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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빈 Mar 03. 2024

세상에 괜찮은 악플은 없다 - 1부

6개월 대장정의 시작

프로젝트 참여를 결정한 건 작년 연말 즈음, 첫 온라인 모임은 올해 2월에 시작했다. 그전엔 따로 정해진 일정 없이, 이메일을 통해 전반적인 과정 소개가 이루어졌다. 앞서 <프롤로그>에서도 일부 소개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언론인, 특히 여성 혹은 성소수자 언론인을 향한 온라인 공격의 실황을 살펴보고, 그 문제점과 극복 방안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 달에 1번씩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 현직 기자들이 온라인으로 만나 다 함께 강의를 듣고, 본인과 주변 기자들 경험을 토대로 논의할 예정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의 초점은 언론인에 대한 온, 오프라인 공격이지만, 여기서 다루는 내용들은 인터넷 환경이 특히 발달한 대한민국에서 직종을 막론하고 악플이나 각종 온라인 공격에 시달리는 모두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SNS 활용 범위가 그 어느 때보다 넓어지고 있는 요즘, 온라인 환경에서의 공격은 비단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나 유명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위 '유명인' 혹은 '공인'과 '일반인'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면서, 누구든 개인 신상 정보가 털릴 수 있고, 괴롭힘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 본격적인 프로젝트의 시작!


<다트 센터(Dart Centre), 그게 뭔데?>

사진 출처: https://dartcenter.org/

대한민국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언론인에게도 다트 센터는 그리 익숙한 단체가 아니다. 나 역시 작년 여름, 방송기자연합회에서 주관한 호주 멜버른에서의 트라우마 관련 연수를 계기로 다트 센터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전까지는 미처 접할 기회가 없었다. 다트 센터는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출발한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인데,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저널리즘 관련 전문가와 심리학자, 그리고 전 현직 언론인들로 구성된 전문가 단체다. 아시아-태평양 지부가 호주 멜버른에 있다. 이들은 더 좋은 저널리즘을 위한 다양한 연구를 한다. 특히 언론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피해 당사자나 유가족 등등의 취재원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들의 사연은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주로 다뤄 왔다. 현직 언론인들을 상대로 다양한 교육도 하고 있다. (다트 센터 공식 홈페이지: https://dartcenter.org/)


다트 센터는 글로벌 조직인만큼, 센터에 직접 소속된 구성원들 외에 각 나라별 '펠로우(Fellow)'를 두고 있다. 이들은 각 나라에 있는 언론인들과 다트 센터 간의 다리 역할을 해 주면서 관련 연구와 교육을 다방면으로 돕고 있다. 모두 더 나은 저널리즘 보도, 그리고 더 좋은 언론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관련 소식을 잘 살펴보면 국내 주니어 기자들에게도 꽤 유용한, 혹은 꼭 필요한 교육을 많이 하고 있다.


<누가 참여하는데?>

본 프로젝트는 다트센터 소속 전문가들과 3명의 시니어 펠로우(Senior Fellow), 그리고 10명의 펠로우가 함께한다. 시니어 펠로우는 그간 다트 센터와 수년간 협력해 온 전·현직 기자들이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10명의 펠로우는 다트 센터 주관 연수를 수료한 기자들이다. 국적은 대만/솔로몬제도/스리랑카/방글라데시/필리핀/인도/태국/대한민국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지난해 연수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당시 연수를 함께한 한국의 시니어 펠로우 선배 덕분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 프로젝트의 전 과정은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GNI)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지난 1월, 다트 센터는 본격 시작에 앞서 앞으로 6개월간 함께할 참가자들의 간단한 프로필을 각자 써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겨울 휴가 도중 이메일을 열어본 나는 부족한 영어 실력을 동원해 더듬더듬 겨우 몇 줄 적어 보냈다. 이후 센터에서 모두의 프로필을 취합해 다시 보내줬다. 올해로 7년 차인 난 그 모임에서 매우 막내급이었다. 전 세계 각국에서 훌륭한 보도를 많이 한 다른 펠로우들의 약력을 보니 온라인으로 기가 죽었다. (ㅎㅎ...쭈굴) 최근에 부쩍 주변 동료들과 '이제 지친다, 지겹다'는 말을 농담 삼아 주고받곤 했는데, 20년~30년 가까이 이 업에 종사했다는 사람들의 야무진 포부와 다짐을 보니 참 대단하다 싶고,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6개월 뒤엔 어떤 결론을 내?>

이렇게 13명의 펠로우와 다트 센터 소속 연구원과 센터장 등 15명은 앞으로 7월까지 온라인 모임을 이어간다. 매 세션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먼저 온라인 괴롭힘과 관련해 다트센터 측이 진행하는 강의를 듣고, 펠로우들이 자신과 자국 기자들의 경험을 나누며 자유롭게 토의하는 순서로 진행한다. 이 과정을 통해 디지털 환경에서의 괴롭힘에 대응할 수 있는 일종의 '가이드라인' 혹은 '팁 시트(Tip sheet)'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가이드라인은 매 세션이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윤곽이 잡혀가겠지만, 온라인 괴롭힘을 당한 기자 개인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팁 시트는 영어로 작성될 예정이다. 이후 각 펠로우들은 각자 자신의 모국어에 맞게 이 팁 시트를 번역하고, 각국 문화권에 맞게 '현지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까지 담당한다. 우리나라에 배포될 한국어 팁 시트의 번역과 '한국화'를 내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사실은 매우 부담스러웠지만, 그보단 뿌듯하고 기쁜 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트 센터에서는 그동안 온라인 괴롭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여러 종류의 팁 시트를 만들어왔다. 만들어진 팁 시트는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 영어로 쓰여 있기는 하지만, 우리 언론 환경에도 유의미한 내용이 많다. 아래 링크로 접속하면 어린아이와 관련된 보도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을 과도하게 단순화/일반화해서 표현하지 말 것', '취재 대상자인 어린아이들에게 과도한 희망을 주지 말 것' 등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짚어주고 있는데, 국내 언론 보도에서도 살펴봄직한 내용이 꽤 많다.


https://dartcenter.org/resources/best-practices-reporting-children-families-and-caregivers




2. 언론인을 향한 온, 오프라인 공격은 '실제 상황'이었다.


독재 정권 하에서 인권 유린에 대해 다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여성으로서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은 특히나 더 위험한 일이다. 독재 정부와 그들의 지지자는 이전에 다른 언론인과 사회 활동가들에게 그러했듯, 나를 겁주고, 내 힘을 빼앗아서, 결국엔 내가 침묵하게 했다. 위험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성희롱부터 스토킹, 물리적인 위협이 이어졌고, 나의 온라인 계정은 수차례 해킹 위협을 받았다. 이러한 과정은 온,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내 존재 자체를 집어삼키는 악몽과도 같았다.


(기사 원문: https://msmagazine.com/2024/01/18/online-abuse-women-journalists-lesbian-gay-trans-rape-misogyny-sexual-harassment-doxing/)


이집트와 미국에서 기사 생활을 한 제제 모하메드(Jeje mohamed)는 자신에게 닥쳐왔던 온, 오프라인 상의 괴롭힘과 공격에 대해 설명했다. 제제 모하메드는 이집트에서 쏟아진 온라인 공격을 피해 미국으로 갔지만 괴롭힘은 미국까지 그녀를 따라갔다. 게다가 미국에선 자국민이 아닌 '이민자'라는 새로운 소수자로서의 정체성까지 덧씌워지면서 보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양상으로 괴롭힘이 번져갔다. 위 기사에 따르면 레바논에선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 암살 의혹 사건을 다룬 여성 기자가 사우디 국적의 각종 온라인 계정으로부터 살인 협박을 받고 성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듣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여러 선행 연구와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공격은 대상자가 여성이거나 소수자인 경우 더 가혹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위 기사에서도 남성 기자들의 경우 지식, 혹은 그들의 '능력'에 대한 모욕이 주로 이루어지는 반면, 여성이나 성소수자는 성별이나 성적 지향성 그 자체를 악용한 괴롭힘과 모욕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펠로우들은 토의 시간에 자신과 주변 기자들이 겪은 괴롭힘의 사례를 일부 소개했다. 심각한 물리적 위협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크고 작은 괴롭힘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특정 기관이나 정부로부터 보복성 기소를 당하는 일도 빈번했다. 특히 외국에선 기자들이 직접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 등을 이용해 기사를 게재하는 경우가 많아 괴롭힘의 타깃으로 노출될 위험성도 더 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대한민국에선 아직까지 특정 언론인이 기사 작성이나 취재 과정에서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의 괴롭힘을 당한 사례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연속된 참사 보도 속 일부 잘못된 취재 관행, 혹은 양극화된 정치 이념 등으로 언론을 향한 혐오감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자신의 정치 이념과 맞지 않는 작성한 기자들의 얼굴과 일부 제목만을 뽑아 이렇게 전시하듯 모아놓는 사이트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직 기자들끼리는 "이거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며 웃어넘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취재 윤리를 어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논조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언론인이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마땅한 대응 방안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회사 차원에서도 조직적인 도움을 주기 어려운 것이 현실. 토의 시간에 오갔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다른 나라 기자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괴롭힘을 당했을 때, 혹은 위협이 느껴질 때 단순히 피하는 것 이외에 뚜렷한 해결책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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