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슈토베 시내에서 자동차로 이십 여분 거리에 바슈토베가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언덕에 비석과 묘지뿐. 사람들이 바슈토베를 원동이라 부르는 까닭을 그제야 알았다. 비석에는 서투른 한글과 러시아어로 적혀 있었다. “이곳은 원동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1937년 10월 9일부터 1938년 4월 10일까지 토굴을 짓고 살았던 초기 정착지이다” 비석을 뒤로 하고 다시 돌아섰다. 황량한 벌판을 지나 사람이 사는 곳이 시작됨을 알리는 지표로만 여겼던 현지식 공동묘지가 이전과 다르게 다가오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비석과 납작한 돌판, 그 주위에 두른 철책들을 꼼꼼히 훑으며 빈약한 러시아어로 초이,그러니까 최씨, 더듬더듬 그곳에 누운 이의 성을 읽었다.
1937년 8월 21일 스탈린이 고려인 이주를 지시하는 비밀명령서에 서명하며 시작된 이주계획은 고려인들에게 언제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리지도 않은 채 진행됐다. 소련과 일본이 전쟁을 벌일 시 일본에 지원을 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민족지도자와 지식인 등 이주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인사 2천 8백 여명을 체포하고 총살했다. 어떤 이들은 이주 열차에 오르기 하루 전에야 이주를 통보받았고 어떤 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러시아인 아내나 남편과 헤어져 열차에 올라야했다. 문을 닫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물열차에 수십명씩 실려 열흘이 걸리는 거리를 한 달이 넘는 기간을 거쳐 와야 했다. 그렇게1937년 10월 9일 17만 명이 넘는 고려인이 이곳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고려인들은 그야말로 맨손으로 토굴을 파고 물길을 내고 농토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들 중 일부는 기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 죽어 열차 밖으로 던져졌고 도착한 이들도 황량한 이곳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이곳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탄의 고려인 초기 정착지 가운데 아직도 고려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유일한 곳이라고 했다.
바슈토베, 원동, 遠東, 原動, 原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