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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훈이 Jun 17. 2022

연남동 브레드럼(bread rum)

아니 간 듯 돌아오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디저트가 주를 이루는 연남동에 귀하디 귀한 하드빵 전문점이 있었다. 6월을 마지막으로 임시 휴업에 들어간, 다시 오픈할 때에는 연남동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만날 수 있을



브레드럼(Bread rum)



매거진을 통해 소개한 다른 곳들과 달리, 브레드럼의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다. 방문할 때마다 조용히 필요한 것만 사서 나왔고, 기껏해야 예약 전화해 본 게 전부인 정도다. (평소 단골집 잘 만들기로 소문난 나에게 이건 정말 특이한 케이스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주제로 글을 쓰겠다 마음먹은 건, 그만큼 기억하고 싶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브레드럼은 연남동 치고는 꽤 조용한 골목가 반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크지 않은 간판에 차분한 외관이라 신경 쓰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지만, 빵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디스플레이 된 빵의 자태에 이끌려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될 매력적인 곳이었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메뉴는 바게트 샌드위치인데, 언제부터인가 샌드위치 맛집으로 입소문 나며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품절되는 날이 잦았다. 종류는 잠봉뵈르와 판콘토마테, 복숭아가 있고 복숭아는 만들어 둔 청이 소진되면 다음 여름을 기다려야 하기에 보이면 무조건 사야 한다. 




단 맛을 크게 즐기지 않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는 판콘토마테.

토마토와 스페인 치즈, 하몽이 들어간 샌드위치인데 간단한 조합임에도 감칠맛이 폭발한다. 토마토의 수분기가 배어 나와 되도록 빨리 먹어야 하나, 사장님이 한번 전처리 해주신 덕에 질척일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극강의 바삭함을 자랑하는 바게트와 촉촉하고 말캉한 토마토, 짭짤한 하몽의 조화는 한 번 먹으면 멈출 수 없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은은하게 알싸한 향도 올라와 마지막까지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고 적당한 짠맛이 맥주나 와인이랑도 잘 어울릴 듯싶다.




하지만 브레드럼을 소개하는 이유는 샌드위치가 아니다.

종종 특정 메뉴에 시선이 몰려 다른 것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곳들이 있는데, 브레드럼의 바게트 샌드위치를 맛 본 순간 여기가 바로 그중 하나라는 걸 나의 프라임 세포인 빵순이 세포가 일깨워줬다. (또 다른 예로는 양재동 소울브레드가 있다.) 그 흔한 양상추 한 장, 홀그레인 머스터드 한 숟갈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이렇게 꽉 차는 맛이라니! 이건 빵이 맛있어야만 가능한, 지극히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단호박바스켓 / 블루치즈 바게트 / 초리조 푸가스


처음 이 곳의 빵을 먹고 지갑을 바칠 곳이 또 하나 늘어난 나는, 오랜 시간을 들여 이곳을 경험하며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브레드럼은 "샌드위치" 하나로 정의하기엔 너무나도 아깝다. 이곳의 빵들은 스쳐가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그 맛이 일정했다. 입천장이 까질 정도로 바삭하면서 속살은 찰진 바게트, 은은한 산미와 탄력이 돋보이는 사워도우, 폭신함 속에 숨어있는 쫄깃함이 매력적인 푸가스와 푸근한 단호박의 특징을 살려 스프레드가 없어도 맛있었던 단호박 바스켓, 뭉침 없이 잘 구워낸 고소한 페이스트리까지- 빵 하나하나 기본기가 탄탄했다. 무엇을 곁들여도 잘 어울리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야말로 식사빵이었다.


2600원짜리 치아바타가 주는 큰 행복



그렇게 몇 해가 지나는 동안 새로운 유명 빵집들이 생겨났고 소금빵, 베이글 등 빵 트렌드는 무서운 속도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브레드럼은 자신만의 색을 다듬으며 자리를 지켰고, 이러한 우직함은 나에게 그리고 이곳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변치 않는 것의 의미를 알려 주었다.



보여주기 위한 메뉴들에 지칠 때면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하던 곳. 지도 상의 위치가 바뀌고 공간이 달라져도 브레드럼이 주는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잠시 멈춰가는 이 시간도 아쉬움 없이 잘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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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가 단순한 샌드위치일수록 전체적인 맛은 빵이 결정한다 믿는 나의 개똥철학에 공감하시는 분들이라면, 혀 끝에만 즐거움을 주는 빵이 아니라 텅 빈 속과 마음까지 채워줄 수 있는 양식을 찾는 분들이라면 브레드럼이 다시 돌아올 그 날을 함께 기다려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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