 친절하고 다정한 인도 사람들과 재밌게 여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3년, 2006년에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나는 눈 뜨고 코를 베이고 말았다.
가기 전에 또 여러 블로그와 여행 카페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글과 그 수법들을 수없이 보고 갔다. 특히 내가 무섭다고 생각했던 예는 스페인 집시에 관한 거였는데, 새똥을 묻히고선 닦아준다고 접근해 골목으로 끌고 가 돈을 빼앗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왠지 너무 무서울 거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또 다른 예인 ‘경찰 사칭’ 소매치기에게 당했다.
분명 알고 있었다. 경찰을 사칭한 소매치기가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상황이 닥치니 어찌할 줄을 몰랐다.
장소는 오스트리아의 벨베데레 궁전.
클림트의 키스를 보기 위해 찾은 시간은 오후 3~4시.
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클림트의 작품들을 둘러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동생과 둘이서 신나게 궁전 정원에서 놀면서 사진도 많이 찍고 기분 좋게 길을 나섰는데...
나오는 길에 어떤 얼굴이 까무잡잡한 남자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일회용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궁전을 배경으로 서서 사진을 찍어달라기에 성심성의껏 찍어주었는데 한 장 더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또 성심성의껏 한 장 더 찍는데 그 사람 포즈가 이상했다. 이전과 달리 한쪽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을 휘젓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돌려주고 돌아서는데 엄청나게 덩치 큰 시커먼 양복을 입은 남자와 상대적으로 왜소한 남자 하나가 우리(나와 사촌동생 그리고 사진 찍어달라던 그 남자)를 둘러싸며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코카인 검사를 하고 있으니 여권을 내놓으라고.
난 그 순간 생각했다. 경찰 사칭 소매치기 아닐까.
그래서 싫다고 버텼다.
그런데 그 사진 찍어 달라던 남자가 덥석 여권을 꺼내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의 여권을 확인하고 돌려주며 우리에게도 여권을 꺼내라고 종용하는데 거기서 안 꺼낼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여권을 돌려주는 모습을 보니 문제없어 보이기도 했고.
그래서 결국 내 손으로 여권을 꺼내 보여줬고.
다음 차례는 지갑이었다.
그 덩치 큰 남자는 굉장히 위압적인 표정의 무서운 얼굴을 하고 "코카인 코카인" 하면서 지갑을 꺼내라고 윽박질렀는데 역시나 그 사진 찍어달라던 남자가 먼저 지갑을 꺼냈고 다시 돌려받았다. 그래서 우리도 역시나 그 분위기의 살벌함에 이끌려 지갑을 꺼냈다.
사실 지갑엔 돈이 얼마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코카인을 지니고 있다면 가방을 다 뒤져야 말이 되지. 아님 온몸을 수색하거나.
여하튼 지갑을 보여준 후 이제 끝났나 싶었는데 다음 순서는 시크릿 포켓이었다.
복대!!! 내 배를 가리키며 시크릿 포켓을 꺼내라고..
헐....
어느새 그 사진 찍어달라던 남자는 멀리 사라졌고 이 무서운 아저씨의 윽박지름에 나는 결국 복대까지 꺼내고 말았다.
너무너무 무서웠다. 그 아저씨의 손바닥이 적어도 내 얼굴 만했으므로 나는 그 아저씨가 손을 들고 위협하는데 도무지 복대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복대에서 꺼낸 내 돈을 쫙 부채처럼 펼쳐 잡고선 거기서 냄새를 맡는 척했다.
"코카인 코카인" 하면서.... 그리고 분명 내가 보는 앞에서 그 돈을 다시 접어 내 복대에 넣어서 돌려줬다.
사촌동생의 것도 똑같이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에게 가라고 했다. 드디어 해방!
사촌동생과 나는 돌아 나오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고 진짜 경찰인가 보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돈을 안 가져가고 다시 돌려줬으니까.
그리고 가까운 역에 있는 한인 마트에 가서 먹을 것을 사면서 아주머니한테 우리가 겪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경찰은 아니었을 텐데 아무 일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호텔로 돌아오는 트램 안에서 문득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찰은 아닌 것 같은데 돈을 안 가져갔다? 돈을 안 가져갔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복대를 꺼내 돈을 세어봤다.
한 장이 빈다!
오늘 밤 스위스로 야간 기차를 타고 넘어갈 예정이어서 당시 스위스 프랑만 갖고 있었는데 그 100프랑짜리 3장 중 한 장이 없어진 것!
동생의 복대를 확인해보니 동생은 프랑 3장과 유로 1장 갖고 있었는데 프랑 1장 유로 1장이 없어졌다!!!
우린 분명 눈 똑바로 뜨고 그들이 돈을 부채처럼 펴고 냄새를 맡은 뒤 다시 접어 넣는 것을 지켜봤는데.... 언제??
결국 우리는 둘이 합쳐 30만 원 이상의 돈을 빼앗긴 것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심장이 어찌나 요동을 치던지!
그 순간 우리는 판단력을 잃고 또다시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경찰서에 찾아가 경위서를 작성한 것이었다.
여행자 보험을 들면서 현금은 보상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들었으면서 우리는 그 현금을 보상받겠다고 경찰서로 향한 것이다.
영어가 짧은 나와 역시나 영어가 짧은 그 오스트리아 여자 경찰과의 대화는 정말 최악이었다.
그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짜증을 냈고 그 짜증의 원인에는 우리가 유색인종이라는 것도 한몫한듯했다.
경위서를 작성하는데 우리 주소를 쓰기 위해 나라와 도시 등을 그녀의 컴퓨터에 입력해야 했는데 우리나라가 안 찾아져서... 찾느라 시간을 소비했더니 그때 그녀가 했던 매몰찬 한마디가 지금도 기억난다.
"아이 머스트 고 나우!!!"
그렇다. 퇴근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온갖 수모를 겪으며 우리는 경위서를 작성하고 나와 스위스로 가는 야간열차에 올랐다.
기분이 무척 안 좋았지만 다 잊고 앞으로의 여행을 즐겨야 했던 그때!
사촌 동생이 울먹이며 말했다.
"언니 내 카메라가 없어..."
여행을 시작하며 면세점에서 새로 구입한 디카가 없는 것이었다.
동생은 울기 시작했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카메라를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그 소매치기들이 돈도 그렇게 가져갔듯이 카메라도 몰래 눈 깜짝할 새 가져갔을까.
만약 그들이 가져갔으면 우린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트램에서 흘렸어도 우린 찾을 수 없다.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하나. 경찰서에 두고 왔을 경우!
그래서 우리는 스위스에 도착하자마자 대사관을 통해 경찰서에 연락해 카메라가 있는지를 알아봤다.
불친절한 대사관과의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통해 우리는 경찰서에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며칠 뒤 밤기차로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서 카메라를 찾았다.
그 소매치기들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정신을 쏙 뺐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나는 그들이 경찰 사칭인 것을 알면서도 왜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내가 됐거든 하고 돌아섰으면 그들이 우릴 잡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찔한 기억이다.
두 번째 눈뜨고 코배인 이야기는 브라질 이과수 폭포에서 벌어졌다.
2014년. 남편의 브라질 주재 생활 중 주말을 이용해 짧게 이과수에 갔는데 당시 3살 난 우리 딸을 데리고 유모차를 끌고 갔다. 전 날 아르헨티나 이과수를 보고 그 날 브라질 이과수를 찾은 참이었다.
평소에 여행할 땐 작은 크로스백에 중요물품을 담고 큰 가방에 기타 아기용품과 여벌 같은 것을 담는 편인데 이과수는 폭포의 물이 많이 튄다고들 해서 방수가 되는 큰 가방에 DSLR 카메라와 지갑까지 다 넣고 다녔다. 그런데 가방이 크고 내용물도 많다 보니 너무 무거워서 계속 몸에 지니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주로 유모차에 걸고 다녔는데 문제는 브라질 쪽 이과수 전망대에서 발생했다.
아이가 계속 유모차에 앉아있고 가방을 뒤에 걸어놓은 상태로 남편이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 전망대에 사람이 많아서 유모차를 끌고 그곳까지 갈 수 없어서 남편과 교대로 전망대에 다녀오기로 하고 나 먼저 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이과수 폭포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어마어마한 폭포 앞에 길게 드리운 무지개를 발견했다. 아이에게 이 무지개를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유모차에 가서 아이를 안아 올리며 무지개 보여주고 오겠다고 했다. (그때 남편에게 가방을 들고 있으라고 했어야 했는데) 남편은 평소처럼 아이를 들어 올리면 가방 무게 때문에 유모차가 뒤로 쓰러지니까 가방을 앞으로 돌려놓았다.
그 상태로 유모차를 잡고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동안 우리는 무지개를 보고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근데 와서 보니 가방이 10센티 정도 열려 있었다. 난 분명 잠가 놓았는데...
가방을 열어보니 아뿔싸. 지갑이 없다.
지갑에는 그날 그날 필요한 돈만 넣어놓고 다른 파우치에 큰돈을 넣어놓고 쓰고 있었는데, 어젯밤에 지갑 정리하면서 오늘 이과수에서 헬기 탈지 모른다고 돈을 왕창 꺼내서 지갑에 넣어놓았던 것이 문제였다. 필요할 때 파우치에서 꺼내는 것도 어렵지 않은 것을 굳이 지갑에 꺼내놓아 브라질 헤알과 아르헨티나 페소를 합쳐 무려 35만 원 정도를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그것도 원래 지갑을 아래쪽으로 깊숙이 넣어놨었는데 전망대 가기 직전 콜라 사 먹는다고 지갑 꺼냈다가 부주의하게 그냥 바로 열면 보이게 지갑을 넣어놓았던 것이었다.
그러니 가방 열자마자 보이는 지갑을 쏙 가져간 것이었다.
상황은 역시나 이전 오스트리아 때와 같았다. 어떤 남자가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고 남편은 친절하게도 유모차를 등 진 채 사진을 찍어줬다고 한다. 그나마 가방이 신경 쓰여 재빨리 찍고 돌아봤는데 가방이 그대로 있었다고... 남편이 너무 재빨리 찍어서였는지 그 남자는 사진을 한 장 더 부탁했다고 한다. 남편은 또 친절하게 한 장 더 찍어줬고 그 찰나의 순간 동안 또 다른 남자가 내 지갑을 가져간 것이다.
위로를 하자면 그 가방 안에는 파우치 안에 목돈뿐 아니라 지인에게 환전을 부탁받아서 아르헨티나 페소로 환전한 돈이 100만 원 넘게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내 가방을 통째로 들고 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음만 나왔다.
그 뒤로 남편은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거절을 날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흔히 남미 쪽은 치안 때문에 여행하기 무섭다는 걱정을 많이들 한다.
총기로 위협하는 것이 흔한 여행지에서 단순히 소매치기를 겪은 것이어서 다행이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디를 여행하든 그 어디에서도 우리는 소매치기나 강도 등을 만날 수 있고.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치안이 좋고 안전해 보였던 유럽의 오스트리아에도 소매치기는 있고,
첫인상으로는 모두가 무서워 보였던 인도에서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
당연하게도 자기 물건을 스스로 챙기고 조심하는 것이 언제나 최선이다.
다만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소매치기 같은 아저씨들은 다시 만나도 난 그 아저씨들에게 안 당할 수 없을 거 같다.
그 아저씨들은 정말 너무 무서웠고, 난 여행자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즐겨하는 사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