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난 인도에서의 한 달
인도의 여름은 고요했다. 나는 낯선 도시에 외떨어진 기분이었다. 게스트 하우스 작은 방. 식빵 하나를 입에 물고 침대에 누웠다. 배앓이를 한 지 일주일째. 물과 식빵만으로 버틴지도 딱 그쯤 되었다. 나는 이틀 동안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입맛이 없었다. 핑크빛 건물이 즐비한 아름다운 도시에 도착했지만 즐겁지 않았다. 침대에 엎드려 그간 쓴 일기장을 파르륵 넘겨 보았다. ‘보고싶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보였다. 그토록 오고 싶어했던 인도였지만 외로웠다. 나는 그 사람을 너무 많이 좋아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인도 시골로 들어갔다. 더 외로워지면 그 사람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강가에 앉아 종일 하늘만 바라보았다. 청빛 하늘 위로 별들이 빛났다. 그사이로 별똥별이 빗금을 그었다. 아래 놓인 시골 도시는 어둡고 고요했다. 여기는 정전이 일상이니까. 지나가던 인도인이 말했다. 도시가 빛을 잃으면 밤하늘이 아름다워지는구나. 강물 위 별빛이 출렁였다. 일기장을 꺼내 적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하늘이 여기 있어. 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 짝사랑을 향한 고백을 빼곡히 적었다. 나는 그곳에서도 보고싶다는 말을 쓰고 있었다.
북부로 올라가서야 고독은 덜어졌다. 터번 쓴 사람들의 도시였다. 그곳의 황금사원은 얕은 호수로 둘러쌓여 있었다. 나는 무료 숙소에 묵고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었다. 식판을 들고 긴 돗자리에 앉으면 봉사자들이 능숙하게 콩스프와 빵을 나눠줬다. 밥을 먹다 스카프가 흘러내리면 봉사자 할아버지가 다가와 정수리를 톡톡 쳤다. 머쓱해하며 머리를 스카프로 가리면 할아버지는 맑게 웃었다. 공중 목욕탕에서는 어린 엄마를 만났다. 열댓살로 보이는 소녀는 아기를 안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비누와 아기를 번갈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비누로 아기의 몸을 씻기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낯선 아기를 낯선 도시에서 소녀와 함께 씻겼다. 헤어질 땐 소녀에게 샘플 화장품을 건네주며 안아줬다. 그녀 삶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덜어지길 바라면서.
타지마할의 도시는 감흥이 없었다. 용휘라는 친구와 동행한 것이 오히려 재밌었다. 모히칸 머리에 190cm의 큰 키. 군입대를 앞두고 홀로 인도를 왔다는 그는 내게 영어 통역을 부탁했다. 좌충우돌로 고생한 끝에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리는 새벽에 타지마할을 둘러보고 같이 밥을 먹었다. 숙소 옥탑에서는 벌레를 피해 폴짝폴짝 뛰며 망고를 먹었다. 순하고 잘 웃어서 남동생같았던 용휘. 인도인들은 덩치 큰 용휘를 무서워하며 우리 둘이 야쿠자 부부가 아닐까 의심했다. 카메라를 잃어버리고도 그냥 눈에 담아가면 된다며 허허 웃던 용휘는 곧 나와 헤어져 남쪽 지방으로 내려갔다. 나는 홀로 동쪽으로 갔다.
갠지스 강이 흐르는 곳에선 지치고 우울했다. 도착한 날 방에 풀어놓은 짐은 강줄기에 흘러갔다. 원숭이가 쳐들어와 가방을 들고나간 모양이었다. 간신히 건진 빈 배낭을 안고 카페에 앉아있자니 탄내가 지독했다. 갠지스강에서는 종일 시신을 태웠다. 강 주변에 늘어선 사진관엔 고인의 마지막을 찍어준다는 광고가 가득이었다. 몸에 박힌 탄내가 싫어서 아침 저녁으로 씻었지만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류시화 시인이 책에서 평화와 해탈이 가득한 도시라고 했던 곳이 나에겐 지옥이었다. 여자친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같이 여행을 하고 있다는 영국 남자의 고민을 들어주다 델리행 기차표를 끊어버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사람이 보고 싶었다.
‘엄마, 미역국이 먹고 싶어.’
공항으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문자를 남겼다. 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인도풍 푸른 상의와 하얀 바지를 입고 택시를 탔다. 출국까지 남은 8시간. 시끄러운 경적 소리를 뚫고 공항에 도착하자 어지러워 타이레놀부터 먹었다. 체크인을 해주던 항공사 직원이 히죽거리며 ‘굿 트립?’이라고 물었다. 나는 찡그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연착을 거듭하던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기내식으로 비빔밥이 나오자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한국말로 말을 거는 스튜어디스가 낯설었다. 입국 심사대에서 내려다본 내 발등은 신고간 샌들 모양대로 어두워져있었다.
엄마는 이불을 털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놀랐다. 내가 집앞 계단을 오르자 그제서야 이상한 옷을 입은 여자가 나인지 알아챘다 했다. 아빠와 동생은 새까맣고 마른 나를 한참을 쳐다봤다. 나는 말없이 거실에 기념품을 펼쳐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집안의 가스레인지에는 미역국이 들통 가득 끓고 있었다. 미역국 한그릇에 밥을 말아 먹고 침대에 스며들었다. 어디야, 나와봐, 얼굴 좀 보자. 나를 기다렸던 사람들의 문자가 들어왔다. 그 알림 소리가 매미 울음에 더불어 시끄러웠다. 인도로 이탈했던 한달.
나는 길었던 그 순간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제가 어떤 연애를 했는지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글을 한 번 권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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