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평범한 풍경을 찍느냐고 물었다. 윗자리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읽던 러시아 아주머니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스케치를 하고 사진까지 찍어대는 나를 신기해 했다. 상트를 떠나 모스크바로,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이루크츠크로 향하는 말 그대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달리는 중이었다. 이미 오래 전 우랄산맥을 지나고 한참을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웃었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경계가 가물거릴 정도로 아득한 들판은 여행 전에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었다. 언제나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 속에서 살아와 그랬는지 지평선만 보이는 대지는 상상해본 적조차 없었더랬다. 하늘과 초목만이 있는 풍경이 그리 아름다운지도 몰랐었다. 햇살과 구름이 대지에 그림을 그리듯 하일라이트와 그림자를 드리우는 모습도, 키가 작은 관목들과 덤불들 그리고 앉은뱅이처럼 내려앉은 풀들이 저마다 다른 초록으로 빛나는 모습도, 바람이 지날 때마다 덤불과 풀잎들이 출렁이며 춤추는 모습도.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니 자꾸만 보고 싶었다.
문득 상트의 여름궁전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인 여행객과의 일이 떠올랐다. 나란히 벤치에 앉은 인연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한국을 여행했다고 반가워했다. 도금으로 번쩍이는 동상들을 바라보며 러시아보다 한국이 더 아름답다고 말했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반가워하면서도 놀라워했고 한편으로는 그런 내 자신에도 의아했었다. 그리고 이제 러시아아주머니의 눈으로 그 미국인 여행객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웃었다. This is so special to me. 답을 하는 나를 보며 아주머니도 웃었다. 나도 아주머니도 다시 차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시베리아 들판을, 대지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