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1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Ep.7 전도된 본말을 전도하려는 테러리스트

양안다,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by 고전파 Mar 19. 2025

 양안다,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해변에서 부서지는 것들을 바라본다

 포말과 어두운 하늘, 쏟아져 내리다가

 백사장에 닿아서야 갈라지는 빗방울     


 너에게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어     


 이름 모를 정서가 가슴 한편에서 밝아지는 게 느껴질 때면 어느새 밤이야 파문이 커지면 커질수록 악기를 쥐고 음악을 만드는 밤이 있지 창문은 하루 종일 물결치는 장면을 상영 중이야 해변의 성당은 허물어지고 신도들은 날마다 죄를 짓고 있지 두 손을 모으려고, 신을 찾아 더듬거리려고, 맞아 부풀어 오르는 밤이야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해도 견디기 힘들 때가 있어 너는 이런 날   

 

 이해할까     


 우산이 필요하겠어 풍향을 알 수 없으니     


 해변 위로 파도를 그린다

 언제든 밑바닥에 가라앉을 수 있도록

 나의 기일과 너의 생일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인간은 대단해 없던 일을 존재하게 만드니

 입 밖으로 감탄사만 쏟아져 나와서

 있는 힘껏 박수만 쳤어     


 짐승들이 동시에 울부짖기 시작해

 물고기들이 뻐끔대고 수면 위로 기포가 올라와

 우린 숨을 죽이지 우리는 무한한 마음을

 숨기고 죽였지 우리는

 숨을 멈추고     


 달과 태양이 몸을 겹치기 시작한다     


 눈물자국을 가리며 안경을 씌어 주던 사람도 있었지 인간들이 집단적인 난청을 일으켜 모든 소문이 되살아났으면 좋겠어 신은 의심을 확신으로 오독하도록 분노를 만들었잖아 누군가의 꿈속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고 싶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부딪쳐 온몸이 조각날 수 있다면, 조각난 채로 그의 꿈속에 스며들 수 있다면…… 하지만 여전히  

   

 밤이 끝나지 않는다     


 너는 내 손을 잡고 있다 우리는     


 크게 호흡한다

 이제 우산을 펼쳐야 한다                        











 

          백야(白夜)는 다음을 의미한다.     



위도 60° 이상의 고위도 지방에서 한여름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다. 즉 밤이어야 할 시간까지 낮이 계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출처: 나무위키)      



          백야와 함께 극야는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은데 아직까지 기회가 없었다. 다만 영국에서 지낼 때 그에 가까운 현상을 경험해보긴 했다. 영국의 여름은 해가 아주 길어서 오후 9시 무렵에야 해가 저물었고, 새벽 4시부터 해가 뜨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한여름이라고 하더라도 8시면 어두워지기 마련이었는데, 굉장히 낯설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백야는 일종의 본말이 전도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면서 동시에 드문 지역에서 드물게 일어나는 예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밤이란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만물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야 하지만, 백야가 도래하면 밤임에도 불구하고 만물은 몸을 숨기지 못한다. 그걸 밤이라 부를 수 있을까.      

          위의 시에서 화자는 백야처럼 본말이 전도된 세상을 보여준다. 화자는 비가 내리는 밤의 바닷가를 창문 너머에서 지켜본다. 해변에는 빗방울이 부서지고 있다. 그리고 담담히 고백한다. 가장 인상 깊은 구절로 들어가 보자. 



 해변의 성당은 허물어지고 신도들은 날마다 죄를 짓고 있지 두 손을 모으려고, 신을 찾아 더듬거리려고,      


          최근 화제작 중 하나인 드라마 <선의의 경쟁>에는 다음과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인물은 신앙심이 없다. 따라서 예배가 굉장히 지루한데, 옆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서 결심한다. 나쁜 짓을 하기로. 그러면 이 예배 시간을 값지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위의 시 구절은 바로 그러한 세태를 상징하는 듯하다. 신앙의 본질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착하게 사는 것’,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살다가 순간순간 넘어질 때,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회개다. 즉 회개는 수단이고, 선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드라마의 인물처럼, 또는 인용구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회개를 하려고 죄를 짓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목적과 수단이 전복된 본말전도의 순간이다.      


           시에 등장하는 다른 본말이 전도된 상황을 살펴보자. 우산은 비를 막기 위한 것이지 풍향을 알려고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풍향을 알기 위해 우산을 찾는다. 또한 파도는 바다의 밑바닥에 가라앉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파도는 바다의 표면에서 탄생하고 소멸하는 일이다. 기일과 생일은 또 어떤가. 죽음과 탄생은 처음과 끝을 담당하는 상호배타적인 관계다. 화자는 이러한 본말전도의 세태를 범박하게 요약해낸다.      



 인간은 대단해 없던 일을 존재하게 만드니 
입 밖으로 감탄사만 쏟아져 나와서 
있는 힘껏 박수만 쳤어










           숨을 죽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월식이 찾아온다. 이 순간, 본말이 전도되는 일에 저항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눈물을 흘리는 누군가에게 안경을 씌워 가리워 주는 사람들. 화자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소문이 되살아나기를 꿈꾼다. 소문은 의심과 같은 층위에 있다. 사실의 여부가 결여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실인 소문은 소문이 아니라 정보가 될 것이고, 사실인 의심은 의심이 아니라 물증 그 자체다.     

 

           이 대목에서 세상을 백야로 만든 신의 장난이 드러난다. 의심은 어떤 일이 사실일지 아닐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러나 신의 장난으로 분노가 더해지는 순간, 의심은 순식간에 확신으로 굳어진다. 이러한 분노에 찬 오독은 본말이 전도된 일들을 자꾸만 낳는다. 세상은 여전히 백야에 머물고 있다.    

 

           화자는 그 백야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람들의 꿈속으로 들어가 현실로 불러오고 싶다. 산산이 조각난다고 해도. 그러나 밤은 끝나지 않는다. 여전히. 화자는 다음의 기회를 기다리며 우산을 든다. 바람의 풍향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리고 다시 도래할 월식의 순간에 사람들의 꿈을 부수기 위하여. 화자는 본말이 전복된 세상을 전복하기를 꿈꾸는 테러리스트에 가깝다. 전복을 꿈꾸는 전복. 그렇다면 그것은 전복인가, 아닌가. 백야의 세상에서 그런 게 중요할 린 없겠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Ep.6 사랑이라는 말 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시인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