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문턱에서 연거푸 미끄러지던 스물여섯. 앞에 앉은 남자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탈락 문자를 받고 절망하던 나날 속에 받은 제안이었다.결혼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듯한 말투. 자신의 든든함에 업혀 살아보라는 표정. 직장인의 오만한 어깨까지. 나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으며 그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사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신랑감이었다. 공무원 부모님 밑에서 서울대에 진학한 인재. 대학 졸업 전에 3대 회계법인을 수월하게 입사한 모범생. 각종 단체 대표를 도맡는 리더십까지. 결혼 상대로서 모든 것에 합격점을 얻을, 완벽한 남자였다. 벌써 3번째 나온 결혼에 대한 말들.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일을 하고 싶어.”
구겨진 자존심을 꾸역꾸역 펼치며 나는 대답했다. 남자친구보다 못한 대학을 다니고 그다지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어디선가 쓰일 수 있는 사람이라 외치고 싶었다. 집에서 설거지, 빨래, 요리만 하려고 태어난 사람은 아니라고.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의 답이 ‘주부’라는 직업칸에 갇혀서 투옥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핑계로 내 자존심을 반쯤 접어서 단순하게 전달했다. 작은 목소리로, ‘일하고 싶다’고. 나의 응답은 접수되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철없는 어리광이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훗날 결혼을 종용하는 남자친구를 떠나보내며 나는 다짐했다. ‘꼭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낼 거야’라고 중얼거리면서.
난 꼭 행복하게 일하면서 살 거야
연애에서 자존심은 중요한 문제다. 전문대에서 패션을 전공한 사람과 사귈 때도 그랬다. 대화 중에 그는 내 학벌을 듣고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는 엄중히 경고했다. ‘좋은 대학 나왔다고 잘난 척하지 마라’고. 그전까지 한 번도 학벌을 언급 않던 나에게 그가 내린 엄명이었다. 그 후로 나는 대학생 시절을 기억에서 삭제한 채 그와 대화했다. 대외활동이나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은 그에게 오만한 대학생의 잘난 척이었다. 친하게 지냈던 학교 선배와 동기들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그는 듣기 싫어했다. 나에게 데이트 비용을 모두 부담하게 하면서도 그는 내가 열심히 공부한 흔적을 어디론가 숨겨 놓기를 바랐다. 볼드모트처럼, 내가 졸업한 대학의 이름은 그렇게 비밀에 부쳐졌다. 스스로의 자존심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위로 갈기갈기 찢겨졌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매몰차게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지만 말이다.
“연애 앞에 자존심 굽히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
작년에 만난 무당이 초면에 다짜고짜 이런 소리를 했다. 신년 운세를 보러 간 자리였는데 모시는 신이 그 얘기를 꼭 전하라고 했단다. 적당한 직업에 앞가림을 잘하고 사는 성격이니 남자에 기대지 말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당황했지만 미련이 남아 ‘하지만’, ‘그래도’라고 자꾸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무당은 단호히 답했다. 굽히고 살 팔자가 아니니 살다 보면 인연이 닿을 것이라고. 그녀의 말이 진짜 신의 목소리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지만 순간 한 가지는 깨달았던 것 같다. 자존심을 이리저리 펼치고 접으며 했던 연애들이 스스로에게는 독이 되고 있었음을 말이다. 지난한 연애를 겪어온 딸을 보며, 엄마는 요즘 이렇게 말한다.
“억지로 맞추려고 좀 하지 마라. 어딘가 너에게 꼭 맞는 퍼즐 조각 같은 사람이 있다니까.”