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져야 할 부모의 자리! 키우던 자리에서 맞이하는 자리로
부모-자식 관계
어린 자녀를 돌보며 내 안의 우주라 생각하며 벅차오르던 30대, 아이들 학교 보내며, 사춘기 자녀들의 꿈 실현이 결국 내 꿈의 실현 인양 분주하던 40대, 그리고 이제 50대가 되어 스무 살이 넘은 아이들을 보고 있다.
커버린 아이들
어릴 때는 내가 만든 음식만 먹일 수 있었고, 학교 앞 불량식품까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면 사춘기를 넘어 서자 친구들과 세상의 다양한 맛에 눈 뜨며, 내가 주는 음식을 거부할 때도 있고, 당당히 ‘건강’보다는 ‘맛’이 우선이라며 그 이유를 밝히기도 하고, 내가 '정성'으로 떠올리는 음식을 '비판'으로 회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맘에 들어하지 않는 부모 안 하련다.
머리 컸다고 말 듣지 않는 자식에 대한 섭섭함 토로인지, 엄격하게만 교육한 내 훈육방식에 대한 반성인지,
사랑으로만 떠올렸던 자식들을 다른 감정으로도 떠올릴 수 있음에 대한 놀람인지, 죽어도 자식에게 인정받고 싶은 몸부림인지 ……. (이 글을 오랜 시간 끝맺지 못 한 이유이기도 하다)
부모로서 25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고등학생이 되는 막내에게서는 방문을 열 때마다 공부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고, 스물한 살이 되는 둘째에게서는 책을 많이 읽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야무진 모습을 보기 원했고, 대학을 졸업하여 이제 임용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첫째에게서는 내가 옛날에 가졌던 그 절실함과 간절함으로 꿈을 좇는 젊은이의 모습이길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바라는 나만의 내 자식 스타일일 뿐이었다.
60년대 생 부모와 90년대 생 자식
우리 부모님들은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고, 반 쪽뿐이 없다면 눈물로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허기짐을 참아냈으며, 우리는 열심히만 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시대에서 청춘을 맞이했다, 그리고 임신, 출산, 육아를 ‘어른(엄마)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려니~’하며 ‘독박 육아’, ‘대리 효도’라는 말조차 떠올리지 못 한 채 살아왔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면 (어쩜 꼰대라고) 싫어하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나태하고 빈둥거릴 때조차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 아닐까요?
“ 아니 난 충분히 지지해주고 응원해 줄 수 있어. 꼭 합격이나 성공을 안 하더라도……. 그런데 열심히는 해야지. 열심히 노력한다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거니 몇 번을 떨어져도 응원할 수 있어. 그런데 그렇게 나태하고 빈둥거리니…….”
“ 근데 그때(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할 때)는 누구나 응원할 수 있잖아요? 나태하고 빈둥거릴 때조차 응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부모 아닐까요?”
부모 욕심
큰딸이 시험에 합격해서 어엿한 교사로 학교에 출근하면 얼마나 근사한 그림일까? 둘째 딸이 지방대에 진학한 핸디캡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열심히 공부(공무원 시험)한다면 내 얼굴이 좀 살 텐데……. 또 막내딸이 열심히 공부하여 내로라하는 대학에 진학하면 얼마나 자랑하기 좋을까? 이런 내 안의 욕심을 채우지 못해 그리 과도하게 아이들을 몰아붙였을까? 이 세 가지가 만족스러웠고 가능한 일이었다면 늦잠과 청소쯤은 패스했을 것이리라.
“좀 기다려 주면 안 되나요?”
“ 왜 우리가 엄마가 원하는 삶대로 살아야 하나요?”
“ 25년이나 널 길러 줬는데, 대학까지 졸업시켰는데 부모로서 너에게 그런 희망사항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니?”
“ 엄마가 원하는 삶이 꼭 우리가 행복한 삶은 아니에요.”
“ 내가 여태까지 어떻게 널 길렀는데, 지난 시간들이 갑자기…….”
“ 확대 해석하지 말아 주세요, 지금 제 상태를 말씀드리는 거지, 지금 제가 엄마 말을 안 듣는다고, 지난 25년이 의미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잖아요.”
마음에 안 들어도 미워하지 않기
똑똑한 자식, 공부 잘하는 자식,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자식, 대기업에 취직하는 자식, 내로라하는 배우자와 결혼하는 자식 등 겉모습만으로도 부모라는 자리를 한껏 빛내주는 자식들은 많다. 그러나 모든 자식들이 그런 잘난 자식들의 자리에 설 수도 없거니와 내 자식이 꼭 그런 잘난 자식들일 수도 없다. 그리고 무엇이 잘난 것인지 사실 우리는 모른다. 내적(인성)으로 잘난 것은 드러나기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섣부르게 겉모습만으로 쉽게 부러워한다.
청춘의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말없이 안아주고, 따스한 밥 한 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추위에 떨고 온 자식 이유 묻지 말고 그저 따뜻하게 몸과 마음을 덥혀주는 그런 푸근한 엄마!
부모로서 해 줄 단 세 가지
(박노해)
무기 감옥에서 살아 나올 때
이번 생에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물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 동조해서는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 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혼자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