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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빈 May 02. 2024

세상에 괜찮은 악플은 없다 - 3부

누가, 얼마나 당하는데?

괴롭힘 그런 거, 특별히 유명한 사람만 당하는 것 아닐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GBV(Gender-based violence)는 이름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특정인의 성별, 혹은 성적 정체성에서 기인한 폭력을 일컫는다. 앞서 1부와 2부에서 내내 다룬 TFGBV는 GBV 중에서도 디지털 기술로 인해 촉발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니, GBV는 그보다 조금 더 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GBV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히 발생하는 인권 침해의 한 형태로, 대상자의 국적이나 경제적인 상황 등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추세다.


1.  GBV, 누가 피해자인가


기본적으로 GBV는 성별이나 성적 정체성에 기반한 불평등에서 출발한다.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물리적, 관념적인 '힘'의 남용과 모욕감을 주는 언어 사용 등을 통해 신체적, 성적,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모든 행위를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다트센터에서는 물리적 피해가 아니더라도 공적, 사적인 영역에서 특정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까지 GBV에 포함된다고 본다.

  GBV의 피해자는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개개인이 처한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 여성이나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주로 타깃이 된다. 여기에 장애가 있거나 소수인종인 경우, 트랜스젠더나 일정한 주거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는 노숙자 등이 피해를 입을 경우 그 내상이 더 크게 발생한다. 회복을 위한 각종 지원 방안을 접하기 어렵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GBV를 유발하는 요소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한 가지로 심플하게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큰 틀에서 4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특정 성별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인한 ^문화적 요인, 피해를 입은 당사자를 구제하거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법 안전망의 부족, 여성 등 특정 계층의 사람들의 삶에 불리하게 짜인 ^경제 구조, 마지막으로는 여성이나 성소수자 등의 실제 비중에 비해 과소대표된 ^정치적인 상황 등이 있다.


<GBV, 얼마나 심각한가?>

사실 거창하게 'GBV!!'라는 단어를 굳이 가져오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성적 정체성 혹은 성별을 이유로 겪는 부당한 온, 오프라인 폭력은 너무나 흔하게 발생한다. 비교적 법적인 안전망이나 문화적인 인식이 발달해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주변 여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다트센터에선 어림잡아 전 세계 여성의 1/3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GBV를 당한 적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여러 요인들로 인해 특정 사회 환경에서는 이 같은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것조차 개개인에게 부메랑처럼 리스크가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되돌아보면 한국 사회 역시 성폭행 및 성추행 사실을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미투(Me Too)'운동 바람이 불기 전까지는 피해 사실을 다른 사람 앞에 꺼내놓는 것 자체가 부담인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20년, 세계은행(World Bank) 역시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전 세계에서 최소 155개국이 GBV 대응 관련 법 체계를 만들어놨고, 이 중 140개국은 이 중에서도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을 포함, 업무 환경 안에서 발생하는 성폭력과 관련된 법 제도를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트 센터는 이 같은 수치는 여전히 GBV 근절을 위해 턱없이 부족한 수치라고 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가능할지 몰라도,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예방' 차원에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언론인들 위주의 비영리단체인 '국제 언론인 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Journalists-ICFJ)'와 함께 지난 2021년에 보고서를 냈다. 215개국에서 활동하는 여성 언론인 7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업무를 하는 도중 온라인 공격이나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2. GBV의 발생 형태


모든 종류의 괴롭힘이나 피해는 각 나라의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반영해 조금씩 그 형태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발생 형태'를 단편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다트 센터에서는 대부분의 GBV는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한 젊은 여성, 그중에서도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하거나 스스로를 대중 앞에 드러내고 활동하는 여성들에게서 더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언론인, 사회활동가, 정치인, 예술가 등등이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악플' 피해자가 대부분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또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피해자는 가해자의 신상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GBV, 그중에서도 언론인을 향한 피해는 특정 집단의 정치적 목적을 대변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개개인을 괴롭히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언론인으로서 갖는 신뢰도나 평판을 깎아내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국 이 같은 행위를 통해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 언론인이 침묵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최근 언론인들의 업무 환경과 페이스북, X(구 트위터), 유튜브 등의 SNS 서비스는 떼려야 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기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수단이므로 굉장한 장점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각 개인 차원에서는 더 큰 위험에 손쉽게 노출될 가능성을 키웠다는 점에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빈번히 발생하는 GBV의 5가지 사례>

-신체적(Physical) 폭력: 스토킹을 하거나 피해자의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행위

-심리적(Psychological) 폭력: 피해자가 원치 않는 지속적인 메시지를 보내거나 집착하는 행위

-사회/정치적(Social/Political) 폭력: 피해자의 SNS 등 계정을 해킹하고, 사회적 평판 등을 해할 목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올리는 행위

-성적(Sexual) 폭력: 피해자가 원치 않는 외설적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보내는 행위

-경제적(Economic) 폭력: 은행 계좌 해킹 등 금전적인 피해를 일으키는 행위


TFGBV는 유엔 인권 이사회 차원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유엔은 오프라인에서 공격받지 않을 권리가 온라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가지고 있다. 또한 단순히 '공격받지 않을 권리'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를 보호받는 환경에서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본다.

마리아 레사의 X 페이지 (https://twitter.com/mariaressa)

  필리핀계 미국인 언론인인 마리아는 CNN에서 일하면서 인도네시아 폭동, 동티모르 사태, 필리핀 대사 관저 폭발 등 주요 사건을 다루는 아시아 지역 전문 기자로 일했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설립한 뉴스매체 '래플러(Rappler)'를 만들었는데, 이 매체는 두테르테 대통령 집권 이후 정권의 실태를 알리는 비판적인 보도를 계속해왔다. 또한 독재 정권 하에서 퍼진 SNS발 가짜뉴스와 언론 탄압 등에 대해서도 꾸준히 알려 왔다. 마리아는 이처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런 그녀 역시 GBV의 피해자였다. 마리아는 그녀 자신 역시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하면서 온라인 공격과 실제적인 위협을 받았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공격을 받더라도 응답하지 않고 방관하는 건 좋지 않다고 봤다. "그냥 내버려 둬"와 같은 소극적인 대응이 지속되면 우리의 미디어 환경이 점차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타인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혀도 되는 곳으로 변하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 GBV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예방책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3. 인도의 여성 언론인, Srishti의 이야기


이날 다트센터가 준비한 강의가 끝난 뒤, 참석자들끼리 각 나라별로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는 언론인을 향한 괴롭힘 사례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최근 대통령실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이 식사 도중 MBC 기자에게 했다가 논란이 된 사례를 공유했다. 지난 3월 14일, 황 전 수석은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MBC 기자를 향해 "잘 들어"라며 1988년 정보사 군인들이 오홍근 기자에게 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힌 사건을 언급했다. 물론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이른바 '회칼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사건은 발생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권력자가 과거의 언론인 탄압 사례를 개별 기자 앞에서 언급하며 '조심하라'는 취지로 발언하는 것만으로도 언론인에 대한 침묵 강요이자 겁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대다수 참석자들이 (한국 기자들이 아니었는데도) 공감해 주었다.

스리슈티 트위터 캡처 (https://twitter.com/seekingsrishti)

간단한 토론 세션에 앞서 이날은 특별한 게스트 스피커가 함께했다. 인도 출신 여성 언론인 스리슈티 자스왈(Shrishti Jaswal)이 연사로 나서 자신의 온라인 괴롭힘 경험을 직접 들려줬다. 스리슈티는 인도 출신이지만 뉴욕, 파리, 베를린 등에서도 일한 경력이 있고, 현재는 독립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와 기술, 인권, 거버넌스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보도를 하면서 저명한 상을 많이 받았고, 퓰리처센터의 후원도 받았다.

스리슈티 트위터 캡처 (https://twitter.com/seekingsrishti)

  스리슈티는 다트센터뿐만 아니라, 국제 언론인 센터(ICFJ)에서도 펠로우로 활동하고 있다. 인도의 기아 등 각종 사회문제를 많이 알려왔는데, 그녀의 트위터 계정을 보면 직접 본인이 했던 보도 내용을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스리슈티는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인 영화와 관련된 트위터 게시글을 올렸다. 당시 넷플릭스는 소위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인도 내에서 여러 비판을 받았던 영화 'Krishna & His Leela'라는 영화를 서비스했다. 크리슈나(Krishna)는 힌두교에서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남성 하나인데, 영화의 남자 주인공 이름이 '크리슈나'였고, 그는 여러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스리슈티는 작품이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에 반박하면서, 크리슈나는 사실 바람둥이가 맞다고 했다. 뭐 우리로 따지면 "예수님은 사실 바람둥이야!"라고 적은 셈. 스리슈티의 트위터 글은 급속도로 온라인상에서 퍼졌고, 그녀를 향한 험악한 비판과 욕설, 심지어는 살해 협박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인도 언론사 'Hindustan Times'에 재직 중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해당 언론사, 심지어는 인도 경찰에까지 그녀에 대한 불만과 항의를 쏟아냈다.

문제가 된 스리슈티의 당시 트위터 / 영화 'Krishna & His Leela' 캡쳐본 (https://www.rottentomatoes.com)

하지만 Hindustan Times는 스리슈티를 보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논란이 퍼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스리슈티를 해고했다. 괴롭힘을 당하는 직원을 보호하기는커녕, 비판 여론을 의식해 해고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극히 제한되어 있는 폐쇄적인 인도의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Hindustan Times가 스리슈티를 해고했음을 알린 게시글 (https://twitter.com/HindustanTimes)

스리슈티는 회사의 이런 황당한 결정에도 굴하지 않았다. 해고된 이후에도 활발하게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보도를 해 왔으며, 인도 내의 불합리한 사회 문제들을 꾸준히 고발했다. 스리슈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전에 유튜브에서 우연히 봤던 한 영상이 떠올랐다. 인도의 배우 '말리카 쉐라왓'이 기자회견장에서 질문을 던진 기자와 옥신각신 말싸움을 하는 장면. 그녀는 스리슈티처럼 인도 내의 불합리한 관행과 여성 낙태, 여아 살인 같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리는 스피커 역할을 했는데, 이 같은 질문에 대해 기자가 "국격을 낮춘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말리카 쉐라왓은 "나는 인도의 현실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는다"며 당당하게 맞섰고, 이 모습이 온라인상에서 꽤 많이 바이럴이 됐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멋지고 당당한 여성 활동가들과 언론인이 많지만, 새삼 이들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사회 문화적 환경은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아주 다르다. 우리 언론인들도 욕설이 담긴 이메일을 보며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지만, 인도의 언론인들은 말 그대로 살해 협박 등 목숨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아직까지도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침묵하지 않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대중 앞에 꺼내놓는 이들의 용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yJ-6yR8XJ8

P.S.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이 언어가 될 줄은 몰랐다. 미국식 호주식 영어도 어려운 내게 인도와 기타 등등 아태 지역 기자들의 독특한 억양은 정말 너무 어렵다...^^; 이런 부족한 날 위해 함께 자료를 읽고 해석해 준 똑똑한 나의 친구 민띠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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