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제주도 제주지만 전원주택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40년 가까운 세월 아파트에서의 삶에 나와 아내 모두 지쳐있었다. 아이들이야 태어나보니 아파트의 삶이 시작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어릴 적 잠시나마 시골에서의 삶을 경험해본 기억이 있는터라 아파트가 아닌 전원주택으로의 귀향을 항상 꿈꿔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주살이를 시작할 때 집은 무.조.건 전원주택이어야 했다. 복직 후 육지에 올라오게 되면 군인아파트가 아닌 주변의 전원주택에서 월세나 전세를 사는 것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제주에서 우리에게 전원주택은 집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전원주택이 우리에게 준 풍요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람은 대다수가 보수적이라고 한다. 한 번 편안함을 누리기 시작하면 그것을 변화시키고 싶지 않고 지키고 싶은 게 보통 본성이라고 한다. 특히나 대한민국 사회는 매우 보수적인 사회다.(정치에서의 보수, 진보를 의미하는 바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아파트는 삶에 있어 보수의 결정체가 아닐까? 아파트는 한 번 구매하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평생 그곳에 살 수 있고 실내 인테리어 일부(가구 옮기기, 벽지 바꾸기 등)가 아니고서야 특별하게 무언가를 바꿀 필요가 없이 그대로 안락함을 유지한 채 삶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파트의 특성이 한국인들의 성향과 잘 맞기 때문에 한국 사회는 아파트 사회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단지 옆 꽤나 널찍한 마당으로 포틀럭(Potluck) 파티, 캠핑, 바베큐 등을 할 수 있어서 그래도 좋았던 자운대 아파트.
복직을 앞두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나로서는 제주에서 떠나는 것도 아쉽지만 아파트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가장 고민이었다. 지난 1년간 제주도 지름쟁이왓(풍요로운 들판)에서 망아지마냥 뛰어놀던 아이들이 과연 아파트에서의 삶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런 아이를 주로 돌봐야 하는 아내는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육지에서는 아직도 코로나가 극성이라는데 이 모든 문제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답은 전원주택이었다. 어디에 있던 전원주택을 선택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전원주택은 도대체 우리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확신을 주고 풍요를 주었을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전원주택은 오직 소수에게 허락된 삶의 터전이라고 하고 싶다. 감사하게도 우리 가족이 그 소수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허락된'은 특권이 아니다. 결코 특권이 아니기에 거저 준다고 하여도 한사코 사양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전원주택의 삶은 소유에 대한 고찰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유한다는 것은, 주인이 된다는 것은 소유하지 않았을 때와 많이 다르다. 결혼은 어찌 보면 서로를 법적으로 소유하는 하나의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연애와 결혼이 다른 것처럼 전원주택은 그 소유의 의미에서 매우 까다로운 상대와 결혼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쉬는 날에도 노동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여! 전원주택으로 오라.
전원주택의 단점을 꼽으라면 그것으로만 브런치 글 하나를 발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점을 꼽으라면 그저 한 줄이면 충분하다. "마음껏 뛰놀 수 있어서." 이러한 한 줄의 장점 때문에 한 페이지의 단점을 극복한다는 것은 비효율의 극치 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한 페이지의 단점이 소유의 관점에서 장점으로 바뀔 수 있는 게 전원주택에서의 삶이 허락된 사람들의 특징이다. 전원주택은 주인에게 참으로 귀찮음을 선사한다. 관리할게 참 많다. 국가의 공공재로 당연히 제공되어 마땅한 전기와 수도, 가스 조차도 전원주택에서는 내가 관리해야 할 영역에 포함된다. 아파트에서 정전이 일어나면 인근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거나 단지로 들어오는 전신주에 문제가 생겼거나 하는 정도면 끝이다. 여느 집 신발장에 있을 손전등이나 양초를 켜고 모처럼 가족들과 아늑한 상태에서 서로에 대한 얘기 정도 나누면서 웃다 보면 어느새 다시 전기가 들어오면서 꺼졌던 냉장고며, 에어컨이며 여러 가전제품이 반갑게 삐빅 소리를 내며 다시 작동한다.
하지만 전원주택에서 전기가 나가면 고역이다. 마당의 전기는 배선의 문제일 수도 있어 함부로 만질 수 없고 날이 밝으면 전기기술자를 불러야 할 수도 있다. 대규모 타운하우스가 아니고서야 우리 집만 나간 거기 때문에 전신주 문제인지 우리 집 두꺼비집 문제인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해봐야 한다. 그저 전기가 나가지 않길 바라고 또 바라야 할 뿐이다. 수도는 또 어떤가. 상수도가 들어오는 지역의 전원주택이면 모를까 지하수를 파서 관리해야 할 수도 있고 심지어 그런 집을 구매해야 한다면 집 구매와 별도로 지하수 소유권 이전까지 해야 한다. 지하수가 말라서 새로운 지하수를 파야하는 공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도시가스가 안 들어와서 가스업체에 위탁을 해서 관리하다 보니 그래도 가스는 끊기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정화조 관리다. 정화조 관리는 아무리 전원주택을 사랑하는 사람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태풍이 지나고 나면 마당은 널부러진 나뭇잎과 부러진 가지로 엉망이고 마당 집기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파손되거나 심하면 다칠수도 있다.
벌레에 대해서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곤충박물관을 차려도 될 것 같다. 마당 관리는 아무나 할 수 없다. 잔디가 아닌 풀을 솎아내는 문제며, 나무를 관리하고, 길어진 잔디를 깎아줘야 하는 등 끝이 없다. 사계절 내내 마당 관리를 해야 한다. 마당이 너무 넓다면 그 정비 소요는 그만큼 비례해서 늘어난다. 건물 자체의 관리도 내가 직접 해야 한다. 흔한 경비아저씨도 안 계신다. 전등을 가는 문제와 같은 사소한 것은 익숙해지면 그만이지만 건물 자체의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외벽 도색, 옥상 방수, 타일 교체 등과 같은 다양한 작업 소요가 생긴다. 그냥 마음껏 놀 수 있게 아니다. 놀려고 하면 그 놀만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수영장을 설치한다면 수영장에 넣을 물을 끌어오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일반 수도를 외부로 연결하기 위한 호스 연결 조차도 그냥 이루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전원주택에서의 삶은 소유자로서 그것을 관리하는데 보람과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가족 중 최소 1명 이상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 그래야 지만 한 줄로 요약된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서."가 성립된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층간소음, 측간 소음, 야간 소음, 주간 소음 등 모든 소음으로부터 자유롭게 정말 마음껏 놀 수 있다. 아이들은 정말 이러한 자유분방함 속에서 창의력이 마음껏 발산된다. 아파트에서 뛰지 말란 말을 자꾸 들은 아이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방치된 아이는 분명 어떠한 부분에 있어서 차이가 발생할 것이다. 아이들을 더 '잘' 키우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저 아이들을 아이들의 속성 그 자체로 인정해주고 싶어서다. 물론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것도 위험부담이 따른다. 돌담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는 아들내미가 내심 불안하기도 하고, 이웃집 마당의 나무를 마음대로 꺾는 것도 가르쳐야 할 부분이지만 그 조차도 마당 딸린 전원주택이기에 경험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마음껏 노는 것은 사실 어른들에게도 매한가지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놀 때도 때로는 필요하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인지라 육지에서 살면서 틈틈이 휴가 때 전국 각지를 잘도 돌아다녔고 해외도 종종 다녔다. 레바논에 파병가 있는 동안에만 2번이나 해외여행을 다녀온 아내와 딸이었다. 마지막으로 갔던 외국은 태국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집 마당은 때로는 미국이, 때로는 영국이, 때로는 일본이 되어주었다. 일단 소유하고 보면 애정이 생기고 애정이 생기면 손이 가게 되고 손이 가게 되면 누리는 사람의 칭찬 한마디에 뿌듯함을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애정을 갖고 가꾼 마당에서 온갖 놀이를 하던 지난 시간들로 하여금 이 확신을 갖게 한 것이다. 코로나로 아무 데도 못 가지만 우리는 마당에서 어디든 갈 수 있었으니까.
마당 딸린 집은 누구에게나 로망 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로망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진 않는다.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 당분간은 복직 후 휴가를 나와도 제주도로 와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휴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리라. 지난 일 년간 잘 가꿔놓은 마당에서 오래간만에 가족들과 모여 바베큐를 할 것이며,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괴물 놀이(라고 말하는 술래잡기)도 마음껏 할 것이며, 기념일에 꽃다발 대신 마당에 꽃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수영장은 이제 정리해서 창고에 집어넣었지만 물총 싸움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아쉽지 않다. 가을 하늘이 그렇게 높다는데 마당에서 불멍 하며 별을 보는 것도 기대가 된다. 우리 집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오리온자리, 작은 곰 자리, 카시오페아 자리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곤 한다.
복직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자 교회 수련회 때 해봤던 '천로역정'의 기억을 더듬어 아이들에게 아주 큰 이벤트를 열어줬다. 보물 찾기를 너무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아빠 수준의 보물 찾기는 이런 거야 라며 스케일이 매우 큰 보물 찾기를 선사했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좋아해 주니 내가 다 뿌듯했다. QR코드를 이용한 단서 찾기도 꽤나 잘 해냈다. 7명의 아이들이 한 팀이 되어 팀장의 지휘 아래 각자가 가진 아이템과 각자가 가진 달란트를 이용해서 문제를 풀고 장애물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러한 놀이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전원주택에서의 삶에 감사함을 느꼈다.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 속의 거대 여왕 거미 늪지대를 긴장감 넘치는 모습으로 장화 신고 건너는 아들내미의 모습에 기특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용암지대를 통과하라! 왼쪽 끝에 빨간색 공구통은 보물상자고 스티로폼은 용암지대를 건너갈 수 있게 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지혜를 모아 극복하도록!
어쩌면 제주에서의 삶이 정말 끝날지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아내는 육지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에 확고함이 있었다. 그런 아내를 설득해서까지 제주도에 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아내가 있으면 그저 좋다. 육지에서의 삶이 불편할 것 같아 미안해서 제주도에 남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러한 불편함을 스스로 이겨내 보겠다는 아내에게 내심 고맙기도 했다. 다만, 전원주택에서 사는 것으로 불편함을 줄여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겠구나 싶었다. 아이들도 제주도에서 떠나는 게 너무 싫지만 그나마 전원주택으로 또 간다고 한다면 조금은 설득이라도 되겠구나 싶다. 완고하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집과 마당이 가장 기본이기 때문에 동일한 환경을 제공해주면 어느새 익숙해지고 동화될 것이다.
10개월 동안 참 잘 살았다. 부동산 공부도 꽤 해봤고 전원주택에서 생존해야 해서 건축법을 비롯한 여러 법 공부도 병행했다. 사실 1년 살이인 나는 객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사장님이 책임질 문제지만 그래도 나는 주인처럼 살고 싶어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배워보려 노력한 것이다. 많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우리나라는 법조차도 아파트의 기준에 맞춰있구나 싶었다. 법 자체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전원생활을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불편감을 잊게 해 줄 불멍과 마시멜로 구이는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산다는 것. 작지만 내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가족 모두가 꿈꿀 수 있는 공간이 실내외에 있다는 것. 자연과 경계를 두지 않고 더불어 산다는 것. 작은 텃밭에서 일궈낸 저녁 한 끼의 싱싱한 야채들. 무엇보다 그 어떠한 제약 없이 마음껏 뛰어놀았던 시간. 전원주택이 우리에게 주었던 풍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