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식이 청춘이 되었을 때

가져야 할 부모의 자리! 키우던 자리에서 맞이하는 자리로

by 도시락 한방현숙

부모-자식 관계

수많은 관계들이 유동적으로 변하지만, 오늘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어린 자녀를 돌보며 내 안의 우주라 생각하며 벅차오르던 30대, 아이들 학교 보내며, 사춘기 자녀들의 꿈 실현이 결국 내 꿈의 실현 인양 분주하던 40대, 그리고 이제 50대가 되어 스무 살이 넘은 아이들을 보고 있다.
커버린 아이들

스무 해 이상 내가 먹이고, 내가 입히고, 내가 가르치고, 내 방식대로 키웠지만 아이들은 이미 내 품을 벗어나 내 스타일의 자식이 아닌 지 오래다.

어릴 때는 내가 만든 음식만 먹일 수 있었고, 학교 앞 불량식품까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면 사춘기를 넘어 서자 친구들과 세상의 다양한 맛에 눈 뜨며, 내가 주는 음식을 거부할 때도 있고, 당당히 ‘건강’보다는 ‘맛’이 우선이라며 그 이유를 밝히기도 하고, 내가 '정성'으로 떠올리는 음식을 '비판'으로 회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이고, 성숙한 성인으로 가는 상식적인 행동이라 해석해도, 부모인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네가 그렇게 맘에 들어하지 않는 부모 안 하련다.

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 글을 시작했던가! 다시금 주제를 상기해 본다.

머리 컸다고 말 듣지 않는 자식에 대한 섭섭함 토로인지, 엄격하게만 교육한 내 훈육방식에 대한 반성인지,
사랑으로만 떠올렸던 자식들을 다른 감정으로도 떠올릴 수 있음에 대한 놀람인지, 죽어도 자식에게 인정받고 싶은 몸부림인지 ……. (이 글을 오랜 시간 끝맺지 못 한 이유이기도 하다)

방학을 맞아 세 아이들과 하루 삼시 세 끼를 먹으며 지낸 지 이주일이 되어 간다. 일주일이 되는 날 나는 결국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한참 아이들에게 있는 대로 화를 내고는 실망감, 자조 등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빠져 내 위치의 부모 자리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학생인 두 딸은 12월부터 이미 그런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텐데, 아침마다 출근하는 나는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니 별일 없이 지나쳐 왔던 거였다. 아이들은 12시가 되어도 기상하기 힘들었으며,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달고 살았고, 식사 시간을 놓치니 당연히 인스턴트로 때우려 했고, 자주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고, 각자의 방은 늘 도가 지나칠 정도로 지저분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들은 주저 없이 게으르고, 비생산적이고, 지저분하고, 꿈이 없이 늘어진 한심한 아이들로 해석해 주기 충분했기에 난 급기야 궁리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아이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음에 분노하며 자괴감에 빠지고 만 것이다. 게다가 큰아이는 그동안 나의 훈육 태도를 비판하기까지 했다.

부모로서 25년

열심히 성실히 잘 키워 왔다 생각했는데, 결국 나는 방 청소 하나 제대로, 벗어 놓은 자기 옷 하나 걸지 않는 아이들로 키워왔단 말인가? 큰 거 바란 것도 아닌데, 복에 겨워 감사한 줄도 모르고 저리 태평하게 나태한 모습만 보이다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고등학생이 되는 막내에게서는 방문을 열 때마다 공부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고, 스물한 살이 되는 둘째에게서는 책을 많이 읽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야무진 모습을 보기 원했고, 대학을 졸업하여 이제 임용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첫째에게서는 내가 옛날에 가졌던 그 절실함과 간절함으로 꿈을 좇는 젊은이의 모습이길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바라는 나만의 내 자식 스타일일 뿐이었다.

한 바탕 호통을 친 뒤 내 마음은 더 무거워졌고,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다 늦은 저녁에 약속이 있다며 외출을 하기도 했다. 관계는 어색해졌으며, 나를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느끼니 더 괘씸하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또 화가 나기도 했다.

60년대 생 부모와 90년대 생 자식

세상은 변했다 한다. 가난한 부모님,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며 더 나은 삶을 위해 스스로 공부하던 우리는, 우리(부모) 세대보다 어렵게 살 확률이 높은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들은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고, 반 쪽뿐이 없다면 눈물로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허기짐을 참아냈으며, 우리는 열심히만 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시대에서 청춘을 맞이했다, 그리고 임신, 출산, 육아를 ‘어른(엄마)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려니~’하며 ‘독박 육아’, ‘대리 효도’라는 말조차 떠올리지 못 한 채 살아왔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면 (어쩜 꼰대라고) 싫어하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들은 이제는 가난하지 않은 90년대 나라에서 태어나 콩 여러 알을 풍부하게 나눠 먹을 수 있는 부모님을 보며 자라났다. 절대 만만하지 않은 세련되고 교양 있는 부모님 밑에서 주도적으로 사교육을 받으며 가기 어렵다는 인 서울 대학 진학을 위해 경쟁하며 커 왔다. 그리고 수많은 스펙을 가지고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이는 구조적 모순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을 보내고 있다. ‘수저 논란’ 등으로 자신의 부모들조차도 능력으로 평가하는 거친 사회 속에서 노골적으로 상처 입고 낙심해서 한참 아픈 중이다. 능력자만이 연애, 결혼, 출산을 할 수 있다는 어려운 나라에서 학자금 대출, 비정규직, 시급, 취업, 원룸 등등의 단어들로 시달리며 청춘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

나태하고 빈둥거릴 때조차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 아닐까요?

그런데 내 딸들은 지금 저러고 있다. ‘복에 겨워 아주…….’ 내 마음대로의 생각은 점점 더 커져 나를 집어삼킬 듯 부풀었고, 자식과 나를 완전히 분리시키지 못 한 나는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마침 모임이 있어 나의 심사를 토로하니 비슷한 연배들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공감해 주었다. 우리 집 자식이나 남의 집 자식이나 똑같다는 안도감도 느끼며 대화를 이어가던 중 어느 지인의 말이 나의 심장을 건드렸다.

“ 아니 난 충분히 지지해주고 응원해 줄 수 있어. 꼭 합격이나 성공을 안 하더라도……. 그런데 열심히는 해야지. 열심히 노력한다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거니 몇 번을 떨어져도 응원할 수 있어. 그런데 그렇게 나태하고 빈둥거리니…….”
“ 근데 그때(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할 때)는 누구나 응원할 수 있잖아요? 나태하고 빈둥거릴 때조차 응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부모 아닐까요?”
부모 욕심

나는 왜 이 시점에서 눈물이 차올랐을까? 나의 위선이 고개를 들어서일까? 겉으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라는 부모로서 지극히 당연한 말씀을 하고 있었지만 내 안에는 다른 생각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애써 외면했기 때문일까?

큰딸이 시험에 합격해서 어엿한 교사로 학교에 출근하면 얼마나 근사한 그림일까? 둘째 딸이 지방대에 진학한 핸디캡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열심히 공부(공무원 시험)한다면 내 얼굴이 좀 살 텐데……. 또 막내딸이 열심히 공부하여 내로라하는 대학에 진학하면 얼마나 자랑하기 좋을까? 이런 내 안의 욕심을 채우지 못해 그리 과도하게 아이들을 몰아붙였을까? 이 세 가지가 만족스러웠고 가능한 일이었다면 늦잠과 청소쯤은 패스했을 것이리라.

이미 아이가 아닌 성인이 된 큰 아이로부터 나는 독립하지 못했던 것이다. TV나 신문에 나오는 청춘들에게는 잘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정작 우리 집 청춘들을 함부로 예단하고 폭언하며 상처까지 주었다.

“좀 기다려 주면 안 되나요?”

큰 아이의 말소리가 울려 가슴을 때렸다. 난 치사하게도 돈으로 자식에게 갑질을 해댔다. “내 집, 내 돈으로 살면서 엄마 말 들어”라고 시작한 사소한 우스갯소리가 부모 자식 간을 금전적인 관계로만 좁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왜 우리가 엄마가 원하는 삶대로 살아야 하나요?”
“ 25년이나 널 길러 줬는데, 대학까지 졸업시켰는데 부모로서 너에게 그런 희망사항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니?”
“ 엄마가 원하는 삶이 꼭 우리가 행복한 삶은 아니에요.”
“ 내가 여태까지 어떻게 널 길렀는데, 지난 시간들이 갑자기…….”
“ 확대 해석하지 말아 주세요, 지금 제 상태를 말씀드리는 거지, 지금 제가 엄마 말을 안 듣는다고, 지난 25년이 의미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잖아요.”
마음에 안 들어도 미워하지 않기

큰 아이와 나눈 대화를 곱씹을수록 섭섭한 마음에 눈물까지 나왔다. 괘씸했다가, 속상했다가, 억울했다가, 자괴감까지 들며 우울감에 빠져 지낸 며칠이었다. 모임에서 나눈 대화들을 되뇌며 일부러 집까지 30여분 거리를 천천히 걸어왔다. 옳은 말만 하는 큰 아이를 부모에게 대든다며 비겁하게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용기 내어 부모도 실수하는 인간임을 시인하지 않았다. 그게 자존심 인양 오기를 부리며 큰소리로 더 화를 내었다.

똑똑한 자식, 공부 잘하는 자식,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자식, 대기업에 취직하는 자식, 내로라하는 배우자와 결혼하는 자식 등 겉모습만으로도 부모라는 자리를 한껏 빛내주는 자식들은 많다. 그러나 모든 자식들이 그런 잘난 자식들의 자리에 설 수도 없거니와 내 자식이 꼭 그런 잘난 자식들일 수도 없다. 그리고 무엇이 잘난 것인지 사실 우리는 모른다. 내적(인성)으로 잘난 것은 드러나기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섣부르게 겉모습만으로 쉽게 부러워한다.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라면서 나는 그 자식의 힘듦을 돌보려 하지 않았다. 취업을 못 해서, 공부를 못 해서 속상하다지만 정작 취업을 못 하고, 공부를 못 하는 본인이 가장 괴로움을 보지 않으려 했다. 지치고 뒹굴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 주어야 할 것을 조급해하며 안달하며 불안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 버리고 말았다.

청춘의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50이 되어서 다시 한번 부모 자리를 점검해 본다. 가장 불안하고 어렵다는 청춘의 부모로서 내가 최선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이제 한 세대가 바뀌려는 시점에서 내가 받아들이고 변화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말없이 안아주고, 따스한 밥 한 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추위에 떨고 온 자식 이유 묻지 말고 그저 따뜻하게 몸과 마음을 덥혀주는 그런 푸근한 엄마!

세대교체를 두려워하지 말고 굳어버린 생각을 말랑하게 풀어놓으며 강요 아닌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런 엄마! 이제 내가 자식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자식들에게 져주는 푸근한 모습이 지금 내가 채워야 할 부모 모습임을 깨닫는다.

마음먹는다고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잊을만하면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조금씩이라도 변화할 것을 다짐해 본다.


부모로서 해 줄 단 세 가지
(박노해)

무기 감옥에서 살아 나올 때
이번 생에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물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 동조해서는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 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혼자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해 심란할 때 우연히 건네받은 박노해 시이다. 오랜만에 뵌 선생님은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이 시를 주셨다. 읽고 읽고 또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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