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피해자가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프로젝트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고, 대상자는 언론인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뤄진 내용들 중에는 직업과 상관없이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만큼 자신의 존재가 개인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온라인 공간에 조금이라도 드러나 있다면 누구라도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TFV를 당했다면, 일단은 아래와 같은 내용을 숙지하는 것이 좋다.
1. 셀프 체크 문항 4가지를 기억하세요!
아래 4가지 문항에 스스로 답 해보면서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자. 현재 내가 처한 환경이 어떤지 명확하게 알아야 관련 도움을 더 신속하게 요청하고, 적절한 처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나는 협박이나 괴롭힘을 가하고 있는 가해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시 그들이 현재 나에게 가하고 있는 폭력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같은 행위를 하고 있거나, 이전도 비슷한 행위를 했던 적이 있지는 않은가?
2) 나에게 가해지는 위협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가? 위협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발생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3) 가해자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그들이 나의 실제 이름이나 이메일, 핸드폰번호 등의 개인 정보를 알고 있지 않은가?
4) 가해자의 폭력 행위가 방법과 수단을 바꿔가며 발생하거나, 물리적인 위협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가? 음성 메시지, 혹은 우편물이나 택배 상자 등이 나의 일터나 집으로 온 적이 있는가?
위와 같은 질문을 통해 내 상황을 인지했다면, 즉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하지만 평상시에도 아래와 같은 3가지 사항은 늘 숙지할 필요가 있다.
1) 기록하기: 온라인상에서 내가 당한 괴롭힘은 추후 그 자체로 중요한 증거가 된다. 악성 댓글이나 이메일, 음성 메일 등의 자료는 모두 백업해 둔다. 소셜미디어상에 나를 모욕하는 글이나 그림이 올라와 있다면 링크를 복사해 두고, 추후 삭제될 경우를 대비해 스크린샷도 저장해 두는 것이 좋다.
2) 나의 안전 상태 평가하기: 내가 물리적으로 안전한 상태인지를 돌아본다. 만약 내가 스스로 '위험하다'라고 느낀다면, 그건 실제로 내가 위험한 것이 맞다. 스스로의 안전에 관해서만큼은 내 본능을 믿자.
3) 나를 도울 수 있는 주변 사람들 기억해 두기: 내가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린다. 친구나 가족, 직장 동료 등 누구든 내 위험에 대해 알리고, 동료 지원(Peer-support) 등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나의 친한 동료와 가족들도 위험한 순간엔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동료 지원(Peer-support)'을 통해 잘 이루어질 수 있다. 참고로 동료 지원과 관련해서는 이 브런치북의 '부록'에 자세히 따로 서술해 놓았다.
2. 당신을 위한 '디지털 방탄재킷'
본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아만다 페라라. 그는 다트센터 소속으로, 언론인을 향한 온라인 괴롭힘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왔다. 그는 괴롭힘을 당했을 때 일차적으로 참고해 볼 수 있을 만한 일종의 지침서를 일찌감치 만들어 놨다다. 이름하야 '디지털 방탄재킷'. 나는 2023년 호주 연수 때 처음으로 접했다. 이번 '악플 가이드라인' 대응 프로젝트에서도 이 지침서 내용 상당 부분이 활용됐다. 최종 완성된 팁시트를 공개하기에 앞서 '디지털 방탄재킷'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https://twitter.com/DartAsiaPacific 일단 관련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쓴 기사(혹은 콘텐츠)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잘 지켰는지, 윤리적인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아래와 같은 3가지 단계를 거치면 된다고 했다.
(1) 위험 식별 단계: 내가 마주하고 있는 것이 어떤 종류의 위협인지 인지한다. 괴롭힘이 언제, 어디서, 왜, 그리고 얼마나 자주 발생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막연하게 육하원칙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으로 괴롭힘이 업무용 휴대전화를 통해서만 발생하는지, 개인 휴대전화를 통해서도 발생하는지, 퇴근 이후에도 지속해서 괴롭힘에 시달리는지 등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2) 완화 단계: 앞선 단계에서 식별한 위협 및 괴롭힘의 특징별로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격이 들어온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른 소셜미디어 계정에 개인 정보가 노출되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그런 경우가 있다면 비공개 처리하라고 했다. 만약 업무용이 아닌 개인 휴대전화를 통해 공격이 지속된다면 번호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 또한 공격과 괴롭힘의 특징을 고려할 때 추가 보도를 했을 경우 그 정도가 심해질지에 대해서도 판단해야 한다.
(3) 예방 단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적절한 개입과 처치가 필요하다. 괴롭힘의 사례를 취합하고 증거를 모아 회사와 관계 기관에 알린다. 또한 디지털 괴롭힘이 ‘기자’라는 직책에 쏟아지는 것뿐, ‘개인’을 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지한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할 때에는 계정이 쉽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변 지인들에게 개인적인 게시글에 ‘태그’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호주 연수 당시 아만다는 이 같은 세 가지 단계를 소개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디지털 기기와의 ‘거리두기’라고 재차 강조했었다. 디지털 괴롭힘은 대부분 휴대전화나 태블릿, 노트북 등의 기기를 통해 기자 개인들에게 도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언론인들, 특히 한국 기자들은 업무와 업무 외적인 삶을 분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당장 나의 카카오톡엔 몇 군데 출입처를 거치며 추가한 친구인지 취재원인지 모를 이들의 프로필 개수가 4천 명을 넘은 지 오래고, 수백 개 채팅방 중 업무와 관련 없는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아만다는 업무 중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퇴근하면 되도록 휴대전화를 많이 보지 않도록 알림을 꺼 놓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저기에 어떤 채팅방들이 있는지는 일급비밀이다.
최근 카카오톡이 이 같은 직장인(특히 기자들)들의 고난을 덜어주기 위해서인지, '조용한 채팅방'이라는 기능을 만들었다. 업무 시간이 아닐 경우 특정 채팅방은 아예 푸시 알람이 울리지 않도록 하는 거다. 나는 지금도 유용하게 이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 업무를 하지 않는 날에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카톡방을 '조용한 채팅방'으로 모아놨더니 휴일을 좀 더 여유롭게 즐기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홧김에 부서 단체 카톡방이나 특정 선배와의 1:1 채팅방을 여기에 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속닥속닥...)
3. 온라인 공격, 법적 대응 해야하나?
전 세계 주요 국가들에선 이미 언론인을 디지털 및 온라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법적인 절차라는 건 사실 상당히 번거롭고, 또 매우 길고 지난한 과정이다. 우리나라 역시 다르지 않다. 따라서 모든 온라인 괴롭힘에 법적인 절차를 검토하는 것은 때로는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스리랑카 기자 출신이기도 한 아만다는 스리랑카 현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미디어 로 포럼'이라는 조직을 소개했다. 미디어 로 포럼은 현직 언론인, 법률가, 사회 활동가 등이 함께 모여 만든 단체로,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등 가치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했다.
https://www.medialawforum.org/ '미디어 로 포럼' 홈페이지에선 언론인을 향한 다양한 공격, 그리고 그에 따른 법적 대응의 절차 등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누구나 접촉 가능한 핫라인 번호도 공개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이나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등에서 관련 도움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특정 기자에 대한 공격에 대한 대응은 개별 회사가, 때로는 기자 개인이 혼자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스리랑카의 '미디어 로 포럼'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부분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비슷한 방식으로 시행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실 법적 대응이라는 것은 개인이 쉽게 마음먹고 실시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에 전문가와 주변인의 도움과 검증을 되도록 많이 거치는 것을 추천한다.
https://www.medialawforum.org/
P.S.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이 언어가 될 줄은 몰랐다. 미국식 호주식 영어도 어려운 내게 인도와 기타 등등 아태 지역 기자들의 독특한 억양은 정말 너무 어렵다...^^; 이런 부족한 날 위해 함께 자료를 읽고 해석해 준 똑똑한 나의 친구 민띠에게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