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상이든 '대응법'을 찾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먼저 잘 아는 게 중요하다. 틀린 말씀 하나 하지 않는 옛 어른들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나. 특히 디지털 환경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온라인 환경에서 특정인을 상대로 발생하는 괴롭힘은 최근 그 종류와 정도가 정말 다양해졌다. 먼저 온라인 괴롭힘이라는 것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또 최근 상용화되기 시작한 일부 기술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이른바 신상(?) 괴롭힘은 어떤 것이 있는지도 톺아보았다.
1. 무슨 뜻인데?
TFV - Technology Facilitated Violence(기술 매개 폭력). '별 걸 다 줄인다'까지 줄여서 '별다줄'이라고 부르는 줄임말의 홍수들 틈에서도 'TFV'라는 용어는 너무나 생소했다. 'Technology Facilitated Violence'의 앞글자만 따온 것인데 이것 참 한국어로 쓰기도 쉽지 않은 까다로운 용어다. 기존에 발표됐던 다른 논문들을 찾아보니 '기술 매개 폭력' 정도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다.
TFV란 하나, 혹은 그보다 많은 개인에게 가해지는 일종의 폭력 행위로, 디지털 미디어나 정보 처리 또는 온라인상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발생했거나, 그 정도와 범위가 증폭된 경우를 가리킨다. 인터넷 기술과 소셜미디어의 발전은 이와 같은 TFV의 발생 빈도와 정도, 범위 자체를 크게 확장시켰다. 특히 최근엔 괴롭힘의 영역이 지극히 사적인 '개인'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양상을 띠고 있어 우려를 더하고 있는 상황. 그도 그럴 것이, 마음만 먹으면 고도화된 기술을 동원해 개인의 침실과 휴대폰을 해킹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생활을 누구보다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준 GPS, 사물인터넷, AI 기술 등이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펠로우 중 한 명은 국제언론인협회(International Press Institute)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아래 기사를 공유했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가짜뉴스로 피해를 입은 슬로바키아 언론인 사례다.
슬로바키아에서 잘 알려진 독립 언론 출신 유명한 언론인 모니카. 슬로바키아 의회 선거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 그녀와 슬로바키아 진보 정당의 의장 격인 마이클이 나눈 대화처럼 보이는 영상이 온라인에 떠돌았다. 이 영상이 이미 수천만 사용자들 사이에 퍼져 나간 이후 밝혀진 건, 해당 대화가 딥페이크 음성 기술을 이용해 조작된 콘텐츠라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펠로우들은 이 기사를 읽으며 이와 같은 종류의 피해가 추후 더 퍼져나갈 가능성이 크고, 신기술로 야기되는 괴롭힘에 특화된 적절한 대응 방안이 필요하겠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했다.
딥페이크 기술은 최근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해지고 있다. 전 세계 각국 정부와 공공기관들은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각종 가짜뉴스와 온라인 괴롭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상대 후보를 향한 흑색선전 등에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고 보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차원에서 아예 '딥페이크'를 이용한 선거 공보물이나 홍보 콘텐츠 제작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을 감시하고 필터링하는 속도는 기술로 인한 폐해의 확산 속도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선관위가 딥페이크 전담 모니터링 팀을 꾸리기는 했지만, 사실상 온라인에 범람하고 있는 수많은 후보들의 홍보물을 일일이 감시하기엔 사람도, 기술도 부족한 것이 현실. 언론인을 비롯한 개개인이 딥페이크 등의 신기술을 이용한 괴롭힘이나 위협의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TFGBV - Technology Facilitated Gender-Based Violence(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 TFV도 참 생소한데 여기에 알파벳이 두 개나 더 붙는 바람에 돌아서면 까먹는, 한층 더 어려운 말이 등장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이라는, 정말 입에 안 붙는 말이 탄생한다. 쉽게 설명하면 앞서 설명한 TFV 중에서도 여성, 혹은 성소수자들에 행해지는 괴롭힘이나 폭력만을 일컫는 말이다. 다트 센터는 TFV의 여러 유형 중에서도 이 TFGBV에 집중하고 있다. 왜냐? 같은 유형의 괴롭힘이라고 하더라도 대상자가 여성이거나 성소수자, 소수인종 등 이른바 '소수자'인 경우에 그 정도가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분야에 대한 교육이나 연구가 진행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2018년에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제1기 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 방지 전문 상담원 교육'을 실시했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미투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던 시기. 온라인 그루밍, 성매매, 혐오 및 차별 발언 등에 대한 전문 이론과 실무 과정을 두루 지원해 주는 교육을 실시했었다. 하지만 언론인을 상대로 한 이 같은 전문 TFGBV 전문 교육과정은 아직 많지 않다. 평범한 여성 언론인 이외에 성소수자나 소수 인종 출신 기자들이 별로 공개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이 때문에 그들이 갖는 고충도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특징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트센터는 TFV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TFV의 목적은 언론인으로 하여금 겁을 먹고, 창피함과 모욕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대중들이 비판적인 저널리즘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 자체를 저하시키고자 한다." 단순히 기자 개인에 대한 노여움과 미움의 차원을 넘어, 언론인을 향한 조직적인 괴롭힘을 통해 정부와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고유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거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멀리 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해야 할 여러 원칙들까지도 무너지도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2. 여성들이 더 많이 당한다.
온라인 괴롭힘이라니. 그런 거, 특별히 유명한 사람만 당하는 것 아닐까?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여러 형태의 괴롭힘 중에서도 GBV(Gender-based violence)는 특정인의 성별, 혹은 성적 정체성에서 기인한 폭력을 일컫는다.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히 발생하는 인권 침해의 한 형태로, 대상자의 국적이나 경제적인 상황 등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추세다. 기본적으로 GBV는 성별이나 성적 정체성에 기반한 불평등에서 출발한다.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물리적, 관념적인 '힘'의 남용과 모욕감을 주는 언어 사용 등을 통해 신체적, 성적,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모든 행위를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다트센터에서는 물리적 피해가 아니더라도 공적, 사적인 영역에서 특정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까지 GBV에 포함된다고 본다.
통상 GBV의 피해자는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개개인이 처한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배경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다만 나이가 어린 여성이나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주로 타깃이 된다. 여기에 장애가 있거나 소수인종인 경우, 트랜스젠더나 일정한 주거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는 노숙자 등이 피해를 입을 경우 그 내상이 더 크게 발생한다. 회복을 위한 각종 지원 방안을 접하기 어렵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GBV를 유발하는 요소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 한 가지로 심플하게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크게 4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특정 성별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인한 ^문화적 요인, 피해를 입은 당사자를 구제하거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법 안전망의 부족, 여성 등 특정 계층의 사람들의 삶에 불리하게 짜인 ^경제 구조, 마지막으로는 여성이나 성소수자 등의 실제 비중에 비해 과소대표된 ^정치적인 상황 등이 있다.
사실 거창하게 'GBV'라는 어려운 단어로 정의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성적 정체성 혹은 성별을 이유로 겪는 부당한 온, 오프라인 폭력은 너무나 흔한 일. 법적 안전망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고, 젠더 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비교적 발달해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주변 여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다트센터에선 어림잡아 전 세계 여성의 1/3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GBV를 당한 적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여러 요인들로 인해 특정 사회 환경에서는 이 같은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것조차 개개인에게 부메랑처럼 리스크가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되돌아보면 한국 사회 역시 성폭행 및 성추행 사실을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미투(Me Too)'운동 바람이 불기 전까지는 피해 사실을 다른 사람 앞에 꺼내놓는 것 자체가 부담인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20년, 세계은행(World Bank) 역시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전 세계에서 최소 155개국이 GBV 대응 관련 법 체계를 만들어놨고, 이 중 140개국은 이 중에서도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을 포함, 업무 환경 안에서 발생하는 성폭력과 관련된 법 제도를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트 센터는 이 같은 수치는 여전히 GBV 근절을 위해 턱없이 부족한 수치라고 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가능할지 몰라도,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예방' 차원에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역시 언론인들 위주의 비영리단체인 '국제 언론인 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Journalists-ICFJ)'와 함께 지난 2021년에 보고서를 냈다. 215개국에서 활동하는 여성 언론인 7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업무를 하는 도중 온라인 공격이나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3. 괴롭힘, 어떻게 개인을 옥죄는가?
모든 종류의 괴롭힘이나 피해는 각 나라의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반영해 조금씩 그 형태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발생 형태'를 단편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트 센터에서는 대부분의 GBV는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한 젊은 여성, 그중에서도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하거나 스스로를 대중 앞에 드러내고 활동하는 여성들에게서 더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언론인, 사회활동가, 정치인, 예술가 등등이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악플' 피해자가 대부분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또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피해자는 가해자의 신상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GBV, 그중에서도 언론인을 향한 피해는 특정 집단의 정치적 목적을 대변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개개인을 괴롭히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언론인으로서 갖는 신뢰도나 평판을 깎아내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국 이 같은 행위를 통해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 언론인이 침묵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최근 언론인들의 업무 환경과 페이스북, X(구 트위터), 유튜브 등의 SNS 서비스는 떼려야 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기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수단이므로 굉장한 장점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각 개인 차원에서는 더 큰 위험에 손쉽게 노출될 가능성을 키웠다는 점에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큰 틀에서 TFV는 가해자와 피해자 유형에 따라 아래와 같이 크게 3가지로 나눈다.
1) 단일 가해자가 지속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Abuse from one user): 한 명의 가해자가 특정 기사들을 지속적으로 깎아내려 신뢰도를 저하시키는 행위, 여러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협박을 가하는 행위.
2) 여러 가해자가 한 명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경우 (Pile ons): 여러 명의 가해자들이 조직적으로 특정 기자 개인을 타겟팅해 괴롭힘을 하는 행위.
3) 개인정보 해킹 (Doxing): 핸드폰 번호, 집주소, 이메일 등 특정 기자 개인의 정보를 합의 없이 온라인 공간에 게재하는 행위
<자주 발생하는 GBV의 5가지 사례>
-신체적(Physical) 폭력: 스토킹을 하거나 피해자의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행위
-심리적(Psychological) 폭력: 피해자가 원치 않는 지속적인 메시지를 보내거나 집착하는 행위
-사회/정치적(Social/Political) 폭력: 피해자의 SNS 등 계정을 해킹하고, 사회적 평판 등을 해할 목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올리는 행위
-성적(Sexual) 폭력: 피해자가 원치 않는 외설적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보내는 행위
-경제적(Economic) 폭력: 은행 계좌 해킹 등 금전적인 피해를 일으키는 행위
TFGBV는 유엔 인권 이사회 차원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유엔은 오프라인에서 공격받지 않을 권리가 온라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가지고 있다. 또한 단순히 '공격받지 않을 권리'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를 보호받는 환경에서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본다.
마리아 레사의 X 페이지 (https://twitter.com/mariaressa)
필리핀계 미국인 언론인인 마리아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CNN에서 일하면서 인도네시아 폭동, 동티모르 사태, 필리핀 대사 관저 폭발 등 주요 사건을 다루는 아시아 지역 전문 기자로 일했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설립한 뉴스매체 '래플러(Rappler)'를 만들었는데, 이 매체는 두테르테 대통령 집권 이후 정권의 실태를 알리는 비판적인 보도를 계속해왔다. 또한 독재 정권 하에서 퍼진 SNS발 가짜뉴스와 언론 탄압 등에 대해서도 꾸준히 알려 왔다. 마리아는 이처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런 그녀 역시 GBV의 피해자였다. 마리아는 그녀 자신 역시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하면서 온라인 공격과 실제적인 위협을 받았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공격을 받더라도 응답하지 않고 방관하는 건 좋지 않다고 봤다. "그냥 내버려 둬"와 같은 소극적인 대응이 지속되면 우리의 미디어 환경이 점차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타인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혀도 되는 곳으로 변하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 GBV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예방책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TF는 각 펠로우 기자들이 나라별로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는 괴롭힘 사례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최근 대통령실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이 식사 도중 MBC 기자에게 했다가 논란이 된 사례를 공유했다. 지난 3월 14일, 황 전 수석은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MBC 기자를 향해 "잘 들어"라며 1988년 정보사 군인들이 오홍근 기자에게 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힌 사건을 언급했다. 물론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이른바 '회칼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사건은 발생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권력자가 과거의 언론인 탄압 사례를 개별 기자 앞에서 언급하며 '조심하라'는 취지로 발언하는 것만으로도 언론인에 대한 침묵 강요이자 겁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대다수 참석자들이 (한국 기자들이 아니었는데도) 공감해 주었다.
4. 인도의 여성 언론인, Srishti의 이야기
스리슈티 트위터 캡처 (https://twitter.com/seekingsrishti)
한 번은 TF 모임에 특별한 게스트 스피커가 함께했다. 인도 출신 여성 언론인 스리슈티 자스왈(Shrishti Jaswal)이 연사로 나서 자신의 온라인 괴롭힘 경험을 직접 들려준 것이다. 스리슈티는 인도 출신이지만 뉴욕, 파리, 베를린 등에서도 일한 경력이 있고, 현재는 독립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와 기술, 인권, 거버넌스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보도를 하면서 저명한 상을 많이 받았고, 퓰리처센터의 후원도 받았다.
스리슈티 트위터 캡처 (https://twitter.com/seekingsrishti)
스리슈티는 다트센터뿐만 아니라, 국제 언론인 센터(ICFJ)에서도 펠로우로 활동하고 있다. 인도의 기아 등 각종 사회문제를 많이 알려왔는데, 그녀의 트위터 계정을 보면 직접 본인이 했던 보도 내용을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스리슈티는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인 영화와 관련된 트위터 게시글을 올렸다. 당시 넷플릭스는 소위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인도 내에서 여러 비판을 받았던 영화 'Krishna & His Leela'라는 영화를 서비스했다. 크리슈나(Krishna)는 힌두교에서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남성 신 중 하나인데,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이름이 '크리슈나'였고, 그는여러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스리슈티는 이 작품이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에 반박하면서,크리슈나는 사실 바람둥이가 맞다고 했다. 뭐 우리로 따지면 "예수님은 사실 바람둥이야!"라고 적은 셈. 스리슈티의 이 트위터 글은 급속도로 온라인상에서 퍼졌고, 그녀를 향한 험악한 비판과 욕설, 심지어는 살해 협박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인도 언론사 'Hindustan Times'에 재직 중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해당 언론사, 심지어는 인도 경찰에까지 그녀에 대한 불만과 항의를 쏟아냈다.
문제가 된 스리슈티의 당시 트위터 / 영화 'Krishna & His Leela' 캡쳐본 (https://www.rottentomatoes.com)
하지만 Hindustan Times는 스리슈티를 보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논란이 퍼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스리슈티를 해고했다. 괴롭힘을 당하는 직원을 보호하기는커녕, 비판 여론을 의식해 해고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표현의 자유가 극히 제한되어 있는 폐쇄적인 인도의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Hindustan Times가 스리슈티를 해고했음을 알린 게시글 (https://twitter.com/HindustanTimes)
스리슈티는 회사의 이런 황당한 결정에도 굴하지 않았다. 해고된 이후에도 활발하게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보도를 해 왔으며, 인도 내의 불합리한 사회 문제들을 꾸준히 고발했다. 스리슈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전에 유튜브에서 우연히 봤던 한 영상이 떠올랐다. 인도의 배우 '말리카 쉐라왓'이 기자회견장에서 질문을 던진 기자와 옥신각신 말싸움을 하는 장면. 그녀는 스리슈티처럼 인도 내의 불합리한 관행과 여성 낙태, 여아 살인 같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리는 스피커 역할을 했는데, 이 같은 질문에 대해 기자가 "국격을 낮춘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말리카 쉐라왓은 "나는 인도의 현실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는다"며 당당하게 맞섰고, 이 모습이 온라인상에서 꽤 많이 바이럴이 됐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멋지고 당당한 여성 활동가들과 언론인이 많지만, 새삼 이들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사회 문화적 환경은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아주 다르다. 우리 언론인들도 욕설이 담긴 이메일을 보며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지만, 인도의 언론인들은 말 그대로 살해 협박 등 목숨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아직까지도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침묵하지 않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대중 앞에 꺼내놓는 이들의 용기가 참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