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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빈 Mar 12. 2024

세상에 괜찮은 악플은 없다 - 2부

제대로 알아야 대응도 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이든 소위 '대응 방법'을 찾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먼저 그 대상에 대해 잘 아는 게 중요하다. 틀린 말씀 하나 하지 않는 옛 어른들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나. 특히 디지털 환경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온라인 환경에서 특정인을 상대로 발생하는 괴롭힘은 최근 그 종류와 정도가 정말 다양해졌다. 우리는 먼저 온라인 괴롭힘이라는 것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또 최근 상용화되기 시작한 일부 기술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이른바 신상(?) 괴롭힘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톺아보았다.


1.  TFV, 무슨 뜻인데?


<TFV - Technology Facilitated Violence(기술 매개 폭력)>

'별 걸 다 줄인다'까지 줄여서 '별다줄'이라고 부르는 줄임말의 홍수들 틈에서도 'TFV'라는 용어는 너무나 생소했다. 'Technology Facilitated Violence'의 앞글자만 따온 것인데 이것 참 한국어로 쓰기도 쉽지 않은 까다로운 용어다. ^^; 기존에 발표됐던 다른 논문들을 찾아보니 '기술 매개 폭력' 정도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분야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난 이번 다트 센터 교육을 통해 처음으로 TFV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TFV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개인에게 가해지는 일종의 폭력 행위로, 디지털 미디어나 정보 처리 또는 온라인상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발생했거나, 그 정도와 범위가 증폭된 경우를 가리킨다. 인터넷 기술과 소셜미디어의 발전은 이와 같은 TFV의 발생 빈도와 정도, 범위 자체를 크게 확장시켰다. 특히 최근엔 괴롭힘의 영역이 지극히 사적인 '개인'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양상을 띠고 있어 우려를 더하고 있는 상황. 그도 그럴 것이, 마음만 먹으면 고도화된 기술을 동원해 개인의 침실과 휴대폰을 해킹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생활을 누구보다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준 GPS, 사물인터넷, AI 기술 등이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2월 세션에 참가했던 펠로우 중 한 명은 국제언론인협회(International Press Institute)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아래 기사를 공유했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가짜뉴스로 피해를 입은 슬로바키아 언론인 사례가 담겨 있었다.

(기사 원문: https://ipi.media/slovakia-deepfake-audio-of-dennik-n-journalist-offers-worrying-example-of-ai-abuse/)


슬로바키아에서 잘 알려진 독립 언론 출신 유명한 언론인 모니카. 슬로바키아 의회 선거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 그녀와 슬로바키아 진보 정당의 의장 격인 마이클이 나눈 대화처럼 보이는 영상이 온라인에 떠돌았다. 이 영상이 이미 수천만 사용자들 사이에 퍼져 나간 이후 밝혀진 건, 해당 대화가 딥페이크 음성 기술을 이용해 조작된 콘텐츠라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펠로우들은 이 기사를 읽으며 이와 같은 종류의 피해가 추후 더 퍼져나갈 가능성이 크고, 신기술로 야기되는 괴롭힘에 특화된 적절한 대응 방안이 필요하겠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했다.


딥페이크 기술은 최근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해지고 있다. 전 세계 각국 정부와 공공기관들은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각종 가짜뉴스와 온라인 괴롭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상대 후보를 향한 흑색선전 등에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고 보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차원에서 아예 '딥페이크'를 이용한 선거 공보물이나 홍보 콘텐츠 제작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을 감시하고 필터링하는 속도는 기술로 인한 폐해의 확산 속도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선관위가 딥페이크 전담 모니터링 팀을 꾸리기는 했지만, 사실상 온라인에 범람하고 있는 수많은 후보들의 홍보물을 일일이 감시하기엔 사람도, 기술도 부족한 것이 현실. 언론인을 비롯한 개개인이 딥페이크 등의 신기술을 이용한 괴롭힘이나 위협의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TFGBV - Technology Facilitated Gender-Based Violence(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

TFV도 참 생소한데 여기에 알파벳이 두 개나 더 붙는 바람에 돌아서면 까먹는, 한층 더 어려운 말이 등장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이라는, 정말 입에 안 붙는 말이 탄생한다. 쉽게 설명하면 앞서 설명한 TFV 중에서도 여성, 혹은 성소수자들에 행해지는 괴롭힘이나 폭력만을 일컫는 말이다. 다트 센터는 TFV의 여러 유형 중에서도 이 TFGBV에 집중하고 있다. 왜냐? 같은 유형의 괴롭힘이라고 하더라도 대상자가 여성이거나 성소수자, 소수인종 등 이른바 '소수자'인 경우에 그 정도가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분야에 대한 교육이나 연구가 진행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2018년에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제1기 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 방지 전문 상담원 교육'을 실시했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미투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던 시기. 온라인 그루밍, 성매매, 혐오 및 차별 발언 등에 대한 전문 이론과 실무 과정을 두루 지원해 주는 교육을 실시했었다. 하지만 언론인을 상대로 한 이 같은 전문 TFGBV 전문 교육과정은 아직 많지 않다. 평범한 여성 언론인 이외에 성소수자나 소수 인종 출신 기자들이 별로 공개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이 때문에 그들이 갖는 고충도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특징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TFGBV에 대해선 3부에서 보다 자세히 다룬다.




2.  TFV, 왜 제대로 알아야 하나?


<언론인을 향한 TFV의 궁극적인 목적은 '침묵'>

다트센터는 TFV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TFV의 목적은 언론인으로 하여금 겁을 먹고, 창피함과 모욕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대중들이 비판적인 저널리즘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 자체를 저하시키고자 한다." 단순히 기자 개인에 대한 노여움과 미움의 차원을 넘어, 언론인을 향한 조직적인 괴롭힘을 통해 정부와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고유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거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멀리 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해야 할 여러 원칙들까지도 무너지도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TFV의 4가지 유형>

TFV의 구체적인 양상에 대해선 추후 세션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겠지만, 큰 틀에서 TFV는 가해자와 피해자 유형에 따라 아래와 같이 크게 3가지로 나눈다.


1) 단일 가해자가 지속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Abuse from one user): 한 명의 가해자가 특정 기사들을 지속적으로 깎아내려 신뢰도를 저하시키는 행위, 여러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협박을 가하는 행위.

2) 여러 가해자가 한 명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경우 (Pile ons): 여러 명의 가해자들이 조직적으로 특정 기자 개인을 타겟팅해 괴롭힘을 하는 행위.

3) 개인정보 해킹 (Doxing): 핸드폰 번호, 집주소, 이메일 등 특정 기자 개인의 정보를 합의 없이 온라인 공간에 게재하는 행위




3. 내가 TFV의 피해자가 되었다면?

1부에서도 잠깐 언급했었는데, 이 프로젝트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언론인을 향한 공격'에 있지만, 여기서 다루는 내용들은 직업과 상관없이 누구나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기술이 발전한 만큼 자신의 존재를 개인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온라인 공간에 조금이라도 드러내 놓았다면 누구라도 보다 손쉽게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트 센터에서는 만약 TFV를 당하게 된다면 아래와 같은 내용을 숙지할 것을 당부했다.


<셀프 체크 문항 4가지를 기억하세요!>

아래 4가지 문항에 스스로 답 해보면서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내가 처한 환경이 어떤지 명확하게 알아야 관련 도움을 더 신속하게 요청하고, 적절한 처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나는 협박이나 괴롭힘을 가하고 있는 가해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시 그들이 현재 나에게 가하고 있는 폭력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같은 행위를 하고 있거나, 이전도 비슷한 행위를 했던 적이 있지는 않은가?

2) 나에게 가해지는 위협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가? 위협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발생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3) 가해자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그들이 나의 실제 이름이나 이메일, 핸드폰번호 등의 개인 정보를 알고 있지 않은가?

4) 가해자의 폭력 행위가 방법과 수단을 바꿔가며 발생하거나, 물리적인 위협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가? 음성 메시지, 혹은 우편물이나 택배 상자 등이 나의 일터나 집으로 온 적이 있는가?


<TFV 대응의 첫걸음>

TFV의 피해자가 되었다면 물론 즉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지만, 평상시에도 아래와 같은 사항에 대해 숙지해 놓을 필요가 있다.


1) 기록하기: 온라인상에서 내가 당한 괴롭힘은 추후 그 자체로 중요한 증거가 된다. 악성 댓글이나 이메일, 음성 메일 등의 자료는 모두 백업해 둔다. 소셜미디어상에 나를 모욕하는 글이나 그림이 올라와 있다면 링크를 복사해 두고, 추후 삭제될 경우를 대비해 스크린샷도 저장해 두는 것이 좋다.

2) 나의 안전 상태 평가하기: 내가 물리적으로 안전한 상태인지를 돌아본다. 만약 내가 스스로 '위험하다'라고 느낀다면, 그건 실제로 내가 위험한 것이 맞다. 스스로의 안전에 관해서만큼은 내 본능을 믿자.

3) 나를 도울 수 있는 주변 사람들 기억해 두기: 내가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린다. 친구나 가족, 직장 동료 등 누구든 내 위험에 대해 알리고, 동료 지원(Peer-support) 등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나의 친한 동료와 가족들도 위험한 순간엔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동료 지원(Peer-support)'을 통해 잘 이루어질 수 있다. 동료 지원과 관련해서는 두 달 전에 발행한 2부작 '너는 나를 돕고, 나는 너를 돕는다'에 자세히 적어 두었다. (깨알 홍보)


P.S. 과거의 내가 한 약속을 현재의 내가 고통스럽게 지켜가는 이 시리즈물의 연재가 참 쉽지 않다...^^ 영어로 진행되는 세션 자체가 내게는 참 어렵고 버거운 일인데 그걸 우리말로 쓰려니 더욱더 고역이다. 언어의 장벽, 그리고 귀찮음과 미루고 싶은 마음의 거대한 장벽을 부수는 이 고독한 여정을 스스로 응원해 본다. 그냥 그렇다고요.... 나 화이팅...........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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