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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빈 May 13. 2024

세상에 괜찮은 악플은 없다 - 4부

디지털, 퓰리처상에서 레거시 미디어를 위협하다

5월 6일, 2024년 기준 108번째를 맞는 퓰리처상 수상작이 발표됐다. 퓰리처상은 언론, 문학,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여된다. 이 중에서도 저널리즘 분야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다. 매년 엄격한 심사를 통해 발표하는데 그 해 수상작과 최종 심사단계까지 올라온 결선작들을 보면 최근 저널리즘의 경향성과 함께 소위 '좋은 저널리즘'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도 대략 알 수 있다. 올해 수상작 및 후보작들의 특징은 바로 역대 퓰리처상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온라인 매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1. 레거시 미디어 vs 온라인 미디어

https://youtu.be/1k3v4rB1BhY

퓰리쳐상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올해 수상작 및 결선작뿐만 아니라 지난 년도 심사 결과들도 모두 볼 수 있다. 저널리즘은 총 15개 세부 분야로 나뉘어 있다. 공공서비스, 단독보도, 탐사보도, 지역뉴스, 국제뉴스, 내러티브 기사 등 통상 '저널리즘'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부터 논평, 만평,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각 분야별로 1개의 수상작과 최종 결선에 오른 후보작이 2개씩 공개된다. 퓰리쳐상이 발표되면 미국 내 여러 언론이 그 해의 수상작들을 분석한다. 일부 언론은 올해 최종 수상작 및 후보작에 이름을 올린 매체들을 유형에 따라 구분해서 분석 기사를 냈다.


-지면을 발행하는 신문: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8개

-통신사: 블룸버그, 로이터 등 4개

-매거진: 뉴요커 등 3개

-TV 채널: NBC 뉴스 등 3개

-라디오: 뉴햄프셔 공공 라디오 1개

-온라인 뉴스: 프로퍼블리카(ProPublica), Lookout Santa Cruz 등 총 12개


  분석 결과, 통상 우리가 '언론'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통신사나 지면을 발행하는 신문, 전파를 가지고 있는 방송국이나 라디오가 아닌, 온라인 뉴스사가 가장 많았다! 그만큼 뉴스를 만들고, 유통하는 플랫폼이 이제 시간과 장소, 형태를 구애받지 않는 무한한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뜻. 이 같은 경향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예견되어 온 일이었지만 올해 특별히 두드러졌다. 2023년의 경우 신문사 13개, 잡지사 3개, 통신사 2개, 라디오 1개, 온라인 뉴스 4개 사가 이름을 올렸다. 2022년에도 역시 신문사 17개, 라디오 3개, 잡지사 2개, 통신사 2개, TV 채널 1개, 온라인 뉴스는 5개였다. 즉 온라인 언론사가 아무리 많아도 지면을 발행하는 정통 언론인 신문을 뛰어넘진 못했었는데 이번에 그 공식이 깨진 거다.

  현직 기자들에게도 이런 트렌드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일례로 출입처에서 특별한 단독 팩트를 발굴하면 예전에는 "저녁 메인 뉴스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쓰자"는 판단을 내렸는데, 요즘은 그냥 해당 사실이 파악되는 즉시 온라인 뉴스로 제작해 출고한다. 한 때 보도국에서 가장 그 가치가 높았던 '저녁 뉴스'는 낮에 소화했던 여러 온라인 뉴스 중 어젠다세팅 과정을 다시 한번 거친 뒤 영상으로 제작한 하나의 프로그램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신문도 마찬가지. 더 이상 기자들의 취재 일정은 활자를 찍어내는 윤전기 스케줄에 맞춰 돌아가지 않는다.

  이처럼 온라인 뉴스 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언론인과 디지털 환경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 당연한 수순. 페이스북이나 X(구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는 이제 취재 과정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었으며 기자들 중 상당수가 네이버 등 포털 기자 페이지를 스스로 재구성하거나 개인 유튜브 채널 등을 개설해 개인 PR 혹은 시청자들과의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다트센터에서는 이처럼 온라인 환경과 가까워질수록, 디지털 기술의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관련 괴롭힘의 위험성도 더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2. 디지털 방탄재킷, 그럼 더더욱 중요하겠네!


다트센터 소속으로, 언론인을 향한 온라인 괴롭힘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온 아만다 페라라. 그는 괴롭힘을 당했을 때 일차적으로 참고해 볼 수 있을 만한 일종의 지침서를 만들었다. 이름하야 '디지털 방탄재킷'. (꽤 귀여운 이름이닷 흐흐) 난 2023년 호주 연수 때 처음으로 접했다. 일단 관련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쓴 기사(혹은 콘텐츠)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잘 지켰는지, 윤리적인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아래와 같은 3가지 단계를 거치면 된다고 했다.


(1) 위험 식별 단계: 내가 마주하고 있는 것이 어떤 종류의 위협인지 인지한다. 괴롭힘이 언제, 어디서, 왜, 그리고 얼마나 자주 발생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막연하게 육하원칙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으로 괴롭힘이 업무용 휴대전화를 통해서만 발생하는지, 개인 휴대전화를 통해서도 발생하는지, 퇴근 이후에도 지속해서 괴롭힘에 시달리는지 등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2) 완화 단계: 앞선 단계에서 식별한 위협 및 괴롭힘의 특징별로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격이 들어온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른 소셜미디어 계정에 개인 정보가 노출되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그런 경우가 있다면 비공개 처리하라고 했다. 만약 업무용이 아닌 개인 휴대전화를 통해 공격이 지속된다면 번호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 또한 공격과 괴롭힘의 특징을 고려할 때 추가 보도를 했을 경우 그 정도가 심해질지에 대해서도 판단해야 한다.


(3) 예방 단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적절한 개입과 처치가 필요하다. 괴롭힘의 사례를 취합하고 증거를 모아 회사와 관계 기관에 알린다. 또한 디지털 괴롭힘이 ‘기자’라는 직책에 쏟아지는 것뿐, ‘개인’을 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지한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할 때에는 계정이 쉽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변 지인들에게 개인적인 게시글에 ‘태그’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호주 연수 당시 아만다는 이 같은 세 가지 단계를 소개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디지털 기기와의 ‘거리두기’라고 재차 강조했었다. 디지털 괴롭힘은 대부분 휴대전화나 태블릿, 노트북 등의 기기를 통해 기자 개인들에게 도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언론인들, 특히 한국 기자들은 업무와 업무 외적인 삶을 분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당장 나의 카카오톡엔 몇 군데 출입처를 거치며 추가한 친구인지 취재원인지 모를 이들의 프로필 개수가 4천 명을 넘은 지 오래고, 수백 개 채팅방 중 업무와 관련 없는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아만다는 업무 중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퇴근하면 되도록 휴대전화를 많이 보지 않도록 알림을 꺼 놓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저기에 어떤 채팅방들이 있는지는 일급비밀이다.

  최근 카카오톡이 이 같은 직장인(특히 기자들)들의 고난을 덜어주기 위해서인지... '조용한 채팅방'이라는 기능을 만들었다. 업무 시간이 아닐 경우 특정 채팅방은 아예 푸시 알람이 울리지 않도록 하는 거다. 나는 지금도 유용하게 이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 업무를 하지 않는 날에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카톡방을 '조용한 채팅방'으로 모아놨더니 휴일을 좀 더 여유롭게 즐기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홧김에 우리 부서 단체 카톡방이나 특정 선배와의 1:1 채팅방을 여기에 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속닥속닥~)




3. 본격적인 '팁시트' 개발의 시작


  이날 온라인 모임에선 디지털 방탄재킷에 대한 짧은 강의를 들은 뒤 앞으로 본격적인 '팁시트' 개발 작업에 들어갈 거라는 공지가 있었다. 회의를 진행한 아만다는 참가자들에게 팁시트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면 좋을지 자유롭게 의견을 달라고 했다. 몇몇 기자들은 각자 경험에 비추어 "나를 향한 공격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주거나 감정적으로 복수하려고 하서는 안된다" 등의 의견을 냈다. 이후 얼마간 언론인을 향한 온라인 공격에 법적 대응을 하는 것에 대한 토의가 이어졌다.


<언론인을 향한 온라인 공격, 법적 대응을 해야 할까?>

  지난 3부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전 세계 주요 국가들에선 이미 언론인을 디지털 및 온라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법적인 절차라는 건 사실 상당히 번거롭고, 또 매우 길고 지난한 과정이다. 우리나라 역시 다르지 않다. 따라서 모든 온라인 괴롭힘에 법적인 절차를 검토하는 것은 때로는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스리랑카 기자 출신이기도 한 아만다는 스리랑카 현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미디어 로 포럼'이라는 조직을 소개했다. 미디어 로 포럼은 현직 언론인, 법률가, 사회 활동가 등이 함께 모여 만든 단체로,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등 가치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했다.

https://www.medialawforum.org/

  아만다의 설명을 듣고 나서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니, 언론인을 향한 다양한 공격, 그리고 그에 따른 법적 대응의 절차 등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었다. 누구나 접촉 가능한 핫라인 번호도 공개되어 있었다.

https://www.medialawforum.org/

  우리나라 역시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이나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등에서 관련 도움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특정 기자에 대한 공격에 대한 대응은 개별 회사가, 때로는 기자 개인이 혼자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스리랑카의 '미디어 로 포럼'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부분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비슷한 방식으로 시행하자고 건의하거나, 아예 일부 절차를 차용해 팁시트에 포함시키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지 - 완화 - 예방의 3단계 큰 틀에서 시작!>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할 '팁 시트'는 앞에서 소개한 '디지털 방탄재킷'과 큰 틀에서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 골자는 괴롭힘에 대한 인지, 괴롭힘 완화 방법, 재발 방지 대책의 3단계로 나뉜다. 다트센터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매체와 독립 언론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팁 시트 역시 기자들의 고용 형태나 업무 환경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누자고 제안했다. 팁 시트 관련 논의는 추후에 보다 자세히 이어갈 예정이다.

https://twitter.com/DartAsiaPacific

P.S. 그저 '권위 있는 상'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퓰리처상. 부끄럽게도 이번에 처음으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여러 수상작들을 하나하나 읽어봤다. 하나의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기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들인 노력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올해 수상작 중 특히 눈에 띄었던 것들을 몇 개 공유하고자 한다.


https://www.propublica.org/article/clarence-thomas-scotus-undisclosed-luxury-travel-gifts-crow

 비영리 온라인 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에서 보도한 주요 법조인들의 접대 의혹 관련 연속 보도. 접속하는 순간 독특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룩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내용도 엄청 탄탄하다.


https://www.pulitzer.org/winners/photography-staff-reuters-3

 하마스의 공격으로 처참해진 가자지구 곳곳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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