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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Apr 03. 2024

글쓰기를 알고 싶어 시작했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일

어느 날부터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것도 아주 잘. 처음엔 그냥 쓰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잘 쓰는 일은 '나중에' 일이라는 걸 '정말 나중에' 깨달았다. 3년쯤 글을 쓰고 나서.


써보며 알았다. 글쓰기는 체력전이라는 걸. 운동과 같다는 걸.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손가락만 타닥타닥 가볍게 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것 또한 앉아있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걸. 이걸 깨달은 뒤부터 책이 다르게 읽혔다. 예전엔 작가의 아름다운 문체가 보였는데 이젠 알맞은 '단어'를 배치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의 체력이 보인다.  


매일이 ‘끄적끄적’의 연속이었다. 좀처럼 내 글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100일, 또 100일, 또 100일이 지났다. 문득 블로그에 300편이 넘는 글들이 쌓였다. 300일을 연속해서 쓴 것은 아니었지만 꽤나 뿌듯한 결과였다. 


아프리카에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오래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는 속담이 있다. 꼭 글쓰기를 향한 조언처럼 다가왔다. 빨리 가고 싶기도 했고 오래 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환경을 적극 이용 했다. 21일 글쓰기 프로그램, 30일 프로그램, 100일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여럿이 함께 썼다. 


다양한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웠다. 다양한 사람들이 쓴 글을 읽으며 내 글의 소재를 발견하기도 했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가끔은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으며, 어떨 땐 질투가 나기도 했다. 글이란 게 참 신기했다. 


그러면서 글쓰기에 필요한 3가지를 발견했다. 동료, 질투, 감시. 앞글자만 줄여서 동. 질. 감


질문의 힘도 발견했다. 어떤 질문은 과거로 나를 데려갔고 어떤 질문은 미래의 나를 상상하게 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질문의 힘에 대해 알았고 글을 쓰는 재미도 발견했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글쓰기가 생활이 되어갔다. 처음엔 낙서에 불과했던 끄적임이 훗날 쓰는 글의 마중물이 되고 어느새 한 편의 초고가 쌓이게 되는 경험. 결국 몇 년 뒤 책으로 묶이는 날이 내게도 오고야 말았다. 책으로 엮으려고 쓴 것이 아니었지만 결국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이 나온 뒤, 남들과 함께 글을 쓰는 일을 시작했다. 참여해 글을 쓰다가 리드하며 글을 쓰고 있다. 참가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며 이들 또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발견했다. 어떤 이는 쉽게 글을 시작했고 어떤 이는 어렵게 글을 시작했다. 어떤 이는 아예 시작도 하지 못했다. 중도에 포기하는 많은 이들을 비켜봤다. 또, 그들의 모습에서 예전의 나를 발견했다. 


매달 새롭게 글쓰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랬었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의 모습은 예전의 나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였다. 오래가지 못할 걸 알면서도 이것저것 다짐하고 결심하는 비장하고 달뜬 얼굴들, 그리고 얼마 안 가 한결같이 실패해서 시무룩해질 얼굴들. 


하루는 반성문 쓰고 다음 날 계획표 쓰는 게 인생이랬나. 바보 같고 멍청이 같아 보이는 날도 있지만 난 그게 너무 좋다. 오늘 글을 쓰는 이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올해는 꼭 내 책을 쓸 거야'라는 다짐이 들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브런치 연재를 결심했다. 일상의 끄적임이, 꾸준한 글쓰기가 이어질 수 있도록, 손쉽게 글을 시작하는 방법을 나누고 싶어서. 지난 7년의 글쓰기 경험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브런치 매거진의 목적은 하나다. 글쓰기는 '너를 알고 싶어 시작했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일'이란 걸. 그래서 매거진 이름도 그에 맞게 바꿨다.


Obra Maestro, 스페인어로 "걸작"이라는 뜻이다. 낙서가 걸작이 되려면 일단 시작을 해야 한다. 시작해 보면 안다. 길은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이 다르다는 걸.


글쓰기를 책으로 배우려고 관련책만 30권 넘게 읽다가 깨달았다. 글쓰기는 책으로 배울 수 없다는 걸. 이후 7년간 다양한 글쓰기 프로그램을 참여했다. 지금은 여러 글쓰기 프로그램의 장점만 모아 성인들의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매일 아침, 오늘은 뭘 써야 하나 고민하시는 사람들에게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질문을 던지고 함께 수다를 떤다. 이제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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