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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빈 Sep 13. 2024

세상에 괜찮은 악플은 없다 - 오답노트

내가 피의자가 됐다.

#1


  고소장을 받았다. 두 달 전, 여느 때처럼 출근했는데 회사 행정팀에서 전화가 왔다. "기자님 앞으로 고소장이 접수됐는데, 혹시 알고 계시냐"는 . 지난 몇 달간 쓴 기사들이 머릿속에 주르륵 스쳐 지나갔다. 문제가 될 만한 예민하고 민감한 기사가 있었나? 사실 그즈음 내 기사들은 22대 총선 관련 내용으로, 건조한 팩트 위주의 스트레이트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행정팀에선 나를 비롯한 편집기자 등 2명이 함께 고소를 당했으니 내용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사건 담당 경찰이 피고발인들 중 취재기자인 내게 먼저 연락을 하려고 업무용 이메일로 조사에 필요한 일부 개인 정보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내가 답을 하지 않아 회사로 연락을 했던 거였다. 문제가 된 기사는 이거였다.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72071

  고소인은 기사에 언급된 총선 출마자였다. 뒤늦게 내 메일함을 뒤져보니 각종 보도자료 홍수 틈에 묻혀버린 경찰의 안내 메일을 찾을 수 있었다. 담당 경찰 연락처와 함께 내 개인 연락처 등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고소인인 박진재 전 후보는 나를 포함한 JTBC 기자들이 총선에서 자신을 떨어뜨릴 목적으로 악의적인 보도를 해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가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이 같은 내용은 대부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했다.) 경찰은 피의자인 나와 JTBC 기자들을 소환 조사하는 대신 서면으로 답변서를 받겠다고 했다. 간단한 질문 가지에 대해 답변서 주사건을 처리하겠다고 했다.


  경찰이 물은 내용은 크게 3가지다. ^관련 보도를 하게 된 경위, ^관련 보도에 앞서 수집한 사실관계, ^보도를 한 목적. 나는 이 보도를 할 당시 당사자인 박 후보와 직접 통화했다. 박 후보 생각을 물었고, 그의 동의를 구해 녹음한 내용 일부를 기사에 직접 인용했다. 보도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한 것이다. 이후 부서 선배들, 그리고 사내 법무팀과 상의해 답변서를 작성해서 경찰에 보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지나자 우편으로 사건 처리 결과가 도착했다.



 고소인인 후보 주장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건은 최종적으로 검찰에 송치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사실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연락을 처음 받았을 때부터 좋지 않은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박 후보 동영상은 JTBC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수차례 보도한 건이었다. 박 후보는 나를 포함해 이 내용을 보도한 기자 여러 명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한 것 같았다. 이런 법적 조치는 목적이 명확하다. 자신을 향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기사를  기자들을 골탕 먹이고 당황시키려는 일종의 '괴롭힘'인 셈이다. 때때로 이런 사건은 고소인이 자신의 SNS 등을 동원해 고소장 접수 사실을 알리고, 해당 기자를 망신주는 등 온라인 괴롭힘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다행히 내 사건은 그런 일 없이 마무리됐다. 이 모든 내용을 알았지만, 그래도 내가 '피의자'로 적시된 수사기관 자료를 직접 보는 기분은 절대 유쾌하지 다.



  대단한 일인 양 적어놨지만, 사실 기자들이 이런 고소장을 받는 일은 매우 흔하다. 특히 누군가의 잘못을 꼬집는 기사라든지,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반발할만한 내용을 보도할수록 이런 일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보도에 문제가 없다면 나의 사례처럼 별 탈 없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 하지만 '별일 없이 끝날 거야'라는 생각이 "고소당하셨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그 이후 불쾌함을 상쇄해 주지는 않는다. 고소인 측의 비난에 가까운 일방적인 주장을 듣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2


  벌써 5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그런데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당시 제주도의 한 애견호텔에 반려견을 맡긴 사람의 제보를 바탕으로 기사를 썼다. 제보자 인터뷰와 CCTV 영상, 기사에 언급된 애견호텔 운영자 해명을 바탕으로 보도했다.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1803996

  문제는 보도 이후 오래지 않아 시작됐다. 기사에 언급된 호텔 주인이 개인적인 연락을 계속해왔다. 요지는 자신이 1시간 넘게 설명한 내용 전부가 기사에 반영되어 있지 않으며, 해당 보도로 장사를 접었으니 피해를 보상하라는 다. 처음 몇 번은 일단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 길이에 제한이 있어 모든 주장을 그대로 싣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항의는 멈추지 않았고, 정도도 점점 심해졌다. 나중엔 본인이 원래 정신 질환이 있어서 치료차 애견호텔을 운영 중이었는데, 보도 이후 모든 것이 망했다며 자살을 하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2년 차 기자였던 나는 매우 당황했다.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단순 항의였던 연락에 점차 험악한 내용이 섞이기 시작했다. 차분히 답변을 정리해서 보내던 나는 약이 오르화가 나는 마음에 모든 연락을 차단했고, 몇 번은 감정이 일부 섞인 답변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 왓츠앱, 라인, 텔레그램 등 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SNS 수단을 활용해 협박과 욕설이 이어졌다. 자신이 운영하는 개인 SNS 계정에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캡처해서 올리고는 각종 해시태그를 달았다. #jtbc #하혜빈기자 #기레기 등 총천연색의 욕설이 따라붙었다. JTBC 제보 연락처로도 수없이 항의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항의는 기사 내용과는 상관이 없는, 나에 대한 개인적인 비난과 조롱, 자살 협박으로 가득해졌다.



  당시 그가 보낸 모든 개인 메시지와 SNS 게시글을 캡처해 놨고, 지금까지 보관 중이다. (증거는 항상 그때그때 저장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가해자 역시 각종 괴롭힘이 담긴 게시글을 올렸다 내렸다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등 비이성적인 행위를 계속했다.) 모든 SNS를 동원해 이어가던 협박이 통하지 않자, 그는 전화번호를 이용해 연락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던 번호를 차단하면, 그다음에 번호를 받아서 연락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내가 차단한 그의 번호는 지금까지 모두 7개다.


  더 이상 혼자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해, 회사에 보고하고 가능한 대응 방안을 고민했다. 그간 당한 협박을 생각하면 당장 신고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 보도 직후 몇 달간 극심했던 협박은 시간이 지나며 적어도 그 빈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었고, 내 개인 연락처 이외에 집주소 등 개인 정보까지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거나 집 우편으로 무언가 보낸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JTBC 사옥 주소가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는 점 등은 마음에 걸렸다.


  한 번은 회사 선배가 나를 대신해 그의 연락을 받아주었다. 성인 남성이 대응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예상대로 그의 비이성적인 주장과 조롱 등은 상당 기간 잦아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자신이 입수한 비밀 정보를 보도해 주면 특별히 용서해 주겠다는 등,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왔다. 나를 대신해 전화를 받아 준 선배는 얼마간 그와 소통을 이어갔지만,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돌변해 성인 남성인 선배에게도 괴롭힘을 이어갔다. 선배의 가족까지 해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이 정도 괴롭힘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경찰에 신고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조치는 취하지 못했다. 법적 조치가 오히려 당사자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어서였다. 이렇게 망설이는 사이 5년이 지났다. 그간 그의 협박은 잦아들었다가도 몇 달에 한 번씩 뜸뜸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한동안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 전,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문자 메시지가 왔다. 2년 만에 되돌아온 협박이었다.


차례로 2019년, 2024년 문자 메시지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오랜만에 만 2년 만에 받은 이 연락이 꽤나 무섭고 두려웠다. 뉴스만 켜면 흉악한 범죄가 줄지어 보도되는데. 각종 끔찍한 상상이 따라붙었다. 회사에 다시 보고했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회사에선 내가 원한다면 행정팀 차원에서 그에게 연락해 경고하겠다고 알려왔다. 다만 가해자가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데다가, 이번 협박 역시 2024년 5월에 두 차례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 이외에 다른 형태의 괴롭힘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 또다시 마음에 걸렸다.


  결국 이번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무시해 보기로 했다. 다만 다음번에 유사한 일이 또 발생하면 회사에서 직접 연락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법적 조치까지 검토하기로 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증거 자료는 계속해서 저장해 둘 생각이다.




#3


  이렇게 길고 자세하게 개인적인 괴롭힘 경험을 풀어놓은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을 당했는지 이야기하고 싶어서가 절대 아니다. 일종의 오답노트처럼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다. 사실 이런 괴롭힘은 많은 기자들이 매일같이 겪는 일이고, 이보다 더 극심하고 실제적인 위협을 겪는 동료들도 많을 것이다. 당장 최근 문제가 됐던 딥페이크 사건도 마찬가지다. 해당 보도를 한 여기자들은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범죄의 타깃이 됐다. 동료 기자들이 텔레그램 카톡방에서 저급한 희롱의 대상자가 됐다는 사실에 너무나 화가 났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964209?sid=102


  아무리 흔한 일이라고 해도, 원색적인 비난이 섞인 욕설과 모욕을 듣거나 기자로서 내 평판에 해가 될 것 같은 공격을 당하면 일단 당황스럽고 놀랄 수밖에 없다. 사람인지라 나를 공격하는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분노, 억울함도 치밀어 오른다. 다만 그럴 때 이런 마음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위에 적은 애견호텔 주인과의 사건 당시, 2년 차 기자였던 나는 처음 얼마  가해자 연락에 차분하게 답변하면서 그를 달랬다. 하지만 협박이 계속되자 당황함은 분노가 됐고, 그런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일부 문자메시지에 그대로 드러냈다. 그가 '당장 죽어버리겠다'는 연락을 10번도 넘게 해 왔을 때, '마음대로 하셔라. 당신의 선택은 나에게 어떤 영향도 없을 것이다'라고 답장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협박 연락을 받고서는 예전 자료들을 꺼내보면서 갑자기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내 메시지를 보고 그가 정말로 자살 기도를 했고,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면 정말 더 큰 일로 이어졌을 다. 이런 대응이 오히려 그를 자극해 더 큰 협박과 괴롭힘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모든 괴롭힘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밖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섣부르게 대응하기보다는 괴롭힘의 증거가 될 수 있는 것들을 꼼꼼하게 보존하되, 도움을 줄 수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내가 참을 수 있는, 나만의 '데드라인'을 설정하는 거다. 때로는 각종 공격에 아예 대응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해결책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아닐 수도 있다. '0월 0일까지 지겨보되, 그 이후까지 괴롭힘이 계속되면 다른 방법을 찾겠다'라든지, '00번 이상 괴롭힘이 이어지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등 나만의 마지노선을 정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강경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결심을 내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고, 결국엔 망설이다 제대로 대응할 시기를 놓쳐 버릴 수도 있다.


  이런 괴롭힘이 '나'라는 사람 자체가 아닌, 기사를 쓰는 '000 기자'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기사 작성으로 인한 난과 비판은 나라는 인격체가 아닌, 기자로서의 내게 쏟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의 부담감을 한결 덜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업무상 만난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개인 사생활의 영역을 최대한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는 지난 5월 협박 연락을 또 받았을 즈음, 나를 인간 하혜빈이 아닌 JTBC 하혜빈으로만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노출되는 업무용 카카오톡 '멀티 프로필'을 설정했다. 혹시 모를 위협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고 싶어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곁에서 다친 마음을 위로해 주고 용기를 준 주변 사람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고소장을 받는 등 보도 이후 공격받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리고 협박성 메시지가 왔을 때, 어떤 선배가 '이런 공격은 네가 쓴 기사가 그만큼 그들에게 아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결 방법을 같이 찾아주고 고민해 줄 테니 걱정 말라.'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따뜻한 말들이 참 큰 힘이 됐다. 괴롭힘을 당했다면 주변의 믿을 만한 친구들,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자. 내가 생각지 못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고, 일단 이 암울한 상황을 떨쳐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모든 괴롭힘의 궁극적인 목표는 나를 세상에서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 고립에서 빠져나오려면, 물론 스스로 부단히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누군가가 뻗은 손을 잡는 것이 가장 빠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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